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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2011.04.03 13:10:44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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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04.03 13:10:44



얼마 전 나는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재방송으로 처음 본 이후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보게 되었다. 한번도 정규시간에 보지 못하고 저녁 늦게 재방송을 보았지만 프로 가수들이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게 충분히 흥미로웠다. 몇몇 가수들은 익숙치 않았지만 아마도 모두들 가요계에서 노래 잘 부르기로 알려진 가수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가수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렇게 긴장하면서 노래 부를 필요가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나와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정상가수들이 떨어지는 것을 의식해 긴장하고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모두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아마 모두가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칠만큼 우리도 성숙되어 있는 것이다. 내게는 내가 좋아하는 이소라가 나오고 사회를 보니 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고 정상의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부르는 것뿐 아니라 그것도 경쟁을 의식하고 최선을 다해 부른다는 것,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아마도 돈주고 보지 못하는 진풍경이어서 이 부분에 문외한인 나도 자연적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 프로그램이 일시 중단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몇몇 중진가수들은 프로가수들이 경쟁하여 떨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하고 프로그램의 상업적인 태도 때문에 프로그램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일리있는 말이다. 정말 경쟁에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있었다면 마땅히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경쟁하여 떨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가수들이 긴장하고 노래했을 것이다. (물론 떨어진다고 그 가수가 노래를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가수이니까.. 아마 이 프로그램 때문에 그들이 이름값이 더 올라갔을 것이다.) 그것은 프로그램 중간에 보여준 그들의 태도에서 볼 수 있었다. 만약에 떨어지지 않고 단순히 노래했다면 여느 프로그램과 같이 긴장감이 없고 가수들도 다른 프로그램처럼 그냥 나와서 노래부르는 프로그램이 되었을 것이고 나 같은 문외한인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은 지금과 같은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투표하는 청중들의 표정을 보면 그들도 역시 긴장하고 숨죽이고 듣고 있었다. 가수, 청중을 통해 느낀 것은 가수도 청중도 모두 최고의 분위기를 느끼고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이소라의 노래를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청중들도 모두 공유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주목받는 것은 바로 이 진솔한 모습, 최선을 다하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이 모두 중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이소라다. 나는 이소라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눈물이 난다. 날 울리는 가수는 그녀뿐이다.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눈물이 난다. 어려워서 노래방에서 부를 엄두가 안 나지만 그래도 좋다. 그녀의 사생활은 내가 듣기로 우리의 상상과 거리가 멀다. 게임매니아란다. 프로그램을 녹음하러 갔을 때도 게임하느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단다. 프로그램 도중 간간히 보여주었지만 성격이 모가 났다. 싫으면 싫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정말 아마도 김건모 떨어졌을 때 주위에 욕도 했을 것이다 방송은 안되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여자일 것이다. 개성이 강하고 심취적이다. 인간적으로 좋은 친구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나이도 제법 많을텐데 아직도 그런 성격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아마 평생 고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소라를 좋아한다. 이소라는 다른 것은 다 꽝인데 무대에 서면 다르다. 이미 무대를 준비할 때부터 다르다. 자기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본 무대 전 가수들의 리허설에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참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 부대에 선 그녀는 기성 가수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하고 최선을 다해 노래 부른다. 가수의 의상도 꽝이지만-아마도 그 몸매에 좋은 옷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노래 부르는 모습에서 전율을 느낀다. 이런 것이 프로의 모습이다. 이런 그녀의 모습이 좋다. 사생활은 그녀의 개인 삶이니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수가 진정 가수일 때 빛이 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아마 그녀의 삶에서 가수를 빼면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실험실을 떠 올린다.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길을 가는 내 학생들이 자랑스럽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많이 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들의 길을 가는 내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최선을 다하는 가수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처럼 실험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있는 내 학생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악역을 맡고 있는 나는 칭찬보다는 그저 학생들을 혼내기만 한다. 혼내는 내 마음속에도 아픔이 있다. 그렇게 혼내고 나면 마음이 아프다. 때로는 발전하는 못하는 애들의 모습에 화나고 그렇게 내버려둔 나의 모습에 실망하고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때로는 그 화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견디는 이들의 모습 뒤로 내 마음이 더 아프다. 그러나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들의 그런 모습들이 사랑스럽다. 요즈음 편하게 살려는 젊은 세대들과 비교해 보면 실험실에서 고민하고 자그마한 결과를 갖고 씨름하는 학생들이 그저 사랑스럽다. 비난보다는 따뜻한 위로를 주는 스승이고 싶다. 실험실 이외의 나의 인생에서 그들에게 가르칠 것은 없지만 적어도 실험실에서 나의 경험을, 사고하는 법을 그들 모두에게 가르치고 싶다.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할까. 가정에서 나의 모습은 꽝이다. 친척들도 가정의 장남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고 가끔 비난하신다. 직장에서 다른 교수들과의 관계도 꽝이다. 진구들과의 관계도 꽝이다. 만나지 않으니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내가 역할을 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과학자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자격이 없다. 아니 그래도 나는 내가 과학자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도 지나온 길보다 가야할 길이 더 먼 곳이니까. 그래도 이 길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직은 부족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너무 멀지만 그래도 내가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니까 그렇게 부르고 싶다. 내 삶의 다른 것을 모두 포기해도 이것은 포기하기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