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
Search

골프와 논문의 차이 <2011.06.24 18:07:06>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4670
  • 파일
내용보기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06.24 18:07:06



추운 올 초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덕분에 이제는 골프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새벽인간이 아닌 내가 이제는 자명종을 해 놓고 일어난다. 손가락이 아프지만 그래도 연습한다. 아마도 점수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도전의식이 발동한 것 같다. 이 놈의 승부근성은 늙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여러 사람이 다른 관점에서 공을 치라고 충고하지만 결국은 하나다. 하나씩 깨달아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연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차이라면 몸을 쓰되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경기한다는 것...



그러고 보면 골프와 논문쓰기는 닮은 점이 많다.



- 노력해도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다.

손이 아파 밤마다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자고 손가락이 볏겨지는데 여전히 실수 투성이다. 내가 잘 안쳐진다고 불평하면 구력이라고 간단히 말한다. 연구도 비슷하다. 새로운 논문 하나를 쓰기 위해 초짜 대학원생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다. 때로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하니 말이다.

-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평생 극복하지 못한다.

전에 은사님께서 연구하는 것은 스님이 도 닦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래서 어려울 때마다 그 말을 기억하고 묵묵히 해 온 것이 어느새 전문가가 되어 버렸다. 만약 중간에 포기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골프도 지금 포기하면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하기야 어느 일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까. 우리네 삶이 그런 것이다.

- 지난번에 잘 쳐졌다고 내일 잘 치리라는 보장이 없다.

지난주인가 최경주가 PGA에서 우승했는데 이번주 유에스오픈에서는 컷 탈락이다. 도대체 알 수 없는 것이 골프다. 얼마전 드라이브가 별 문제없이 잘 맞아 좋아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코멘트 참고하여 고치다 보니 이제 완전히 감을 잃어버렸다. 지난번 논문이 무수정으로 통과했다고 다음 논문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임을 우리 모두 잘 안다. 예측 불허이다. 그렇다고 연습안하면 절대 실력이 늘지 않을 것이다.

- 어려우니까 도전한다.

골프는 정지해있는 공을 치는데 쉬울 것 같다. 빨리 오는 야구공도 치는데 설마 정지해있는 공을 못칠까... 문제는 늘 그렇게 잘 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못 치면 점수가 나락이다. 그래서 어렵다. 그러니까 오기가 생기고 잘 치려고 연습한다. 논문 쓰는 것도 항상 어렵다. 늘 써도 어렵다. 그러니 늘 도전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이번은 좀 더 잘 할 수 있겠지 하고...

- 잘 관측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잘 칠 수 없다.

골프의 재미있는 것은 다른 사람 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자세를 배워야 한다. 드라이브 칠 때 잘 치는 사람의 자세는 다르다. 목표를 정하고 자세를 잡는 단계, 드라이브 채를 위로 올리는 단계, 뒤로 재끼는 단계, 몸을 이용해 돌리는 단계, 채를 내려치는 단계, 친 후 뒤로 더 팔로우하는 단계, 무게 이동하는 단계, 자세 안들기, 허리 넣기, 공 끝까지 보기, 자세 뒤틀기, 자연스러운 스윙, 칠 때 서두르지 않고 하나둘셋을 세는 단계, 생각해야 될 것이 너무 많아 사실 하나 생각하다 다른 것을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치고 나서 어 왜 이렇게 쳤지 한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잘 관측하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다. 생각없이 실험하다간 쓸데없는 데이터만 쌓인다. 단어, 철자, 문법, 콤마, 마침표 등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연구의 영어가 research 인 것을 보면 잘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새삼 알게 된다. 말하자면 search를 다시 하는 것이다.

-연장이 많다.

골프를 처음 치는 사람은 골프채의 다양함에 놀란다. 크게는 드라이브, 우드, 아이언, 퍼터로 나뉘지만 우드도 보내고자 하는 거리에 따라 번호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아이언은 이것에 비해 훨씬 다양한 번호가 존재한다. 비거리에 따라 머리의 무게 각도가 다른 것을 사용한다. 또 90 미터 이내의 짧은 거리는 sand와 pitch 라는 채도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몇 개 갖고 다 쳤지만 당연히 정확도가 떨어진다. 50미터를 보내는데 1번 아이언을 사용할 수는 없다. 연구에서도 다양한 측정장비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1 마이크론보다 작은 크기의 물체를 관찰하려면 광학현미경이 필요하지만 그 이하의 크기를 볼 때는 전자현미경이 필요하고 나노미터 크기를 보기 위해서는 투과전자현미경을 사용해야 한다. 장비를 잘 알지 못하면 연구 효율을 올릴 수 없는 것처럼 골프도 장비를 잘 이해해야 정확도를 올릴 수 있다.



그나저나 어느 세월에 실력이 붙을까... 조급히 맘 먹는다고 연구도 한걸음에 되지 않는 것처럼, 하나하나 장비를 이해하고 차근 차근 연습하는 것 이외에 왕도가 없다. 하기야 전에 고등학교때 유도기술 하나를 배우기 위해 얼마나 반복 연습을 했던가. 그러니까 지금도 눈감고도 기술을 기억해낼 수 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