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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템플스테이2 <2011.10.27 10:12:31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10
  • 조회수1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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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10.27 10:12:31



잠을 설치고 아침에 잠깐 눈을 붙이고 얼람에 3시에 눈을 떴다. 3시 반이 아침 예불이지만 몸이 불편하니 그리 쉽게 일어나지지 않는다. 밤새 콧물이 또 괴롭힌다. 내려가면 의사한테 처방을 받아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려고 샤워를 했다. 샤워실에 비누도 샴푸도 없다. 하기야 스님은 머리가 없잖은가. 푸하하... 그런 것을 챙겨올 만큼 치밀하지 않은 내 성격이라 별로 개의치 않았다. 머리에 기름기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아마 음식 영향도 있을 것이다. 산사에서 먹는 음식은 아침 역시 담백함 그 자체이다. 6시이니 입맛이 없기도 하지만 뱃속에 들은 것이 없으니 그래도 들어간다. 밥 먹고 난 후 마시는 치커리 차가 일품이다.

새벽의 하늘은 정말 맑았다. 서늘한 기운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에 별들이 초롱히 지키고 있다. 어둑한 산사는 여전히 정적이다. 가끔씩 밀려오는 바람에 나무들이 속삭인다. 잎사귀들이 부딪혀 내는 사각사각 소리가 꼭 나 듣게 하려는 소리 같다. 나무들의 느낌이 전해오는 것 같다. 새벽 햇빛이 들어올 즈음에야 새들 소리가 난다. 새들은 정확히 아침햇볕을 느끼고 깨는 것 같다. 새벽 산사 곳곳을 호젓이 산책하는 기분이 좋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밝아지는 산자락들이 너무 아름답다. 그렇게 방에 들어오니 다시 잠이 살살 온다. 그렇게 자고 나니 8시가 지났다.

이 산사에도 어김없이 인터넷이 된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나중에 알고 보니 일주일전에 광케이블이 깔렸단다. 산에 계시는 스님들도 이제 컴퓨터가 필요한 것이다. 얻는 것들, 잃는 것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또 밀린 논문을 쓰고 나니 11시반 점심이다. 보살님이 벌써 다녀오신 모양이다. 오늘은 맛있는 김밥이란다. 아니라 다를까 여느 때와 달리 사람들이 북적이고 김밥이 있었다. 너무 맛있는 김밥이었다. 그것도 오뎅도 들어가고... 밖에서 김밥을 그렇게 맛있게 먹었을까... 그래도 많이 먹히지 않는다. 조금 담았다 했는데 먹고 보니 배가 살짝 부른 것 같다. 알고보니 점심은 근처의 신도들이 와서 봉사한단다. 그것도 매일 그렇게 하니 대단하다.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절 뒤편 덕숭산에 올랐다. 그냥 구두로 올라가 불편하긴 했지만 따로 운동화를 준비해온 것도 아니니 그냥 갈 수 밖에 없었다. 절에는 방문객으로 무척 부산하다. 산행도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높이가 500M가 채 안되니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그렇다고 쉬운 길은 아니지만 주위 단풍, 소나무, 냇가의 물 등을 살펴가며 천천히 가니 힘이 들지 않는다. 우리네 삶도 사실 속도를 조금 늦추면 지금보다 덜 스트레스 받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텐데 그게 되지 않는다. 모두 마라톤을 출발했는데 같이 천천히 가자고 해도 모두 동의할 리 없으니 모두 죽어라 뛸 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의 시계를 늦추는 방법밖에는... 세슘의 진동수를 어떻게 느리게 할까.. 쉬운 숙제가 아니다. 수덕사는 암자가 많다. 올라가는 길목에 이절을 처음 세웠던 만공 스님의 거쳐였던 초가집, 비석등이 나온다. 세계일화... 세계는 하나의 꽃이다... 일제에 항거해 은둔해있던 스님이 나와서 가르친 첫 말씀이란다. 또 정혜사는 산 중턱에 고느녁히 자리잡고 있다. 너무 조용하다. 스님이 많이 수도한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무엇을 구하고 있을까. 자신과의 싸움일 것이다. 산 정상에 오르니 멀리 서해바다도 보인다. 산 중턱 이상으로 이미 단풍이 곱게 치장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 산은 소나무가 절반은 차 있다. 그것도 아름드리 고송들이 많이 있다. 곳곳에 넘어져 있는 고목들도 눈에 뜨이지만 모두 자연적으로 넘어져 죽은 것들이다. 우리나라 소나무들이 이렇게 아름답다. 한그루 한그루가 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2시간 남짓 산행을 하고 내려오니 오늘 입소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보살님은 그들을 받느라 분주하다. 잠시 여유를 내어 경내의 찻집을 들렀다. 십전대보탕을 직접 끓인다고 권한다. 넓은 방에 대보탕 향이 가득하다. 마침 감기도 있고 해서 마시니 참 좋은 맛이다. 우리 차는 이런 맛인 것이다. 주인이 내가 혼자라서 그런지 여러 가지 말을 시킨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이 불교에 대해 탄압 아닌 탄압을 하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중용을 지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다. 내려와 보니 오늘 들어온 사람들이 넷이나 된다. 여기 백운암 방이 모두 찼다. 대학생 하나 여자분 하나 남자 둘이다. 스님이 저녁 예불 후 차를 마시잔다. 저녁은 벌써 익숙해진 탓인지 음식이 입에 맞다. 같은 된장국인데 이제는 떫떨한 맛이 익숙하다. 사람의 적응력이라는 것이 대단하다. 하루 만에 적응한 것이다. 저녁의 다도 시간에는 이제까지 마셔보지 못했던 연잎차였다. 향이 좋고 뒷맛에는 탄닌맛도 있다. 잠이 잘 오는 차라서 저녁에 마신단다. 입담이 좋은 스님 덕분에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여기 스님들도 입적시 깨달음에 대한 강한 동기가 없으면 중간에 쉬이 그만둔단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말리지 않으니 모든 것이 스스로에 달려있으니 의지가 약한 사람이 그만두기가 쉽다는 것이다. 행자승의 훈련은 혹독하다. 잠이 부족해 불당 안에서 자다가 걸리기도 하고 일하면서 자기도 한단다. 사람살이는 모두 매 한가지인 모양이다. 대학원에 들어오는 학생도 그렇다. 동기가 부족하면 중간의 지루함과 자기와의 싸움에서 버텨내지 못한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이번에는 스님이 자랑하시는 귀한 연꽃잎 차를 내왔다. 이것은 그냥 연꽃잎을 따는 즉시 냉동시켜놓은 것이었다. 연꽃잎을 차 대접에 넣고 끊는 물을 부으면 되는 것이다. 연꽃의 향과 진한 꽃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 때 꽃은 반드시 백색만 가능하단다. 분홍색, 자주색등 색이 있는 연꽃은 독성이 강해 먹지 못한단다. 백련꽃만 먹을 수가 있어 백련꽃 이름을 딴 장소가 많은가보다.

내일이면 다시 돌아간다. 밀린 락의 논문도 끝냈다.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논문을 쓰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내 직업이다. 문제는 나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이들한테 화내면 그것 때문에 오래 괴로워하고 그것 때문에 결국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집안의 문제는 나한테 영원히 숙제다. 어떻게 해결할 지 모르지만 어쨌든 부딪혀야 한다. 템플스테이로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영원히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 한 여기가 아무리 편해도 난 내가 속한 현장에서 부딪혀야 한다. 문제가 생길 때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나를 보아야 한다. 나에 대한 성찰없이는 아무것도 해결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