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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요령, 편법, 불법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6-05-16
  • 조회수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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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전 제자한테서 온 문자를 보고 오늘이 스승의 날인줄 알았다. 일요일이라 학생들한테 노래를 못 들은 탓일까. 매년 어색한 스승의 날 노래를 들으면 어쩐지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좋은 스승 노릇을 하지 못한 자책감일 것이다. 요즈음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나는 더욱 이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회사를 하는 친한 친구가 요즘 자금이 부족해 돈을 꾸어 달란다.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친구가 그러니 안쓰럽기도 하지만 속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돈을 몇 번을 빌려줄 수 없는 어쩌면 내 이기적인 생각을 보면 더욱 속이 쓰리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세상을 살면서 어디까지가 지켜야 할 규칙이고 요령이고 어디부터 편법인지 참 판단하기가 어렵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규칙은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 또는 제정된 질서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약속인 것이다. 그러나 글로 제정되어 있는 규칙 이전에 보통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도덕과 규범이 있다. 서로 말 안해도 지켜야하는 것들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꼭 규칙으로만 살 수 없다. 규칙은 우리가 편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대 상황에 맞지 않고 그래서 불편함이 더해지면 사람들은 소위 요령을 부려 그 규칙들을 피해간다. 요령이란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묘한 이치라는 말이다. 그렇다. 규칙이 오래되고 불편하니 적당히 잘 넘어간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요령이 필요하다. 학생들 중에도 요령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격인 탓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는 것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 절대 피해주지 않는다. 때로는 정도대로 해서 이득보는 경우도 있다. 나는 대학원때 정말 요령없이 공부했다. 논문하나를 시작하면 한자 한자 모두 이해하지 않으면 넘어갈수가 없었다. 그래서 관련된 논문을 끝없이 읽어야했고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면 그 분야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단점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규칙대로 살면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령을 부린다. 편해진다. 논문도 아는 것 이해되는 것을 따라 조금씩 살을 붙이면 시간을 절약하여 빨리 많은 논문을 읽어낼 수가 있다. 요즘처럼 많은 논문이 매주 터져나오면 이런 요령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요령을 너무 부리면 깊이가 없어진다. 오래 못 간다. 자기 꾀에 자기가 무너진다는 말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세상을 살면서 규칙대로 하되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요령을 부리고 살면 그게 정답이다.

요령을 너무 부리면 무리해서 편법을 저질러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법이란 말 그대로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은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다. 이 경우 아직도 법에 어극나지 않으니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염치가 없다는 말도 편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정법을 어기진 안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피해를 준다. 염치없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는 동네는 논이 많은 곳이다. 그러나 도시 내의 논이란 것이 유혹이 많은 곳이다. 형질을 변경하여 건물을 지으면 논이 되기 때문이다. 15년전 이사왔을 때는 모두 논이었던 이곳이 삼분의 일은 밭 혹은 나무 심어놓은 곳으로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곳에 건물을 지을 것이다. 이런 일은 국회의원 혹은 지역관리 선거때 많이 발생한다. 그 과정이 편법이기 때문이다. 의도가 그린벨트를 훼손하고 건물을 지을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관리도 눈 감아주고 허가를 해 준다. 당연히 뒷거래가 있었을 법하다. 이것은 소위 편법에 속한다. 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불편한 진실이다.

사실 사람살이는 서로 신뢰하는 못하면 같이 살 수 없는 곳이다. 교수들의 연구비도 예부터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나 대학교때는 어느 교수는 연구비로 차도 샀다는 말도 돌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규칙을 강화하여 지금은 그런 불법이 많이 사라졌지만 인간사회에 완벽한 것이 없다. 규칙은 그 많은 것들을 담아 놓을 수가 없다. 최소한의 것을 담아놓고 나머지는 우리가 공유하는 규범에 의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의 이제는 너무 많은 규칙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머리 좋은 교수들은 여전히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요령이나 때로는 편법에 의존하는 것이다. 요령을 너무 피우면 자기가 편법을 저질러도 모른다. 마치 늑대소년의 이야기처럼. 그래서 요령을 부리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 내가 불편해도 참아내야 길게는 힘을 낼 수 있다. 내가 지금 연구비가 부족하다고 요령부려 돈을 마련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편법도 불사한다. 그러면 그 죄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지금 힘들면 힘들게 가는 것이 정석이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 마음이 흐트러진다. 사람에 대한 실망과 여전히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우리의 의무가...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내 제자들이 어렵더라도 요령이나 편법보다는 규범을 지키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게 길게 숨쉬는 것이니까... 그래야 스스로에게 내 가족들에게 떳떳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