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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잘하는 법 <2012.01.06 11:01:45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10
  • 조회수16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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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2.01.06 11:01:45



어느새 훌쩍 또 한해가 갔다.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오고 송년회도 한다. 돌아보는 시간들이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다. 왜 좀 더 잘하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을까. 왜 그렇게 무심했을까... 감사할 일도 많지만 역시 아쉬움이 남는 것이 한해를 보내는 마음이다.

실험실에도 새로운 식구들이 있다. 학위를 마치고 떠나는 학생들도 있다. 떠나는 아이들을 보면 아쉬운 마음보다는 신기한 마음이 먼저 든다. 들어 올 때 그렇게 꺼벙하더니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대견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의젓한 박사다. 그 많은 시련들 이겨내고 이렇게 온 것이 그저 고맙다. 앞으로 남은 길이 더 많은 아이들이지만 이제 큰 걸음을 떼었으니 이제 달려갈 길만 남았다.

남아있는 후배들은 자신을 돌아보며 남은 기간을 보니 언제 나도 그렇게 갈 수 있을까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돌아본 일 년 동안 자기는 별로 발전한 생각이 들지 않으면 자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심각하게 고민도 들어간다. 나는 실험실에 들어와 그동안 어떤 발전을 했을까... 다른 동기들은 논문도 쓰는데 나는 아직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생각이 이렇게 발전하면 비관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험실 학생들을 오래 보아온 내게는 이런 생각들은 대학원 생활하면서 겪어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다. 대학원에 들어와 일년차 이년차들이 겪는 고민 중의 하나는 왜 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못하느냐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같이 시작해 벌써 좋은 연구 결과들이 나오는데 난 아직도 무엇을 배우는데 좋은 데이터는 커녕 연구주제도 못 잡고 있다... 이런 느낌이 들면 실험실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때 내리는 첫 번째 결론은 내가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론을 내리기 전에 나와 잘하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아마 모두 느꼈을 것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 습관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좋은 습관이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습관, 집중하는 습관... 그런 반면 못하는 사람은 어딘가 나쁜 습관이 있다. 틈이 나면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서핑을 한다. 어쩌다 게임을 하다 나한테 들키면 이는 어쩌다 게임한 것이 아니다. 자주하면 확률적으로 걸릴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은 발전이 느리다. 그러나 이런 나쁜 습관은 자르기 힘들다. 속담에 담배를 피우다 끊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고 했다. 그만큼 지독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습관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신라를 통일했던 김유신도 젊었을 때 기생집에 들러 술로 방탕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걸 끊기로 작정했지만 졸고 있는 사이 말이 저절로 그를 기생집에 데려갔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던 애마를 칼로 쳤다. 이것은 나쁜 습관을 끊기 위해서는 그만큼 희생도 따른다는 것일 것이다. 어는 경우건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나를 발전시킬 수가 없는 것을.. 결국은 선택의 문제이다. 내가 나를 발전시키기를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가? 한 마리 에벌레가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만 비로소 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연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머리의 좋고 나쁨이 중요치 않다. 물론 중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연구 습관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기 전에 우선 스스로 좋은 습관을 갖고 있는가 물어야 할 것이다. 연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습관을 가져야 할까?

딱 한가지 밖에 없다. 논문을 많이 읽어야 한다. 아이디어는 논문에서 나온다. 처음에는 새로운 분야의 논문 하나 읽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나 읽어보면 안다. 용어가 틀리니 모든 것이 생소하다. 그러나 모르는 말을 다시 google에서 찾아보고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하다보면 하나씩 알게 되고 그렇게 한 논문이 끝나면 또 다른 논문이 이어진다. 그렇게 한 분야 논문을 수십편 혹은 많게는 수 백편을 읽다보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 논문을 읽는 시간도 반복되면 단축된다. 처음에는 글자한자 놓치지 않고 읽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는 내용이 많아지고 빨리 넘어간다. 또 그 다음에는 초록만 읽어도 감을 잡고 introduction만 읽어도 이 논문이 무슨 일을 했는가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림만 보아도 대충 무슨 일인가 알게 된다.

이렇게 논문을 이해했다고 전부가 아니다. 읽다보면 이 분야의 핵심이슈가 무엇이고, 논문의 중요성이 얼마나 되는지, 지엽적인 문제를 다루는지 뿌리를 다루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또 이 논문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고 그리고 나라면 어떤 문제를 공격하고 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자기만의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논문을 읽으며 노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메모하면서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괜찮다. 이런 습관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모르게 좋은 연구자가 되어 있음을 자각할 것이다.

2012년은 능력없다고 스스로 자책하는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논문 하나라도 더 보는 습관을 들이면 연말쯤 아마도 조금은 아쉬움이 덜 남는 한해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