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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템플스테이1 <2011.10.27 10:02:23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10
  • 조회수1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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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10.27 10:02:23


조용하다는 말 이외에 어떤 말이 필요 있을까? 조용한 소리가 있다. 아주 어렸을 적 들었던 소리. 쌔한 소리... 고막의 평형상태 소리... 저주파는 아니다. 눈을 감고 불을 끄면 그야말로 칠흙이다. 그러나 그 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칠흙이니 오히려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상상하는대로...

한참을 자고 났어도 새벽 2시다. 3평 남짓의 방에 흙벽이다. 벽에 옷을 걸 못조차 없이 아무것도 없는 단순한 방이다. 벽에는 등 스위치, 전기 콘센트 세트 하나, 창문하나가 전부다. 방 한구석에는 이불이 놓여있다. 전에 갔던 속초의 낙산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단순함이다.

몇 년전의 템플스테이 이후 별렀던 시간이다. 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온 이 곳 수덕사... 월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여느 절처럼 입구는 장사로 진을 치고..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절은 상당히 넓다. 덕숭총림... 큰 절이다. 대웅전에 올라오니 뒤로는 덕숭산이 병풍으로 드리워져 있고 먼 발치로 보이는 평야가 들어온다. 절의 위치가 다른 곳에 비해 높이 위치한 탓이다. 산은 이미 가을이 한창이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바람이 낙엽을 휩쓸고 다닌다. 빗방울도 떨어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웬지 가을을 몰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싫다. 그러나 산사의 곳곳에 아름다운 가을이 머물러 있다. 모처럼 느껴보는 색깔들이다. 700년이 넘는 역사가 곳곳에 서려있다. 대웅전은 아예 페인트 흔적이 사라졌다.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은 700년 역사를 고즈넉이 간직하고 있다. 700년 동안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취다. 건물 곳곳이 올라간 담쟁이 잎의 색깔이 장관이다. 대부분 바람에 날려 떨어졌지만 남아 있는 잎 몇으로도 충분히 전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절과는 달리 곳곳에 건물이 많다. 산 중간 중간 암자도 많다. 이 곳 원래 방장스님이 여자비구니도 제자로 삼아 이곳은 스님과 비구니스님들이 모두 같이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비구니 스님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기거하고 있는 곳은 다른 곳인가 보다.

내가 머무르는 백운암은 대웅전 바로 밑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 앞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단풍나무가 고운 자태와 색깔을 뽐내고 있다. 건물 앞 뒤로 키 큰 소나무가 많다. 내일은 산에 올라가야겠다. 산사의 저녁은 빠르다. 5:30분에 벌써 저녁식사다. 생각보다 메뉴수가 많다. 배추김치, 열무김치, 묵, 바다청, 시래기 무침, 두부, 시래기 된장국... 모두 기름기 없는 간만 맞춘 담백한 맛이다. 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담백함이다. 6시가 되니 대웅전 앞 북소리가 장관이다. 산사전체가 울린다. 내 몸도 같이 울린다.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북소리다. 마음이 저절로 가라앉은 묘함이 있다. 스님 세분이 번갈아 가면서 친다. 그 움직임으로 보아 결코 체력적으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저녁을 먹고 자리에 돌아오니 저절로 눈이 감긴다. 집에서 나올 때의 우울함이 밀려온다. 이 문제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내게 숙제다. 내가 풀 수 있을까. 이 문제에 해답은 있을까.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 내가 잘못 살아온 탓이다. 내 삶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내가 원하는 원하지 않던 간에 결과가 그런 셈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가질 수 없는 것들... 줄 수 없는 것들... 모든 것들이 정말 부질없는 것 아닐까... 이곳 스님들은 정말 세상 모든 것을 부질없는 것으로 생각할까... 교회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싸워서 이기라고 가르친다. 옳고 그른 것을 가리고 옳게 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옳고 그른 것도 내게는 모호하게 비친다. 세상에 옳고 그른 것이 어디 있을까. 단순히 선택의 문제일 뿐.... 악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그렇게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