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
Search

우울증 <2012.11.28 16:15:19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10
  • 조회수13250
  • 파일
내용보기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2.11.28 16:15:19



전에 뱅글라데쉬에서 왔던 학생이 가족 문제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 자기내 나라에서 신문에 글을 쓰며 나를 아이언 맨이라고 표현했다. 그 의미가 영화의 아이언 맨처럼 강인한 체력을 가졌다는 뜻인지 (그 당시에는 아이언맨 영화가 나오지 않았었는데..), 아니면 아이언맨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가 볼 때 지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나의 체력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아니 아님 후자의 의미도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각은 내가 나를 보는 시각과 많이 다를테니 말이다.

실험실 생활을 하다보면 좌절하기 쉽다. 연구가 갖는 불확실한 결과 때문이다. 답을 예측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연구란 것이 답이 없는 것을 도전하다보니 해 봐도 틀리기 일쑤다. 시행착오가 늘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내가 능력이 없다고 낙담한다. 어제도 실험실 한 학생이 그동안 고민을 쏟아 놓는다. 그나마 찾아오니 다행이다. 많은 학생은 교수한테 찾아가 본인의 고민을 쏟아 놓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아마도 교수는 절대로 절망하지 않고 실수도 하지 않고 자기와 같은 멍청한 고민을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체력이 좋아 아직도 밤늦게 일하기를 좋아한다. 지난 주에는 모처럼 밤새워 논문을 썼다. IBS 때문에 밀린 논문을 끝내자고 마음먹고 학생한테 약속한 것을 지키고 싶어 모처럼 새벽 4시까지 논문을 썼다.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나와 일하다보니, 또 낮에 운동을 해서 그런지 발이 부어 고생했지만 기분은 여전히 개운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란 늘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모습이 학생들에게는 아이언맨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런 것이 아닌데...

나의 학생 시절을 돌아보면 나도 얼마 전 찾아온 학생과 다르지 않았다. 난 내가 별로 재능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들하고 비교하여 내가 못났다고 자책하지는 않았다. 그냥 덤덤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노력형이지 천재형은 아니었다. 책상에 앉아 일하기도 좋아했지만 나가서 운동하는 것 또한 못지않게 좋아했다. 다혈질이어서 쉽게 흥분하고 무엇인가 빠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지만 또 쉽게 실망도 잘하는 타입이었다. 연구가 잘되지 않을 때는 정말 실망 많이했다. 그렇다고 미래 지향적인 학생도 아니었다.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다니다 대학가기로 결정한 것도 극히 사소한 생각 때문이다. 내가 다른 선배들처럼 살기 싫은 것...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간 것도 극히 단순히 한국에서는 돈이 없어 공부하기가 힘드니 유학가자... 박사과정때 과정이 다 끝날 때도 졸업하고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무능한 것일 것이다. 아님 너무 단순한 타입이던가...

우리의 내부는 늘 갈등한다. 이성과 감성이 우리를 지배한다. 나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편이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느낌을 많이 따른다. 연구의 방향을 고민할 때도 나의 성향을 믿는 편이다. 이성적으로 볼 때 무모하고 멍청한 선택이다. 연구가 안 되어 절망에 빠질 때면 내기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한 적이 많았다. 세상에 나가면 할 일도 많은데... 그냥 유도나 계속했으면 지금쯤 유도 가르치며 단순히 살았을텐데... 그냥 이렇게 연구 때문에 고민 안하고도 쉽게 교수할 수 있는데.. 조금은 연구하는 척하면서 나를 조금만 속이면 쉬운데.... 그렇게 어려운 과제 도전 안하고도 그냥 논문 쉽게 쓰면서.... 그러나 이 작자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악동이다. 이 아이와 친해지면 금새 우울증에 빠진다. 헤어나기가 힘들다. 이 아이는 너무 가까이 있어 친해지기 쉽다. 내가 절망해 있을 때 늘 가까이 오는 친구... 아 이이는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젊었을 때나 50대인 지금이나 한결같이 찾아온다. 신기할 정도로.... 요즈음 연구소는 시작되어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같이 일할 사람이 없다. 내가 이러기 위해 연구소를 만들었나 싶다. 가끔은 멍해진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악동...

학생이 찾아와 고민을 말할 때 아 나도 같은 상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내가 이 학생과 다른 점은 나는 이 악동을 피하는 법을 안다는 것이다. 아직도 정확히 대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를 파괴하게 놔두지는 않는다. 이 악동을 멀리하기 위한 기술이 필요하다. 나가서 술을 마시는 것은 일시적으로 이 악동을 멀리할 수는 있지만 아침이면 여전히 찾아온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반드시 지킨다. 그 특별한 일도 가능한 줄여 시행한다. 규칙적인 일을 반복하는 한 이 악동은 멀어진다. 이 악동이 찾아올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이탈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게 이탈하다보면 이 악동은 어느새 멀어진다. 주위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 경우 운동은 나의 최대의 해결책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 이 악동과 친구가 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은 스스로 우울증에 빠져 있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자신을 잘 쳐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거울 속 자신을 보면 쉽게 보인다. 자기의 눈을 보면 내가 어떤 상태라는 것을 금방 안다. 절망에 빠진 자기를 정말 보기 싫다...

이 악동이 찾아오면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과 그리고 이 친구를 멀리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연습이다. 절대로 이 친구가 친구로 남아있는 것을 허용하지 말자. 그런 우리에게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