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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6-07-21
  • 조회수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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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금요일 돌아와 토요일 하루 쉬고 다시 일요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여기 멀리 시골 state college에 와 있다. Penn State University 는 처음이다. 역시 예상한대로 강원도 산골이다. 대학은 넓고 한가하다. 방학이라 학생은 없지만 곳곳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항에서 학교까지 10분도 안 걸린다. 모든 것이 여유롭다, 공기는 그야말로 청정이다. 하늘은 유럽처럼 푸르고 높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부터 우리 한국은 공기 나쁜 나라가 되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의 그런 푸르름, 청정함은 간 곳이 없다. 지금 시골도 그럴까. 아니면 여느 도시처럼 변해있을까. 어머니가 서울에 오신 후로는 시골 갈 일도 별로 없다. 더욱 바빠진 탓일까...

시차가 뒤죽박죽이라 그런지 밤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 친구들 만나니 살만하다.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월요일은 페라리가 강연을 했는데 역시 별 내용이 없다. 얼마까지 믿어야 될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 그래핀 라만일은 인정해주어야 한다. 인용수는 굉장히 많다, 캐임브리지 힘일까. 학회상을 받으니 할 말이 없다, 잠 안자고 일하는 그의 힘은 대단하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많은 일을 한 것은 높이 살만하다.

오후는 피곤해 돌아와 잠시 잤다. 저녁에는 마우리시오가 몇 사람을 모아 근처의 맛있는 식당에 갔다. 미국 음식점인데 음식이 굉장이 좋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우리시오의 형인 흄베르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가 같이 교수하면서 같이 일도 많이 한다. 형은 이론이니 서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형이 아주 점잖은 사람이다. 나보다 한 살이 많다. 멕시코 사람들의 가족애가 보인다. 다음날 아침은 내 토크가 있어 아침부터 세션에 참여했다. 생각보다 토크의 질이 좋지 않았다. 그 중 중국친구가 발표한 TEM결과는 여러 가지로 흥미가 많았다. 금속입자가 잡혀있는 크라운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 구조를 만들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핀에 divacancy, trivacancy를 만들고 질소를 붙이고 철이온에 담궈두면 그런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저녁에 흄베르토와 토의하면서 깨달은 것은 N 대신 S 를 붙이고 그 위에 금 입자를 붙이면 훨씬 구조가 안정해지고 촉매로서 효율도 클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좋은 논리였다. 해볼 만한 구조다. 만들기만 하면 ORR, HER등에 적용할 수 있다. 문제는 얼마나 균일하게 그런 결함을 만들어내느냐이다. 용액처리, 이온 폭격,... 결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부분이다. 감기가 다 낫지 않았다. 발표내내 목이 불편했다. 그러다보니 목이 신경쓰여 제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발표를 잘하지 못한 것 같다. 아쉬운 대목이다. 발표를 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예상한 것보다 많이 와서 방이 가득 찼다. 깜짝 놀랐다. 밀리도 와서 앉아있다. 친구들도 모두 와서 듣고 있었다. 아쉬움이 많은 토크였다.

오늘은 아침 일찍 7시 비행기다. 그래서 그런지 잠을 설쳤지만 그리 개의치 않은 일이었다. 어차피 적응이 불필요하니 말이다. 비행장에 도착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전광판에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연유인즉 어제 태풍으로 비행기가 시카고에서 여기로 아예 출발하지 못한 탓이라 했다. 난감했다. 시카고롤 정시에 맞추어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고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말이 안된다. 그러나 그런 결론은 United airline만을 이용한 option이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결국 다른 비행사를 알아보기로 결정하는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돈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서둘러 delta로 알아봤으면 detroit를 걸쳐 시간내에 시카고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문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KAL 비행기를 빨리 알아보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가는 비행사는 그 외에도 american air가 있었다. AL은 필라델피아를 거쳐 가는 것으로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나갈수 잇는 시간이 제한되어 가능한 다음 한국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방법은 뉴욕에서 한국 가는 비행기가 자정에 있는 것을 기억해냈다. 전에도 미국 내 비행기를 놓쳐 그 비행기를 탄 경험이 있었다. 자정이니 시간이 있었다. 급하게 옥주한테 연락해 뉴욕 비행기를 예약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또 옥주를 괴롭혀야 했다. 유럽에서도 그랬는데... 그리고 나서 여기에서 뺘져나가는 방법을 찾았다. United air 직원이 나에게 toll free 번호를 주고 통화해 보란다. 자기가 할수도 있는데 귀찮은 것이다. 상황을 보니 매니져격인 친구인데 개으름과 불친절함이 얼굴에 베어 있다. 배가 부른 탓이다. 전화해보니 정보를 묻고는 기다리란다. 시간이 좀 걸릴거라고... 그렇게 기다리다보니 바보같은 생각이 들어 다시 데스크로 돌아가 다른 option을 찾아 물었다. 다행히 불친절한 그 친구는 들어가고 젊은 백인 친구가 나와 있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다른 option을 친절하게 찾아 주었다. 그 중에서도 편리한 경로, 돈이 적게 드는 경로를 찾았다. 이것은 물론 데스크에는 할 수 없어 내 컴퓨터를 이용해 website에서 찾았다. 여기는 촌이라 발권도 제대로 안되어 internet으로 하기로 했는데 어리숙한 내 솜씨를 잘 아는지 친절하게 본인이 해 주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delta를 예약할 수 있었다. Detroit를 경유해 뉴욕으로 10시정도에 뉴욕에 도착하는 스케줄로 가격이 비싸지만 그냥 하기로 했다. 680 불이 넘으니 여기 기준으로 하면 미친 가격이다. 하지만 돌아가 KBS촬영팀, 그리고 다른 약속이 잡혀 있어 금요일 아침에 돌아가는 option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은 12시간 늦은 스케줄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Mark라는 직원은 United air ticket를 환불하는데 또 시간을 많이 투자해 도와주었다. 그렇게 모두 정하고 나니 10시가 넘었다. 정신차리고 가게에서 커피와 아침거리를 사고 Mark한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점원한테 Mark가 뭘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음료수 하나를 추천했다. Mark한테 갔다 주니 깜짝 놀란다. 미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들이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두 사람의 일하는 스타일이 너무 틀려 그 차이를 인정해주고 싶었다. 내 감사의 마음이 마크에게도 힘이 될 것이다.

생각해보니 일본 유럽에 이은 미국 출장은 모험의 연속이다. 어찌보면 머피의 법칙이 연속이다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어려운 중에도 결국엔 일이 해결되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스스로 배울 수 있었다. 화내도 해결될 일이 아니고 불평할 것도 없이 그냥 해결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태도를 배운 것이다. 인생은 이래서 재미있다. 지금은 오히려 오후 5시까지 공항에 잡혀있어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행복함을 즐기고 있다.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더니 정신이 말짱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또 정신없는 하루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여기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이제 노트에 옮겨놓을 시간이 있어 좋다. 잊기 전에... 귀국 비행기에서 아예 자고 가면 한국에서 바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에 집이 이사했을테니 말이 아니겠지만 별 수가 없다. 가장으로서 별로 자격이 없는 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