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3.03.16 15:04:34
정말 얼마 만일까. 햇살 좋은 토요일 조용한 오후를 연구실에서 맞는 것이… 왜 이리 사는 것이 바쁜 걸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싶은데 생각뿐이다. 그저께는 모처럼 핼스장에 갔더니 온 몸이 아프다. 그러나 오늘 이 혼자있는 시간이 너무 좋다. 나만의 자유…
지난 주말에는 시간을 내어 엄마와 함께 춘천에 계시는 작은 아버지 집을 찾아갔다. 말로만 늘 찾아 뵌다고 하면서 못한 일을 모처럼 엄마가 치료차 서울에 머물러 가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일요일 도로가 밀릴까 봐 늦잠을 뒤로 하고 아침 일찍 서울 누이 집으로 가 엄마와 함께 경춘 고속도로를 탔다. 우리를 보는 엄마는 벌써 소풍가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아들과 함께 어디를 가기를 좋아하는 엄마지만 바쁘다는 핑계 대고 제대로 시간 한번 못 내는 내가 무척 죄스러웠다. 몸이 불편하셔서 걸음을 제대로 못 걸어도 마음을 벌써 춘천으로 날아가신다. 아버지 다섯 형제 중 이제 두분 작은 아버지만 남으셨다. 그 중 춘천에 계신 작은 아버지는 셋째로 젊어서 밖에 나가 사셨어도 작은 어머니의 심성이 착해 엄마가 늘 좋아하시던 분들이었다. 의외로 도로는 막히지 않고 단숨에 춘천을 달려갔다. 멀미가 심하신 엄마라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아들 차를 타고 가니 멀미도 안 하신다고 좋아하신다. 마음이 조그라든다. 그게 나인 것이다.
몇 년 만에 뵈는 작은 엄마도 많이 변하셨다. 작년에 무릎 수술을 두 번이나 하셔서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기셨다. 젊어서 고우셨던 분인데 병마가 힘들게 한 것이다. 나를 보고 장손자 왔다고 얼싸안고 웃으시며 생기는 눈가의 패인 주름에 그리움이 배어 있다. 작은 아버지도 심장수술을 몇 번 받으셨지만 걸으시는 다리에 여전히 힘이 좋으시다. 여전히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작은 아버지는 늙으시면서 영락없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을 닮았다. 미국에 있으면서 할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한 나는 늘 아쉬운 마음이 있다. 어렸을 때 할머니는 나의 좋은 동무였다. 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바쁜 엄마를 대신에 할머니의 사랑을 받았다. 엄마도 작년에 본 이후 못보고 돌아가시는 줄 알았는데 또 본다고 행복해 하신다. 모두 좋으신 분들이다. 이런게 행복일까…..
장손주 온다고 두 분이서 점심을 준비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산나물과 푸성귀가 한 상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가끔 올 때 해주셨던 이면수 요리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여전히 이면수 요리를 하셨다. 그 맛이 같진 않지만 작은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밥상이었다. 그 때는 내가 결혼하면 작은 엄마와 같은 여자와 결혼하리라 생각했었다. 무릎 수술을 두 번이나 하시는 중에도 찾아가 뵙지 못했다. 장손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다 했지만 한 인간으로서 두 분한테 잘못한 것이 느껴진다. 과학자로서 산다는 것이 정말 무엇일까.. 그렇게 바삐 살아야만 할까.. 아니 이 모든 것은 나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계시는 내내 엄마는 수다를 떨었다. 말씀이 어눌하지만 낮잠도 마다하시고 내내 말씀하셨다. 집안 문중에 관심이 많으신 작은 아버지로부터 새로운 것도 알았다. 1대조 할아버지의 산소가 대전 국립공원에 있다고 한다. 서기 660-668년에 한국에서 살았던 조상의 그 시절 묘가 지금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시간이 나면 한번 찾아가 보리라 마음 먹었다. 신문에 난 기사를 스크랩해 놓은 것들을 보여주는 작은 아버지 모습에서 조카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있다. 이것은 내림 사랑이다. 내가 조카들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아마도 가난한 집안에서 이만큼 성공(?)했다는 것이 대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했으니 우리 모두에게 지금의 삶은 꿈이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사는 하루하루가 사실 감사한 날들이다. 우리가 숨쉬고 얼굴 보는 날들이 얼마나 있을까. 순간순간을 느끼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죽는 날 무엇이 남을까. 아마도 나의 마음, 느낌들… 내가 만나고 서로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고속도로의 터널 숫자를 세고 계신다. 19개 터널이 있다는 것도 엄마한테 배웠다. 그게 엄마다. 본인이 중풍끼가 있어 악화되리라는 의사의 예상과 달리 지금까지 버티시는 이유가 그런 엄마의 태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엄마의 태도를 배웠으면 한다. 서운해 하시는 두 분을 뒤로 두고 오는 마음이 그리 편치 않다. 조만간 날이 따뜻해지면 두 분을 서울에 모셔 작은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맛있는 홍탁집에 모셔야겠다. 더 늦기 전에 실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