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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다는 것과 욕심의 차이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6-05-07
  • 조회수7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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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에 대한 이미지란 것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나의 본질에 대한 판단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 눈에 투영된 나 지신의 모습이다. 거울 속의 나처럼 나의 본질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겉에 드러난 모습이다. 난 어렸을 때 거울의 나를 보며 나의 못생긴 모습이 너무 맘에 안 들어 거울 보기를 꺼려했다. 나이가 든 지금도 나의 그런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너무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너무 본질하고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난 나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후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꼭 잘 살아왔다고 볼 수도 없다. 나의 과오가 많은 때문일 것이다. 다시 산다면 과연 그런 잘못을 피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몇몇쯤은 피할 수 있을까.. 아마 지금의 경험을 갖고 다시 산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런 잘못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인생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잘못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나의 삶에서 연구를 빼고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냈으니 시간으로 따지면 별로 달리 한 것이 없다. 집안일도 마누라에게 미루고 장남이라 오는 압력도 모두 작은 아버지에게 미루고 가능한 모든 시간을 여기에 투자한 셈이다. 젊었을 때 마누라의 최대 불만은 밥을 먹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과 있으며 가족과 대화하지 못하는 내가 한없이 싫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부분은 포기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아픈 부분이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일을 최소화시키려고 했다. 나한테는 연구란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것을 찾아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지만, 경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리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나한테 주어지지 않았다. 지방대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야했고 외국의 좋은 시설과 좋은 연구 인력과 싸워야했고 우리 사회가 갖는 비효율적인 조직과 싸워야했다. 우리처럼 어울리기 좋아하는 민족이 없다. 우리의 장점이긴 하지만 연구를 위해서는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다. 시간과의 싸움... 이것이 나한테는 극복해야할 대상이었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뒤에서 수군댔고 그러거나 말거나 난 연구와 씨름해야 했고... 연구시설을 갖추기 위해, 연구비를 따기 위해 프러포우절과 싸워야 했고 학생들과 연구주제를 갖고 늘 토론하며 논문을 써 왔다. 덕택에 또라이됐고 또 내가 모른 사이에 적도 만들어졌다. 어느새 나를 싫어하는 앤티가 생긴 것이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 눈에 띠기 시작했으니 그런 앤티도 생긴 것이다. 그런 앤티 다 무시하고 지금까지 살았으니 왠 불평이냐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성격의 앤티도 있다.

ibs 연구단장을 시작하면서 이런 앤티도 더욱 늘어났다. 하기야 모두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시작했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ibs는 정말 나한테는 내 연구에서 도약할 수 좋은 기회다. 그래서 처음부터 좋은 계획을 수립하려고 절치 부심했다. 그래서 건물도 마련하고 학교로부터 장비도 지원받고 전임교수도 10명이나 지원을 약속받았다. 다른 기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다. 대학내에 연구소다운 연구소를 만들자는 것이 나의 처음부터 계획이었고 그것이 ibs의 미션과 맞는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명실상부한 연구기관으로 발전하고 있다. 연구결과도 이제 조금씩 나오고 있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심장병이 생겨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힘이 난다. 아직도 고쳐가야 할 일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이런 기대되는 연구결과들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런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매년 연구심의 위원의 의견은 연구단 인력규모를 줄이란다. 방만 운영이란다. 그런 뒤에는 나의 개인적인 욕심이 자리잡고 있단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연구소 내에 있는 내 동료들조차 내가 욕심이 많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좋게 봐주는 사람들조차도 내가 일 욕심이 많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 상당히 충격적이다. 다른 사람들한테 비친 나의 모습이 내가 욕심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난 요즈음 내가 과연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 생각에 잠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을까. 과연 욕심으로 살아왔을까... 어렸을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나에게 아예 관심 밖이었다. 아마도 그것을 잡기에는 너무 어려운 대상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공부라는 것을 선택했고 그냥 좋아서 시작한 물리공부가 나의 인생이 되어버렸다. 박사를 할 때도 하고 나서 무엇을 하겠다는 욕심이 없었다. 그냥 학위를 하면 무엇인가 되겠지.. 교수가 된 후에도 교수라는 직업이 나에게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한학기 5과목을 가르쳐야했던 나에게는 연구실에서 기숙하면서 수업준비하고 채점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면서 연구를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주제부터 시작했다. 4년만에 박사학위를 한 나에게는 경험이 부족해 좋은 연구 주제를 찾기 위한 노력이 그리 쉽지 않았다. 수도 없이 논문을 읽었다. 한가지 주제를 정하고 캐기 시작하여 그것들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연구주제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욕심은 나에게 과분한 말이었다. 그저 연구를 하기 위한 나의 최선이었을 뿐.. 당시에 연구를 하기보다는 그냥 강의만 하고 쉬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논문도 꼭 prl 쓰지 않고 그 외 여타 저널에 내는 정도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연구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도전이었고 그래서 어려운 길에 도전한 것 뿐이다. 능력이 출중하지 않는 나는 남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만나지 않은 것 뿐이고... 내가 장학금을 받고 대학과 대학원을 다닌 것처럼 나도 내 대학원생들이 재정적인 지원을 해 걱정없이 연구에 집중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연구비를 받기 위해 정말 노력했다. 내 실험실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일단 받아주자는 것이 내 원칙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연구비를 받아내야 했다. IBS 전에도 매년 최소 10억원을 받아냈지만 그것은 내 욕심이 아니었고 내 도전이자 학생들에 대한 의무였다.

IBS를 시작하면서 IBS 미션처럼 교내에 있는 교수들이 같이 참여하여 공동연구를 할 수 있도록 팀을 꾸렸다. 이것은 학교당국의 바램 사항이기도 했다. 어려워도 이런 그림을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결과가 방만 운영이고 내 욕심이다... 그 말이 맞다고 하자. 그럼 내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참여교수 수를 줄이고 자동적으로 학생수도 줄을 것이고 그렇게 규모를 축소하자는 것일까. 그러면 내가 욕심없는 사람이 될까? 이것이 나의 선택이어야 할까? 그러면 다른 참여교수들도 머릿속에 내가 욕심을 버렸다고 인정할까?? 중간 평가 이후에 이런 그림을 그린다면 모든 사람들 머리에서 내가 욕심있는 사람이라는 그림이 지워질까?

아니 이게 아니다. 내가 욕심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을 설득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난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자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그런 내가 욕심이 많다고 하면 그저 그 뿐이다. 난 그렇게 살지 않았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된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그저 걸어가면 그 뿐이다.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다. 그 다음은 내가 욕심장이라고 뒷말하는 사람들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이 연구환경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