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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2011.04.19 08:40:30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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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04.19 08:40:30



여기는 텍사스 샌 안토니오에서 한시간쯤 떨어진 밴더라 도시의 플라잉 랜취라는 골프장 리조트이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쉽지 않다. 아침 집에서 나온지 24시간 만에 도착한 한적한 곳이다. 시카고를 거쳐 샌안토니오 그리고 차로 다시 한 시간... 눈앞에 보여지는 풍경은 황량한 텍사스가 아니라 그냥 한국의 한 정경이다. 푸른 산 다음 푸른 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사막과 같이 황량한 벌판의 동부 텍사스와는 너무 비교가 되는 곳이다. 이곳이 골프장인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골프칠 준비를 하고 올 걸 하고 후회하지만 그러기엔 늦었다. 밤에는 시원하다. 바람이 약간은 더웁게 느껴지지만 청량한 느낌도 동시에 있다. 주위에 불빛이 없어서 그런지 쏟아지는 별빛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어렸을 적 시골 느낌이다.

도착한 저녁부터 세션이 시작되었다. 나노튜브 미팅이라 모두 친숙한 얼굴이다. 음식은 채소도 고기도 아주 맛이 있다. 텍사스는 촌이지만 촌다운 음식의 맛과 풍성함이 느껴진다. 랜취는 가족들이 즐길 수 있도록 부엌이 갖추어진 곳이다. 하기야 스위트 룸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혼자 있기에는 너무 크다. 밖은 비교적 온도가 높지만 방안은 청량하다. 이 사람들보고 원자력을 포기하니 이 편안함을 포기하라고 하면 어려운 요구일 것이다. 사람은 한번 편안함을 느끼면 그것을 버리려하지 않는다. 일본은 전기 30% 이상을 절약하려고 한단다. 그래서 실험실 실험도 졸업하려는 박사학위자를 중심으로, 과제중심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나머지는 포기하고 있단다. 어려운 과정을 보내고 있다. 핵에너지를 포기하면 우리도 이런 비슷한 포기를 해야한다. 산업활동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따라서 수입도 줄어들 것이다. 그린에너지 생산을 위해 세금도 더 내야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수입이 지금의 절반 이상으로 줄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일까. 하지만 지금처럼 정신없이 사는 우리들한테는 어쩌면 필요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행복지수는 올라갈까... 욕심을 버리면 가능할 것이다.

오늘은 종일 학회다. 내 발표도 잘 끝난 것 같다. 처음 발표하는 내용이라 조금은 긴장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끝난 것 같다. 연구내용이 모두 친숙하지만 발전된 부분이 많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다. 연구란 것이 정말 끝이 없는가보다. 새로운 물질에 도전하는 것도 어렵지만 기존 재료의 성능개선은 더욱 어려운 것 같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해 놓았으니 그 중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핀 합성메카니즘도 그리 쉽지 않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경쟁하고 있다. 그래서 토의를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도 얻고 새로운 것을 얻었다. 일이란 정말 끝이 없다. 그래도 새로운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이 사이언스인 것이다. 너무 좋은 논문을 내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 강희가 맞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의 집착일지도 모른다.

이제 5시간이면 여기를 떠난다. 어제는 그런대로 잘 잤으니 오늘은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아침 4시면 일어나야 한다. 여기 시간에 적응하기 전에 가니 차라리 다행이다. 가면 한국시간에 금방 적응할 것이다. 조금은 피곤한 여행이지만 적응은 쉬울 것이다. 장시간 여행인지 다리가 부어있다. 오늘도 줄어들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내일은 더 심해질 것이다. 피로가 풀어지지 않은 탓이다. 돌아가 하루 쉬면 괜찮아질 것이다. 그래도 여행은 나에게 항상 생각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그래서 나에게 방랑자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 아니 편한 것보다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는 나의 반항이 아닐까...

