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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2013.12.16 19:22:15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12-27
  • 조회수1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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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zbxe/?document_srl=139683 에서 퍼옴.


우리 인간 사회는 법에 의해 유지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개인들의 상호 신뢰 또는 믿음없이 유지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법은 보이는 곳에서는 지켜지지만 보이지 않은 곳에서의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의 양심이다. 우리의 양심이 무너지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질 수 밖에 없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해를 끼치지 않고 상식적으로 행동한다는 말이다. 법 없이 살 수는 있지만 서로간의 신뢰나 믿음없이 살 수는 없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위계 질서란 것이 있어 힘있는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힘있는 자가 무리를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에 그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 믿음이 깨지만 모두 이탈한다.

연구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교수란 직업이 독립성이 강한 연구 집단이다. 그런 교수들을 모아 연구소를 만들고 협력연구를 통해 한가지의 미션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일까. 이것은 나만의 몽상일까.. ibs의 미션은 실현 가능할까.. 그냥 전처럼 연구비 규모를 줄이고 나 혼자만 연구하면 더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텐데 왜 이렇게 사람을 모아놓고 고민할까. 이것이 또 다른 나의 판단 잘못일까.. 그냥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규모를 줄여 전처럼 연구할 수 있을까.. 난 30억만 있으면 전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장비는 어차피 다른 곳에서 공유하거나 공동연구하면 된다. 너무 모든 것이 불편하다. 단순히 외부에서 공공의 적일뿐만 아니라 이제는 내부에서조차 공공의 적인 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그냥 포기하고 싶다...

그러나 임교수님의 말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할까. 이것이 나의 업보일까. 이형재 교수님이 고민하던 것이 이제는 나의 업보가 되는 것일까... 이것이 꼭 리더가 짊어질 짐이라면 난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칼이 내 가슴을 뚫고 들어올까지 버티어야 된다는 그 말씀이 너무 무겁다. 감당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인내심이 있을까. 난 그렇게 자비로운 사람일까.. 이형재 교수님의 그 처진 어깨가 이제는 내 모습이 된 것 같아 너무 싫은데 그것이 현실인가 보다. 리더는 되받아 치는 것보다 그냥 받아들이고 견뎌야 된다는 것.. 전에 이형재 교수님이 하시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흥분해서 덤볐을 때 그냥 덤덤히 받아 주시던 심정이 지금의 나의 심정일까... 참으로 후회 막급하다. 나한테 일은 다 시키시면서 연구비는 가장 적게 받는다고 불평해도 그냥 그렇게 묵묵히 계신 것은 나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을까.. 내가 이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 말씀 안하시고 그냥 눈물만 흘리신 것은 그런 신뢰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을까.. 내가 그 분의 가슴에 칼을 꽂은 것일까.. 내가 매년 섣날 그 분을 찾아가 세배드리는 것은 이런 나의 사죄감 때문인지 모른다. 그것으로 사죄가 어림없는 것이지만... 내가 잘하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위로하고 살지만 그것은 나의 합리화에 불과할 것이다. 그 상처는 싣겨지지 않으니까..

이제 내가 그 분의 길을 가고 있다. 몇 사람들이 그 분의 가슴에 칼을 꽃아 퇴임식까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지만, 그것을 보고 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여기서 멈출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난 실패하고 싶지 않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 내 가슴에 칼이 들어와도 무너지지 않을만큼 나를 단련해야 한다. 더 강한 투사가 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어차피 삶이 전투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나에게 남은 삶이 연구라면 이 연구에서 지지않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 투사의 길을 버릴 수 없으면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버텨야 한다. 이제까지보다 더 혹독히 나를 몰아세워야 한다. 그렇게 한 순간 순간을 즐겨야 한다. 내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모든 사람들이 내게 등을 보이는 순간까지도 난 나를 믿어야 한다. 마음속의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이성의 촉각을 세워야 한다.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해 보는 것이다. 비록 실패할지라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리더가 할 일이 아니다. 내 어깨의 짐이 무겁다고 벗어버리면 결국 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비겁자가 되는 것이다. 내 어깨가 무너질때까지 가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