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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6-03-05
  • 조회수5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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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지난 월요일 여기 도착해 금요일 오늘까지 급한 일정을 소화하기 쉽지 않았는데 라운지에 앉아 여행을 정리하는 지금 인도라는 말에 선뜻 무슨 정의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냥 점점점...

한밤중 여행을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00:20 분이라는 시간과 날짜라는 것에 익숙지 않아 하루를 착각해 비행기를 놓치니 모든 일이 꼬였다. 당장 오는 비행기 스케줄까지 모두 취소되었다. 더 어려움은 인도 국내비행기 예약이 한국에서 안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소규모 여행사 문제인지 아니면 원천적인 문제인지 잘 이해가 되질 않지만 다음 여행을 위해서는 꼭 집고 가야 할 문제이다. 이렇게 스케줄이 꼬이다보니 인도내의 뱅갈로에서 푸네까지 스케줄이 정해지지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결국 아제이한테 전화하고 비서한테 연락을 취해 겨우 스케줄링을 다시 하고 하루 늦게 뱅갈로에 도착했다. 인도가 지리적으로는 유럽보다 가깝지만 중간에 싱가폴 경유지를 거쳐야 하니 유럽가는 시간보다 더 걸린다. 여기 와서 안 것이지만 인도에 직접 도착하는 아시아나, 칼 비행기가 델리, 체나이등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지도를 보니 체나이가 제일 가깝다. 델리는 북부에 해당하고 내가 온 곳은 뱅갈루루 남쪽에 있으니 지금의 스케줄도 시간상으로 최적이 아니다. 여행사가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스케줄링은 했다니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 여행사도 배가 부른 걸까...

뱅갈루루에 도착해 푸네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푸네에 아침에 도착하니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학회장으로 바로 가니 내가 세션 좌장으로 되어 있는 시간을 맞추어 일정을 다 소화할 수 있었다. 내 늦은 이야기는 이 사람들에게 좋은 횟감이었다. 뜻밖에도 발표하는 내용들이 우수했다. 좋은 생각들이 있었고 깊이도 좋았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연구하는 모습들이 두드러졌다. 나이든 사람은 나이든 사람대로 일에 깊이가 있어 좋았다. 학회장은 IISc 새로운 건물에서 진행되었는데 어느 곳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2년에 한번씩 열리는 국제학회이니 참석자도 500명이 넘었다.

오기전에 들은 이야기들 그리고 내가 경험한 모든 과거의 흔적들은 인도인이란 내게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는 딴 판이다. 사람들이 순박하다. 신실해보인다. 대학 밖의 세상은 달라 보이지만 적어도 대학 안에서의 이들의 환경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오가며 보는 밖의 사람들은 완전 대조적이다. 모두 너무 가난하게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내게는 모두 내 어렸을 때의 친숙한 모습들이다. 내 아버지를 회상해본다. 외국인들이 본 내 아버지의 모습도 저랬을 것이다. 시커멓게 그을은 얼굴, 피곤한 표정들... 내 부모들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았을까.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에 희망이 없다. 여기는 화장실에 청소하는 사람들이 상주한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나오면 종이가 있는 곳도 가르쳐주고 금방 청소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운 표정이 아닌 순박한 표정들이다. 그나마 작은 돈이라도 받는 월급이 있어 그런 것일까. 마음 같아서는 팁이라도 주고 싶다. 하기야 이런 사람의 마음이 어찌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일까.

호텔은 원래 기숙사로 활용된 곳이라고 한다, 내 방은 방 두개짜리 큰 방이다. 그러나 청소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불편하다. 에어콘 소리 때문에 잠자리도 편하지 않다. 우리는 너무 편한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청소하는 사람이 다른 호텔과 마찬지지로 있지만 청소는 하나마나다. 젊은 친구가 아직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호텔 매니져도 말은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아직 직원들을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 보고 들은 것이 없으면 기준도 없으니 어떻게 해야 잘하는지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사람의 눈을 뜨게 한다. 음식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모르는 것이 많지만 여기 사람들 눈치보며 먹을 것을 고르니 향료 냄새도 나지 않는다. 학교 식당이라 늘 반복하는 단점을 빼고는...

플내너리 토크를 끝내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질문하고 토의를 했다. 여기는 영어가 되어 토의에 어려움이 없어 좋다. 이것이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와 다른 점이다. 우리는 영어를 못해 항상 애를 먹는다. 여러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일하기를 원했다. 그 중 프랑스에 있는 인도 과학자 아비는 정말 관심사가 비슷했다. 아제이도 너무 비슷해 서로 말해놓고 웃을 정도였다. 지구상 서로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생각은 비슷하니 신기할 수 밖에 없다. 나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아제이는 올헤 정년이지만 업적이 우수해 70세까지 일을 할 수 있단다. 아제이는 말하는 것을 보면 철학자같다. 내가 여기오면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것도 모두 우리 삶 중의 하나이지 하나도 누구탓 할 것이 없다했다. 아무리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화낼 일이 없다. 언젠가부터인가 작은 일을 화를 많이 내는 내 모습과 많이 비교된다. 난 아직 먼 것이다.

