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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방사능-아파트 <2011.03.20 15:07:02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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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03.20 15:07:02


지난 2월은 정신없는 기간이었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후 다음날 내가 갔던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대 지진이 일어나 내가 보았던 아름다운 도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했다. 걱정이 되어 그쪽에 있는 친구들한테 이메일을 보내니 다행히 가족 모두 무사하고 대신 온 도시 건물이 부서졌다 했다. 우리가 산에 오르기 위해 탔던 곤돌라도 더 이상 쓸 수 없다 했다. 지진이란 그렇게 우리의 노력을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얼마 전 일본에서 돌아온 다음날 또 지진이 났다고 했다. 그 다음날은 바빠 지진에 대해 느끼지 못했지만 저녁에 집에 가서 본 지진은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해일 대지진과 같은 자연 앞에 선 인간이란 그저 한없이 허약할 뿐...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사는게 갑자기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이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다음날 도후쿠에 있는 친구한테 이메일을 보내봤지만 아예 메일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곳에 있는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그 쪽에서 소식이 없는 것은 매 한가지였다. 며칠이 지나서 이메일을 받았는데 가족 모두 무사하다니 참 다행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정말로 원자력 강국인 일본이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다. 에너지에 관한 한 우리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사능이 유출되어 반경 수십킬로미터 접근 금지란다. 저녁에 나오는 뉴스 광경은 차마 믿기 힘든 광경들이었다. 그 어려운 과정 중에 보여준 일본인들의 시민의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착했다. 한국에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비판하는 조용기 목사와 이에 동조하는 신도들, 가까운 중국에서 방사능 때문에 소금 사재기가 일어난 것과는 너무도 딴판의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성숙한 시민의식에 비해 일본 정부의 태도는 참으로 한심하다. 방사능 유출에 관한 사실을 숨긴 것, 안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넘쳐나는 구호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엄청나게 많은 양의 석유비축에도 불구하고 시민을 위해 내놓지 않는 것등은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나라 언론이다. 며칠 전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 텔레비전을 보니 마침 일본 방사능 유출에 관한 토의를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모대학교수와 시민대표 한사람이 나와 토의하고 있었다. 논의의 초점은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의 지진에 대한 설계와 이에 따른 위험성에 대한 진단이었다. 우리나라 원전은 현재 21호기로 약 30%의 전력을 담당하고 있지만 2030년이면 60%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석유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지진 설계는 강도 6 ~ 6.5에 버티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상의 강진이 일어났을 경우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한 상태가 아니어서 원자력이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것이 정말 중요한 이슈일까.

우리나라의 문제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지진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지진 강도 6 이상은 거의 오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건물이 지진에 대한 내진 설계가 전무하다. 사실 원자력 발전소는 지진을 고려해 강도 6 까지 내진 설계가 되어있지만 아파트 천국의 대한민국은 불행히 아파트의 지진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 따라서 지진 강도 6 이상이 오면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이미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상이 아파트 붕괴에 생명이 날아가 있을 때다. 그러니 그 이후에 올 방사능 문제는 대부분의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다. 따라서 강진이 와서 원자력 발전소 붕괴를 걱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나는 지금이라도 지진에 대한 대책이 전면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새로이 짓는 아파트는 내진 설계를 해야 한다. 물론 돈이 더 든다고 아파트 건설자는 아우성이고 이 모든 짐을 소비자한테 씌우려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제 정부가 이런 업자들과의 결탁을 결별해야 한다. 지금도 아파트 가격 실물공시를 하지 않고 있고 정부는 이를 방관한다. 우리 모두 사실상 말은 하지 않아도 아파트 금액의 상당부분은 업자들의 농간으로 거품이라고 믿고 있고 그 부당 이득금은 고스란히 건설업자의 몫이라고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런 것을 투명하게 진행하면 거품이 빠지고 따라서 내진에 대한 추가비용도 이런 것을 고려하면 그리 큰 부담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와 의지다. 업자와의 결탁을 과감히 벗고 업자에게 강력한 철퇴를 가해야 할 때다.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여기에 쏟아 부으면 안될 일이 없다. 그럼 후대 후손들한테 칭송받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