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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갈로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6-06-22
  • 조회수6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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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인도 방문때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것 때문에 또 인도에 오게 되었다. 뱅갈로는 싱가폴을 거쳐 오기 때문에 그리 쉬운 여정이 아니다. 그것도 한밤중 스케줄이라 그저 잠만 자고 온다. 한밤중에 출발하여 아침에 도착하니 몸이 고단하다.

뱅갈로는 이제 여름이 끝나고 우기가 시작이다. 아직 비가 오지 않았지만 그리 후덥지 않고 버틸만하다, 이번에는 호텔이 아니라 인도과학원내의 게스트하우스다. 시설은 아주 초보적이다. 샤워실에는 바케츠가 놓여 있다. 물이 잘 안 나온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번에는 세면도구도 가져오지 않았다.... 모두가 어렸을 때의 부족한 상태로 돌아간 느낌이다. 화장실은 개미가 가득하고 도마뱀이 나를 반긴다. 캠퍼스 전체가 숲이고 그 사이 건물이 놓여있으니 당연히 그럴만하다. 자연과 같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불편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서양에 갔으면 불평사항인데 여기서는 그냥 이것을 받아들이면 편하다. 내 어렸을 적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음식도 서빙하는데 모두 야채만이다. 하루 사이 벌써 허리가 줄어들었다. 바지가 편해졌다, 밥은 인도식이라 그런지 때가 되면 바로 배가 고프다. 먹을 만하다. 특별한 향을 싫어하는데 그런 것도 별로 없다.

아제이가 와서 차로 캠퍼스를 구경시켜주었다, 건물이 주가 아니고 숲이 주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건물은 아주 초보적이다. 연구실도 우리 오래전 건물과 비슷하다. 전기도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를 잘할 수 있으니 기적이다. 불평하기 전에 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하는 것이 인도 사람의 특징이다. 학생들이 주거하는 기숙사의 환경도 그리 좋지는 않다. 인도 최고의 대학이 이 정도이니 다른 대학은 그 상황이 짐작된다. 쓰레기 장 옆에 베드민턴 코트, 학생들 생활실이 같이 있는데 냄새가 심하다.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는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시스템도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 생각이 바뀌어야 바뀐다. 얼마 전 과학재단 공청회에서 느낀 느낌과 비슷하다. 사무총장, 미래부 국장 모두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어떻게 기초연구를 진흥시킬지 이제까지 해보질 않았으니 기초연구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 기초연구를 진흥시켜야한다고 주장하면서 공청회에서 하는 일이 기초원천연구 산업화에 대한 제언이 주제다. 그럴듯하지만 모든 말이 모순 투성이다. 앞 뒤가 맞지 않았다. 그것도 과학재단안에서 말이다... 앞 뒤가 맞지 않은 말인데 그 속에 있는 사람은 그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방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말이 외부에서 자극이 없는 한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뜻이리라. 그래서 우리만 갖고는 안된다 외부에서 과학자가 들어와 다른 관점에서 보고 비판할 수 있어야 우리도 생각이 바뀐다. 창의성은 다양성이라는 나의 생각이 맞다.