그렇게 그 다음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뱅갈루루에 돌아와 인도나노16에 참석했다. 학회 장소는 오성스타 호텔이니 불편할 것이 없었다. 오픈닝은 생각보다 굉장히 형식적이었다. 목소리 좋은 사회자, 정부관계자등 모두 단상에 앉아있다. 시작 시간이 한 시간이 넘어도 모두 정부관계자를 기다리고 있다. 늦었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늦는다고 방송하는 사람도 없다. 시작하자마자 코멘트하는 모든 사람들이 단상에 있는 사람들을 열거하면서 고맙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굉장히 길다. 그 중 라오 교수는 80이 넘는 고령이지만 모든 사람들 중 제일 힘이 넘친다. 원고도 없지만 제일 유창하다. 왜 이 사람이 인도에서 제일 힘이 있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연설 내용이 철학적이다. 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거창한 건물이 필요없다. 실험실에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두 번째 키노트 강의에 내가 있었다. 청중이 절반은 회사에서 온 것을 감안하여 응용 주제를 포함시켰다. 모처럼 하는 응용 강의지만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반응이 아주 좋았다. 기자도 와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TV에 인도나노와 전망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해서 간단히 응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져 긴장하지 않고 잘하는 내 자신에 대해 놀라웠다. 내가 변한 것이다. 어렸을 때 남 앞에 나서면 얼굴이 빨개진 내가 변한 것이다. 세상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아니 내가 적응한 것이다. 전시회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같이 밟고 있다.

저녁 5시에 택시를 타고 호텔에 나오니 길이 꽉 막혀있다. 7:40분 비행기이니 시간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급했다. 알고보니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나와 길을 막고 있었다. 물 문제를 갖고 싸우고 있었는데 정치가들이 끼여들어 세력 싸움속에 농민들이 이용당하고 있었다. 상황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정치가들은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런데 길가의 모든 사람들은 의연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일과는 무관한 듯하다. 인도는 얼핏보면 혼돈의 세계 같지만 그 혼돈속에서 평화가 있다. 겉으로는 무력으로 진화하여 평안해보이지만 내부적으로 불편한 중국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혼돈에도 인도는 망할 것 같지 않다. 테러 때문에 호텔에 들어가려면 모두 x-ray 검사를 해야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상들이다. 운전기사도 별로 서두르지 않는다. 그 시간 안에는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고속도로도 우리가 상상하는 도로와 다르다. 모두 중앙선을 침범하여 지나가다 상대의 차가 오면 자연스럽게 비켜간다. 모든 차가 삑삑거린다. 길가의 무심한 표정의 사람들, 상가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지나간다. 이것이 인도의 일상이다.

그렇게 델리에 도착하니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저녁 늦게 아니 새벽 2:30 아시아나 비행기다. 알고 보니 모든 국제선 비행기가 밤중이나 새벽에 출발하고 있었다. 국제선을 타기 위해 국제선 공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티켓이 없었다. 여기 오면서 스케줄을 바꾸어 미쳐 이티켓을 프린트를 못한 것이다. 다행히 옥주가 전화로 보낸 이티켓을 보여주니 자세히 살펴보니 내 이름은 없고 비행기 시간만 보내준 것이었다. 경찰이 들여보내 주질 않는다. 알고보니 테러 때문에 이티켓이 없는 사람은 아예 입구에서 들여보내 주질 않았다. 우리하고는 아주 다른 시스템이다. 티켓을 얻으려면 공항에 들어가야하는데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티켓을 프린트하는 곳이 밖에 있단다. 거기를 가 보았지만 이리저리 해보더니 다른데 가보란다. 눈치가 아직 아마추어라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다른 곳에 가보라 해 가보았지만 또 안된다. 결국 그러기를 몇번 반복했지만 가는 곳마다 안 된단다. 마지막 가본 곳은 에어 아시아 비행기회사로 star alliance다. 이는 아시아나와 코드 쉐어는 하는 비행기라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예약번호도 필요없었다, 그런데 옆에 이태리 부부가 창구를 향해 욕을 해대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12시간이나 그러고 있었다. 그 사람도 이곳 저곳 해메다 이곳까지 와서 안 되는 것을 알고 분노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도 상황을 파악했다. 이 사람들은 절대 안된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못하면 저 곳에 가보라고 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루프 함정이다. 사실 옥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그 시간 한국은 3시가 다 되는 한 밤중이라 자는 사람을 깨우기 싫어 이리저리 시도했지만 이제 들어가지 못하면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두시간을 해메고 전화하니 다행히 옥주가 이티켓을 갖고 있어 전화로 사진 찍어 보내와 겨우 시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비행기 표를 끊으니 그나마 창문 좌석 밖에 없었다. 비즈니스라도 불편한 좌석인 것이다.

그렇게 들어가니 여권 검사하는 줄이 끝이 없다, 하기야 모든 비행기가 집중되어 있는 시간이니 그럴법하지만 왜 그렇게 비행기 시간을 배차하는지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델리 비행장이 제일 좋은 곳이라는 어워드를 받았다고 사방에 광고를 부쳐놓았지만 전혀 실감이 나질 않는다. 또 다른 사기 같다. 출국 심사자는 이런 곳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들과 농담 따먹기한다. 내 차례가 되어 난 일부러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쳐다보았다. 농담하려다 내 표정보고 그냥 처리해준다. 이것도 인도의 한 모습이다. 자기가 편하면 다른 사람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우리 같으면 더 많은 관리를 배치해 빨리 끝내려 했을 것이다. 인도가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먼 것이다. 델리 공항은 인도 서울인데 뱅갈로나 푸네와 달리 모두 웃음기 없는 얼굴들이다. 여기도 손님이 우선인 우리와 전통을 같이하지만 서울이라는 곳은 다르다. 도시를 그렇게 사람을 메마르게 한다.

생각해보니 나도 도시에 살고 나도 그렇게 무미건조한 사람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전에 시골에 살던 순진한 나의 모습은 없어졌을 것이고 어느새 삶에 찌든 도시인의 삶의 얼굴로 변해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웃음기 잃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애써 떠올려 본다. 그렇다.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이들에게도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게도 작은 미소의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