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
Search

어머니 <2011.08.01 14:25:38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10
  • 조회수13197
  • 파일
내용보기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08.01 14:25:38



얼마나 오랜만일까... 기억이 잘 나질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시골집에서 엄마랑 둘이서 같이 자는 것이 정말 기억에 없을 만큼 오래되었다. 하긴 이제 내 머리도 희끗해졌으니 세월이 오래 지난 셈이다. 전주에 일이 있어 저녁에 식사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슈퍼에 들러 시원한 수박 한 덩어리를 샀다. 장마라 쌀 줄 알았는데 고창 수박이라고 20,000원을 받는다. 하지만 엄마랑 같이 먹을 생각을 하니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마을 입구의 논에는 밤에 봐도 벼가 넘실 넘실 자라 있다. 세월이 또 지나고 있는 것이다.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없는데도 어쨌든 농사는 지어진다. 엄마도 연로하여 일을 놓은지 오래되었지만 울 안에 가꾸는 마늘이며 상치, 고추, 오이등을 가꾸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다 집을 비울라 치면 울 안 밭에 풀이 자라는 것을 걱정하신다. 서울은 불편하시다고 어쩌다 한번씩 오셔도 하루가 멀다하고 바로 내려가신다. 여기서 평생을 사신 분이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아마도 나이들면 그럴 것이다. 자식은 그렇게 사랑을 다해 키우지만 키우고 나면 그냥 울타리일뿐 멀리서 든든함을 느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내가 집에 와서 잔다고 하니 엄마도 내심 기분이 좋으셨나보다. 저녁식사를 하셨는데도 내가 수박을 자르니 세 조각이나 드셨다. 수박을 먹은 후 가지고 간 빛 치료기구를 풀어 발에 놓아 드렸다. 아마도 방법이 복잡해 엄마 혼자 방법을 숙지해서 계속 치료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음에 전주에서 입원할 때 해성엄마한테 부탁을 해 놓아야 할 것 같다. 서울에서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었는데 시골에서 너무 잘 잤다. 초 저녁에는 더워 선풍기를 틀고 잤지만 아침에는 시원했다. 간 방에 암내난 고양이 한마리가 새벽부터 울어댄다. 괘념치 않고 잤지만 엄마는 행여 내가 깰세라 잠을 설치신 모양이다. 내가 일어나자 계속 고양이 탓을 하신다. 어젯밤에 무리하게 드신 수박이 기어코 탈을 낸 모양이다. 화장실에서 계속 헛구역질을 하신다. 한참 후에야 속이 가라앉으신 모양이다. 아들이라고 하는 자가 한심하다. 기껏 마음 쓴 것이 결국은 독이 된 셈이다. 아들은 그런 존재다. 별로 도움이 되질 못한다. 누이는 다르다. 늘 올 때마다 엄마 잘못하신다고 야단치지만 한번 올 때마다 엄마한테는 구세주다. 온 집안이 깨끗해지고 뜰 안의 풀이 다 제거된다. 아들은 그저 짐이 될 뿐이다. 모처럼 아들이 왔다고 아침부터 무언가를 요리하고 계신다. 일어나 부엌에 가 보니 양은 냄비에 간 고등어를 조리하고 계신다. 옆에는 계란말이를 준비하고 계신다. 내가 돕는다고 하니 선뜻 허락하신다. 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계람을 넣고 바로 쪽파를 넣었어야 하는데 시간이 잠깐지나 넣자 쪽파가 따로 논다. 그래도 가까스로 두루마리를 마치고 잘라놓으니 그럴듯한 계란말이가 되었다. 옆에서 상치절임을 분비하던 엄마가 설탕대신 소금을 넣고 혀를 차신다. 모든 것이 젊을 때처럼 되지 않은 것을 한탄하신다. 그렇게 작게 차린 상이 한상이다. 상치조림, 고구마순 김치, 계란말이, 간고등어 조림, 울안에서 갓 따온 오이등 한상이다. 밥도 찬밥이 있는데도 밤비콩을 넣어 새로 하셨다. 늙으셨어도 내가 좋아한 것들을 모두 기억하고 계신다. 아들이란 그런 존재인가. 힘은 들어도 내가 와서 좋다고 몇 번을 말씀하신다.

작년 중풍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후 잘 걸으시질 못한다. 처음에는 회복을 할 수 있으려나 하고 열심히 운동하시더니 요즈음은 그리 열심히 하지 않는 눈치다. 하긴 몸에 진전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시다. 그래도 자식들 격려에 노력하긴 하신다. 이제는 우리가 물을 드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뒤뚱뒤뚱 걸으시는 엄마 모습에서 비애가 느껴진다. 누가 문들 두드려 보니 사진사를 엄마의 초상화 사진을 가져오셨다. 엄마는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다. 젊었을 때 엄마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미인이셨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시고 도시에 나가시면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시골에서 일하는 아낙네의 품새가 아니라 그야말로 귀부인의 기품을 뽑냈기 때문이다. 어려운 집안을 이렇게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우리 엄마이시다. 고생하시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내 눈으로 다 보고 자랐다.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다. 난 성격상 누굴 특별히 존경하진 않지만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고 위대하시다. 그런 엄마가 늘 건강히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길 바라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할 수만 있다면 늘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거야 하나님의 마음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