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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친다는 것 <2013.03.19 22:46:03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10
  • 조회수13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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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3.03.19 22:46:03



옛부터 사람들은 가르치는 일을 천직이라 여겼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잘 몰랐었다. 그저 생각없이 단순히 반복되는 삶이 싫었고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하는 그런 삶을 원했고 그러다보니 연구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연구하기가 좋아서 대학교수가 되었다. 대학에 있는 한 가르치는 일을 피할 수 없었고 그래서 초기에는 가르치는 일에 열중할 때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애정을 쏟고 그렇게 따라오는 학생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었다. 아마도 천직이라는 의미는 가르치면 가난하게 산다는 것일 것이고 더 나아가 어느 순간에도 학생들을 무한히 사랑해야 한다는 가정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그 어떤 배신감을 느껴도 이 일을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 아닐까.

살면서 가르치는 일보다는 연구라는 일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고 더욱 많은 시간을 이것에 투자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학문의 전수에 국한할 수 밖에 없다고 단정지었고 그렇게 나 자신을 합리화 시키며 살아왔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내가 보여줄 수는 없지만 학문적으로 몸으로 학생들에게 보여주려고 애써 왔다고 자부했다. 내 개인의 삶의 모습은 모순 투성이인데 어떻게 학생들의 삶에 관여하겠는가 생각하고 학생들의 개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연구에 있어서만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누구든 내 실험실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디에 가더라도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때로는 가혹하게 학생들을 몰아 부쳤다. 때로는 가혹하게 채찍을 쓰고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같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스스로 표어도 만들었다. He may be a fool but he is mine. 그리고 외국인들을 섞어 영어를 훈련시켰고 국제화를 위해 힘썼다. 그리고 스스로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The best or the first. Publish or perish. 등의 표어가 그런 우리 실험실의 분위기를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은 그런 나에게서 무엇을 배울까. 실험실 내의 경쟁을 유도하는데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좋은 논문을 쓰는 사람은 대우를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의기소침해 소외당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논문을 쓰고 박사를 하고 포스트닥을 하고 또 혹자는 교수가 되기도 한다. 학생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선생으로서 가장 보람있는 일이다. 좋은 논문을 쓰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지나쳐 외부에 거만으로 넘치면 그것은 안 쓰는 것보다 못하다. 벼도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 하지 않은가. 내가 좋은 논문 하나 쓰는 것은 정말 운이 좋은 것 뿐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노력하는 사람은 세상에 별처럼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런 논문을 쓸 수 있다. 그런 노력을 계속하는 한…. 난 무엇을 가르쳤을까… 적어도 실험실에서 그런 모습들을 유도하지는 않았는지… 난 헛 산 것이다.

박사과정이 되었다고 석사과정보다 더 많이 아는 것 일까. 박사를 했다고 학생들보다 더 많이 알고 배우는 일을 게을리해도 될까. 경험이 많다고 발표자료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자기를 발전시키는 일을 게을리 해도 될까. 아니 게을러도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은 가능한가. 난 스스로 죽을 때가 나의 인생의 정점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이 말에 정직해 지려 애쓴다. 이것이 나를 게으르지 못하게 하는 말이다. 이것이 나를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아는 것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하게 해 주는 말이다. 같은 실험데이터라 하더라도 한번 생각해보고… 자면서도 골프를 치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한번 더 생각해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 애쓴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말뿐인 구호가 된 것 같다. 학생들은 따라오지 않는다. 나는 헛 산 것이다. 난 선생 자격이 없는 것이다. 아니 연구자로서도 실패한 것이다.

우울하다. 나의 죽음이 이렇게 우울할까… 엊그제 감사하던 나의 마음은 어디 가고 우울함만 남았을까. 무엇을 바라는가… 어차피 모두가 혼자인 것을…스스로 자기 몫이 있는 법… 내일은 혼자서 멀리 아무 생각없이 달려야겠다. 어디론가 정처없이… 그래서 이 우울한 놈을 떨어버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