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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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2012.10.19 09:37:30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10
  • 조회수13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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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2.10.19 09:37:30



세상을 사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다른 직업도 힘들겠지만 과학자로서의 삶도 만만치 않다. 연구가 안 될 때의 좌절감, 연구비를 받지 못할 때의 불안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때의 무력감...

그러나 그래도 난 내 일이 좋다. 오늘 저녁 자고나도 내일이 오늘처럼 단순히 반복되는 일은 견딜 수 없다. 내일이 오면 오늘과는 다른 결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아침 일어나는 일은 늘 흥분되는 일이다. 골프치러 갈 때의 잠을 설치는 것도 와 비슷한 기대감 때문이다. 오늘은 전과 달리 좀 더 잘 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잠을 설치는 것이다. 연구결과가 새로 나올 때쯤이면 학교에 빨리 오고 싶어진다. 빨리 와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좋은 논문을 쓸 때는 잠도 잘 안 온다, 잠을 자도 온통 어떻게 논리를 펼까 그 생각뿐이다. 하나의 문장이라도 좀 더 쉽게... 좀 더 논리의 빈 틈이 없도록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이는 병사가 전쟁에 임하는 태도일 것이다.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에 촉각을 새우고 살기 위해 싸운다. 연구도 이런 것이다. 그래서 좋다.

연구의 좋은 점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연구주제가 끝이 없이 이어진다. 이것을 해결하고 나면 다음 문제가 더 멋있게 다가온다. 이처럼 좋은 직업이 어디 있을까.

그렇다고 연구가 쉬임없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연극에도 일막 이마 삼막이 있고 중간 쉬는 시간이 있는 것처럼 연구주제도 그런 것 같다. 박사를 한지 어언 26여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연구주제도 몇 번 바뀌었다. 내 나이 어느새 60이 되어간다. 믿기 힘들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IBS에 선정되어 너무 다행이다. 10년동안 연구비 걱정없이 연구할 수 있다. 그동안 꿈꿔오던 일이 드디어 일어난 것이다. 나한테 이런 행운이 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것은 분명히 나에게 온 마지막 연구자의 기회다, 도약의 기회인 것이다. 이 나이에 무슨.. 하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제 시작하는 기분이다. 이제 막 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까... 이것은 분명히 도약할 수 있는 내 인생의 전환기이다.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파리에서 돌아다니는 동안 끊임없이 이 생각뿐이다. 마지막 온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한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 대학교때부터 과학을 한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선 자로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질문해왔다. 지금도 그 질문에 답이 없다. 그래도 조금은 조금은 느낄 것도 같다. 나는 원래 가진 것 없이 태어나 힘들게 학교를 다녔다. 남들처럼 일류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다.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도 많았었고 직장을 다닌 적도 있었다. 좋은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고 좋은 연구소에서 연구한 적도 좋은 연구 경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나를 여기까지 오도록 허락한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나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다. 다만 내 삶의 진짜 의미가 그냥 연구하는 것만은 아닌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난 사회에서 봐도 과학자의 입장에서 봐도 가진 자도 아니고 잘난 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약자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메시지...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러면 내가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사는 이유로 충분하니까. 아니 게으를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

IBS는 이런 의미에서 나에게 앞으로 도약하라는 좋은 메시지로 충분하다. 나를 위해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는 내 삶의 목표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약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파리 11대학에 가서 토의한 것이 나에게 좋은 영감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어젯밤 호텔에서 정리하면서 너무 흥분되어 정신이 아주 말짱해졌다. UTT 갔다 오면서 피곤했는데도 말이다. 생각할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는 축복에 가끔은 두려워진다.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그 많은 잘난 사람들 중에 왜 내가 이렇게 축복받을 수 있을까.. 더욱 더 내가 작아진다...

이제 난 막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들떠 있다. 손 안에 조그마한 선물하나를 감추어든 소년처럼... 마치 소풍가는 소년처럼... 그 여행 어딘가에 있을 수 많은 새로운 것들... 물론 여행 중 어려움이 많겠지만 그것초차 나에게는 즐거움일 것이다. 받아들이고, 해결하고, 때론 돌아가고, 그 어느 어려운 것도 여행의 즐거움을 막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