대학본부에서 미팅을 하는데 그 건물도 외부는 그럴듯하지만 들어가보면 허술하다. 내부 시설도 그 질이 어림없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직도 멀었다. 그런데 인도 과학자들의 발표를 보면 모두 연구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두 아제이와 비슷한 연배들의 사람들은 그 연구의 깊이가 대단하다. 생각의 깊이가 보인다. 내 또래 한국의 연구자들은 이런 수준을 갖고 있을까. 언젠가 나도 은퇴하면 후배들 앞에서 떳떳이 우리가 한 일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깊이 들어가 숲을 보지 못하는 우도 없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런 연구를 허락하는 인도 환경이 부럽다. 여기서는 학생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 정부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 주제의 선정에서 자유스럽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여기가 인도 최고의 연구기관이어서 다른 인도 연구자들과 차별성이 있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작아지는 부분이다. 더욱 분발할 일이다. 내가 이렇게 연구하는 자유가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깊이 있는, 더 가치있는 연구를 추구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응용연구보다 기초연구를 처음부터 추진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보다 더 성숙한 나가 되어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저녁에는 아제이의 퇴임 축하식이 있었다. 아제이는 잘하는 교수라 퇴임후에도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퇴임식을 하기 싫어했다. 그런데 내가 상상한 퇴임식이 아니다. felicitation이란 말이 우리말로는 축하의 말이니 졸업생을 포함한 모두 아제이와의 과거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제이에 관한 회상, 좋은 말들을 해주는 시간이었다. 처음은 학생들이 준비한 과거 사진들로 이루어진 비데오였다. 그리고 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던 대학 동기, 동료, 공동연구자들이 차례로 나오고, 졸업한 학생들, 재학생 대표등이 아제이와의 인연등을 말했다. 공통되는 말은 아제이의 연구가 호기심을 기반한 연구라는 점 그래서 그런지 그 연구 영역이 아주 넓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아제이의 박학에 탄복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도 같이 느끼는 것이니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학생들로부터 안 것은 아제이는 학생들에게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화를 잘 내는 내가 창피해진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지난 3년동안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내 학생들에게 너무 냉정하게 대한 것 같아 마음이 우울해졌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러지 말아야 될 일이다. 그런 것들은 학교 일 때문에 내 아들 딸한테 잘못한 것으로 충분하다. 학생들한테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더 건강해야 한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짜증이 학생들에게 간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많이 있으면서도 시간이 없어 이야기하지 못하고 묻히는 경우가 많아진다. 최악이다. 바로 잡아야 한다. 아이들과 포닥들과 시간을 최대한 공유해야 한다. 다른 일에 소비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연구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한다. 그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 아닌가?

내가 생각을 깊이 할수록 더 즐길 수 있다. 내게 주어진 이 기회, 부담없이 연구를 즐길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평가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우리의 호기심이 가는대로 움직이되,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지 질문한다. 연구원들이 연구를 즐길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각자가 갖고 있는 호기심에 따라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단순히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그 호기심을 채우는 방법을 제시하고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밀고 갈 수 있는 도전 정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공상과학 소설 쓰는 것이다.
오후에는 단지내의 연구시설을 구경했다. 나노팹 센터의 규모와 시설은 전 세계 어디에 비교해 손색이 없다. 인도엔 역시 사람이 자산이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계 최고와 견준다. 클린룸은 14000 제곱미터이니 잘 상상이 안된다. 부대시설을 포함하면 어마어마하다. 그 큰 공간이 소자 제작시설로 채워져 있다. 부러웠다. 이런 시설을 학교가 보유하고 있다. 물리학과의 실험장비도 저온 장비면에서는 완벽하다. ppms 3 대 스퀴드 한 대 한사람이 갖고 있는 장비가 우리 연구소 장비보다 많다. 온도도 10 mK까지 내려간다. 핼륨액화장치가 갖추어져 있다. 우리도 해야 할 일을 고민해 보아야 하겠다. 전체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생각의 자유스러움과 연구의 다양성이 보인다. 노벨상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몸은 지쳤지만 오후에는 아제이가 집에 초대하여 저녁을 급히 먹고 공항으로 나왔다. 학내에 집이 있으니 편리하다. 택시를 타고 밖에 나오니 또 딴 세상이다. 일반인의 삶은 역시 고단해 보인다. 연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복인 것이다. 앞으로 인도와 더욱 긴밀하게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면이 많다. 이 사람들은 일본이나 중국 연구의 전통과도 사뭇 다르다. 유럽에 더욱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영향으로 적어도 교육에서는 우리보다 100년 이상이 앞서있다. 우리가 쇠국하는 동안 세상은 그렇게 변해간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가 인도에 준 해약이 많겠지만 적어도 교육측면에서는 일찍 개방되었다. 영국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돌아와 인도를 일으킨 것이다. 적어도 겉에서 보기에는 그렇다. 분발할 일이다. 그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