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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와 피디의 공통점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6-08-30
  • 조회수6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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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시작한 명견만리 프로그램 제작이 드디어 끝이 났다. 장영실쇼 이후 다시는 KBS에 안가리라고 마음먹었지만 책임감등과 겹쳐 그냥 거절하기란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다. 자료 준비해서 강의하면 되지란 간단한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기초과학이란 주제도 주제려니와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강의 프로그램이 아니고 사실에 근거한 다큐멘터리이고 이를 강의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사회를 진단하고 미래를 본다는 거창한 배경이 있었다. 4월 어느날 배선정 피디와 유수진 작가의 방문 이후 그동안 일련의 회의와 일본 독일 등 유럽을 다녀오는 등 끊임없는 자료 수집, 연이어지는 나의 학회 참석일정과의 조정등 지난 몇 개월동안 몸이 고달팠다. 특히 코펜하겐 일정이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팀들과의 회의 강행, 그 다음날 녹화촬영 이후 공항으로 직행, 중국 난닝으로 4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간 일정은 그리 소화하기 쉬운 일정이 아니었다. 인천공항라운지에서 이것저것 주워먹고 잠시 존 것이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번 했다.

해외 촬영은 일본을 시작으로 배 피디가 주관하여 다녔다. 방문기관을 섭외하고 상대방과 일정을 같이 잡는 것 자체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날짜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빡빡하게 잡으니 여유가 더욱 없었다. KBS 팀과의 이런 일정은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시작이야 어떻든 같은 목적을 갖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공동의 목표로 하나의 훌륭한 팀워크이었다.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 뭐 그런 것이다. 내 바쁜 일정에도, 중간 중간 펑크나는 위기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배피디한테 나이든 나도 많이 배웠다. 우리 화경이 나이인데 얼굴 하나 찡그림없이 그런 인내심이 어디서 나올까. 그러면서 피디라는 직업도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우리 과학자처럼 3D라는 것도 알았다. 화면에 나오지 않지만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이런 피디와 과학자의 모습은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무에서 시작하여 유를 만들어낸다. 연구자들 그중 대학원생들은 대학원에 들어와 연구주제가 주어지면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료를 모으고 실험하고 결국 답을 찾아낸다. 피디도 프로그램마다 다양한 주제를 소화해야 한다. 때로는 자기의 전공분야와 전혀 무관하다. 배피디한테도 이번 기초과학이란 주제는 너무나 생소하여 처음에는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이 많았다 했다. 그러나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방향을 고민하고, 자료를 어떻게 모을지 고민하고, 누구한테 물어야할지, 누구하고 인터뷰해야할지 등등.... 배피디는 아마 연구해도 잘할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팀워크이다. 과학자들도 요즈음은 혼자 연구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만큼 연구하는 대상주제가 복잡해졌기도 하고 혼자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연구를 잘하는 사람들은 같이 연구를 잘한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상대방의 장점을 배운다. 피디도 혼자하지 않는다. 피디 몇 명이 같이 붙어 일하고 작가팀이 있고 촬영팀이 있고 다른 외부와의 간섭도 있고 자료를 구하기 위해 끝임없이 외부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협력연구의 극치다.

또 자료를 최대한 모은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온갖 자료가 다 필요한 것처럼 처음에는 가리지 않고 모은다. 나중에 필요치 않을 것 같을 수도 있지만 일단 모으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자료를 다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만약을 대비해 모으는 것이다. 해외 촬영때도 촬영기록을 이중으로 복사하여 보관한다.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가지치기다. 그렇게 힘들어 모은 자료들이 불행히도 다 쓰이지 않는다. 최종 방송은 50분이다. 그 시간내에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들어가야 하지만 많은 자료가 사실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맞지 않으면 결국 많은 것을 버려야한다. 사실 그동안 해외에서도 많은 자료를 얻었다. 어렵게 인터뷰하고... 그런데 최종 프로그램에는 많은 것을 버렸다. 정말 많은 것을... 심지어 내 녹화 강의중 일부도 잘랐다... 가지치고 또 치고.. 그리고 정말 중요한 뼈대만 추리는 것이다. 우리도 논문을 쓰기 위해 많은 양의 데이터를 얻지만 정작 제한된 논문 크기에 맞추어 넣다보면 좋은 데이터를 거의 다 뺀다. 아깝게 데이터를 모은 학생들은 논문에 가능한 데이터를 많이 넣으려 하지만 특히 사이언스나 네이쳐처럼 제한된 분량의 경우 정말 심한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자료를 얻을 때는 밥 먹는 것도 잊는다. 우리도 좋은 데이터가 나올 때는 밥도 때로 거르는 것처럼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때론 밤을 세우기도 한다. KBS내에는 이들이 잘 수 있는 공간도 있단다.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젊은 사람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밤샘을 하는 것도 모두 연구자의 열정이고 젊은이의 특성이다. 나도 논문쓰면서 밤도 잘 새었다....

Proof reading. 강의 녹화가 끝난 후에도 난 한동안 공개홀을 떠날 수 없었다. 피디와 작가팀은 내 강의 중 무엇이 부족한지 면밀히 체크하고 부족한 점은 녹화 후 다시 반복하여 촬영한다. 내 피곤함은 아랑곳 없다. 아주 그래야 한다. 그래서 나도 마지막까지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 작업을 기꺼이 했다. 초고 논문을 처음써도 한동안 수정이 계속된다. 심지어 콤마 하나까지.. 마지막에는 사소한 것에 마치 목숨거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보인다. 그렇게 하고나서 논문이 최종 인쇄 들어갈 때 또 proof reading이라는 것까지 해야 비로소 끝난다. 배피디한테 방영전날인 목요일까지 수정하고 마침내 끝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끝이 났다. 축약의 미다. 결국 메시지는 전한 것 같다. 팀원들은 시청율을 기대하겠지만 난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것,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만족감이 있다.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게 우리 인생이다. 난 또 미국 일정이 남아있다. 모처럼 주말 낮잠을 잤다. KBS 팀들은 아마 휴가 갔을 것이다. 떠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했으니.. 그리고 돌아오면 뒷풀이가 있으니 모두 고생했다고 축하해줘야겠다. 이런 느낌이 있으니 세상은 살아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