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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2013.09.22 14:46:55>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9-23
  • 조회수14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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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zbxe/?document_srl=59382 에서 옮김.


이번 여름은 그야말로 공부하는 재미로 보낸 것 같다. 논문을 읽는 재미,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재미.... 그것도 잠시 또 학회 일정이 밀려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다. 지난주에는 중국 베이징,, 사람 만나고, 의견 나누고..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잠시 귀국해 학교 밀린 일 정신없이 처리하고 또 일본 미팅이다. 대만 친구들과 공동연구 추진하기로 한 것이 이번 여행의 값진 수확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대만도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먹었다. 이차원 면상 구조중 MoS2, WS2, WSe2등 제조에 우리보다 저만치 먼저 가 있다.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한심하다. 논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탓이다. 일년 안에 우리도 그렇게 따라 갈 수 있을까. 학생들한테 맡겨놓은 내가 잘못이다. 그래도 공동연구를 통해 디바이스에서 뒤처지지 말아야겠다. 시료를 마음대로 얻을 수 있으니 당분간 우리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7월 학회 때문에 잠시 머무른 이곳 래디슨 블루 호텔 다시 보니 그대로 기억난다. 공항에 내리니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일본에서 느꼈던 더운 느낌이 없고 따뜻한 느낌만 있다. 하긴 9월 중순의 북쪽 핼싱키이니 그럴만도 하다. 아직도 푸른 나무가 무성하지만 가을 벌써 숨어있음을 느낀다. 호텔 창밖의 나무도 벌써 노란 잎들을 달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비춰오는 햇살이 나를 차분히 만든다. 아무리 여름이 그렇게 성화대도 고개 숙일 때가 온 것이다. 어김없는 자연의 법칙... 또 학교 바로 옆에 늪지가 있어 가보니 어렸을 적 보았던 먹을 수 있는 버섯이 가득하다. 그 버섯 향이 느껴진다. 때 맞추어 오면 좋은 수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중에 여기 교수한테 불어보니 수확기에는 버섯을 딴단다.

이곳의 박사학위는 흥미롭다. 내가 opponent이고 지도교수는 가만히 앉아있다. 단 셋이다. 다른 위원은 모두 박사학위제작에 도움을 준 사람이다. 그래서 마지막 디펜스에서는 제삼자인 나만 공격(?)하게 되어 있다. 그야말로 학위자는 내가 공격하여 떨어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름이 opponent 인가보다. 심사위원이 까만 정식 양복을 입어야 하고 넥타이도 메야 한다. 혹시나 해서 가져간 양복이 너무 다행이다. 심사장에 들어가는 것도 청중은 미리 들어가 있어야 하고 심사위원은 박사 심볼인 까만 중절모를 지도교수가 손에 들고 (모시고??) 학생이 뒤를 그리고 내가 맨 뒤로 입장한다. 발표순서도 지도교수가 박사학위 디펜스를 천명하고 opponent를 소개한다. 그런 다음 발표자가 발표하고 난 다음 내가 다시 이 분야 관련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난 다음 질문에 들어간다. opponent는 질문이 끝나면 곧바로 심사 결정을 청중에게 알린다. 그리고 같은 순서로 다시 발표장을 나오면 발표장 밖에는 커피가 준비되어 있고 그 자리에서 간단히 축하를 해 준다. 그리고 opponent는 심사결과 리포트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저녁에는 심사위원을 비롯해 관련자를 발표자가 초청하여 파티를 연다. 가보니 음식점이 아니고 개인 집을 빌려 음식도 catering 하여 파티를 한다. 이 자리에도 정장을 해야하지만 나만 정장을 하고 오지 않았다. 정장을 싫어하는 내가 캐주얼하게 간 탓으로 조금 미안했다. 발표자 남편이 모든 것을 옆에서 도와주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이제 유럽에서는 남자가 집안일하고 아기 보는 것도 그리 낫설지 않다.

우리와 비교하면 상당히 공식적이서 조금은 자연스럽지 않았지만 일생에 한번 있는 일이니 그런 것쯤은 괜찮다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의 신분 변화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축하와 동시에 책임감도 주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런 절차에 비하면 우린 너무 현실적이다. 전에는 끝난 후 학생이 심사위원한테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학생한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나는 이 부분을 없앴지만 그러고 보면 너무 절차가 없다. 우리 실험실 내부의 칵테일 파티도 사실상 우리 실험실 사람만 참여하기 때문에 전체가 축하해 주는 의미가 없다. 과에서 공식적으로 파티를 열어주는 것은 어떨까... 혹은 선물을 준비한다든가... 한번쯤은 생각해 봄 직하다. 이날만은 학생이 주인공이니 주인공 대접을 해 주는 것이 좋은 추억도 되고 나쁘지 않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