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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10
  • 조회수8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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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다. 조금 따뜻해졌다 생각했는데 또 다시 비가 오고 추워졌다. 4월 토요일 오후 같지 않고 유럽의 우중충한 하늘을 보는 것 같다. 잠깐 나오려 했던 집 앞 목련이 또 다시 들어갈 것 같다. 얼마나 지루할까…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다림이 필요하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편의 논문을 작성하는 연구자들의 기다림은 그 어느 것보다 지루하다.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우선 그 동안 그런 일이 진행되었는지 선행연구 진행사항을 점검해야 한다. 연구란 이미 진행되어 있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선행연구가 없으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실험을 계획하고 각 단계마다 생기는 문제점을 예상하고 필요한 장비, 이론 등을 준비한다. 그렇게 진행되는 실험은 때로는 시간이 많이 걸려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데이터가 예상보다 나오지 않을 때는 반복실험을 계속하고 수없이 확인한다. 그렇게 확인하고 데이터를 하나씩 모아 구슬을 꿰어 한 개를 목걸이를 완성하듯 스토리를 짜 맞추어 간다. 그 과정이 끝나면 이제 논문을 작성해야 한다. 그림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 쉽지 않다. 단순히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이 아니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는 개념이 잘 드러나도록 좋은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이 때는 예술적인 감각도 필요하다. 그림 준비는 때로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일년을 넘기기도 한다. 그렇게 그림이 준비되면 논문을 쓴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실험 못지 않게 어렵다. 많은 연구자들이 제일 어려워 하는 부분이다. 나 역시 그 동안 수없이 논문을 많이 써 왔지만 지금도 논문쓰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다. 아니 더 어려워진 것 같다. 한문장 한문장을 신경써야 한다. 그런 다음 오는 것은 커버레터. 이것 역시 온갖 생각이 많이 오가는 부분이다. 그렇게 논문을 제출하면 마치 아기가 태어난 것처럼 뿌듯함, 개운함, 성취감 등이 온다. 아이 출산이 힘든 과정이라면 이 과정 역시 쉽지 않는 과정이다.

그러나 지루한 게임은 끝나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요즘은 각 저널마다 경쟁이 심하고 따라서 에디터의 선별과정이 있다. nature 나 science 의 경우 한달 이내에 이 답이 온다. 이 답이 오는 과정 또한 매우 지루하다. 늘 이메일에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에디터 선별과정을 지난다 해도 짧게는 한달 길게는 두달을 기다려야 리뷰어들의 의견이 온다. 운이 좋으면 긍정적인 결과가 있고 때로는 또 다른 실험을 요구하는 의견이 온다. 그런 경우 마감일이 주어지고 그때부터 또 피말리는 실험이 계속된다.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 나면 또 다른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렇게 또 한달을 기다려야 결과를 보게 된다.

이런 경험을 많이 한 나도 이렇게 지루한데 학생들은 오죽할까. 마음을 비우는 일이 쉽지 않다. 학생들의 경우는 더구나 이런 결과가 졸업하고 연관되어 있으면 더욱 스트레스가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따라오는 학생들이 대견하다. 때로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꾸짖기도 하지만 이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다. 기다림은 특히 젊은이들한테 더욱 어려운 부분이다. 졸업을 앞 둔 학생들의 경우 결과가 나오는 않는 답답함은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 시간과의 싸움, 인내와의 싸움… 전에 몸이 아팠을 때 일년 이상 약을 먹어야 하는 나에게는 정말 힘든 고역이었다.

이 춥고 긴 겨울을 기다리는 목련은 얼마나 지루할까. 잠깐 봄이 오나 싶었는데 또 다시 추워지니 정말 답답한 노릇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지나는 법, 굴러도 국방부의 시계는 간다는 군대생활처럼 그래도 봄은 온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온다. 아무리 추워도 기다리다 보면 화사한 봄날처럼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우리에게도 영광이 있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Cheer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