어제 저녁은 초저녁 한 시간 자고 4시반에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가 정확히 시간 맞추어 온다. 자그마한 덩치의 미국인이다. 발음이 현지인 같지 않아 물어보니 웃으면서 자기는 텍사스에서 자란 진짜 텍산이라고 소개한다. 아마도 이라크 등에서 4년간 근무해 개화된 탓일 것이다. 실제 여기 사람들끼리 만나면 내가 이해하기 힘든 발음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한 시간 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여기는 지금이 일년 중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한다. 나무가 모두 푸르러 있고 온도도 최적이라고 한다. 여름은 근처 사막처럼 고온이록 한다. 화씨 120까지 올라가니 알만하다. 돈 벌기위해 민간인으로 이라크에서 4년간 근무했단다. 그러나 4년동안 4개월 매일 일하고 주말에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2주 휴가를 4년간 반복했단다. 그렇게 번돈은 마누라가 전부 쓰고 결국은 바람맞아 이혼당했으니 4년간이 부질없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34살에 이라크에 가서 39살에 돌아오니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배웠다고 한다. 인생은 그렇게 경험을 통해 비싼 댓가를 치르고 배운다. 아마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배웠을까.. 사막이라는 최악의 경우에도 살아가는 방법을... 2년전부터 반데라 지역에 택시가 없는 것을 착안해 일인 택시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68년생이 나이가 들을만큼 들었지만 새로운 생각을 한 것이다. 인구 100만 미만의 도시, 휴양지가 많은 이곳에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것에 착안하고 특별한 위탁택시경영을 시작한 것이다. 그 외에도 정부위급차 역할을 통해 일정금을 지원받고 또 버스도 운영한단다. 자기는 백만장자가 되는 것을 꿈꾼단다. 그래서 오로지 한 가지에 매달린단다. 집중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한다. 하루 눈뜨고 저녁 잘 때까지 한 가지 일에 매달리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맞는 말이다. 집중해야 산다는 것을 이 사람은 몸으로 채득하고 있는 것이다. 새 여자 친구도 만나 같이 일할 수 있으니 그 또한 행복이다. 그래서 이혼한 것이 꼭 불행이 아니라고 말한다. 긍정적인 사고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이래서 인생은 재미있는 것이다. 정해진 답이 없다. 꼭 물과 같다. 병에 부으면 병 모양, 어항에 부으면 어항모양, 언제든지 모양이 변한다. 연구도 이런 것이 아닐까. 언제든지 무엇이든 가능한 것이 연구다. 에스코는 항상 하는 연구가 별로였지만 최근에는 나름대로 좋은 연구결과를 얻고 있다. 변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따로 사는 초등학교 딸 아이가 수학능력을 대학으로부터 평가받아 상위 5%에 들었다고 좋아하는 기사에게 딸 아이에게 잘해주라고 말해주고 공항에 내리니 한결 기분이 좋다. 그 사람의 사는 모습이 성실해 보기가 좋다.

그렇게 시카고에 도착하니 국제선에 관해 안내모니터가 어디에도 없다. 자기들 국내선이라고 아예 국제선에 관한 안내가 없다. 짜증나는 사람들이다.샌안토니오에서 좌석표를 받았지만 공항 및 게이트에 관한 표시가 전혀 없다. 물어 물어 찾아 5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체크인 했다. 전에 체크인한 것이 소용없는 것이다. 운 좋게도 비즈니스클래스로 업그래이드 해주어 정말 다행이다. 다리는 아직도 부어있어 걱정했는데 비즈니스 좌석은 다리를 뻗을 수 있어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칼라운지에 들러 이것 저것 먹을 것도 먹으니 한결 부드럽다. 돈은 정말 편리한 것이다. 아마도 내가 프리미엄 마일리지가 있어 요즘 쉽게 업그레이드 해주는 것 같다. 짧아 힘든 여행이지만 이런 업그레이드는 하나의 청량제와 같다. 인생에서 가끔은 이런 행운이 필요하다. 한번쯤은 쉬어 갈 수 있는 그런 것들... 이것은 우리가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