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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2011.03.13 12:09:21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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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03.13 12:09:21



파리에 와 본지도 벌써 몇 년 된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것 같지 않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한국처럼 가게 간판이 바뀌는 곳이 있다. 맥도날드 내부도 의자 배치가 달라졌다. 현금지급기도 설치되어 있다. 몇 년전하고 다른 점이다. 난 파리에 오면 이제 이곳 룩셈부르크 근처에 머무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아마도 공항에서 RER 지하철이 직접 닿는 곳이고 또 에콜 폴리텍대학을 한번에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룩셈부르크 공원이 옆에 있고 시내 중심가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여기는 소르본느 호텔로 소르본느 대학 정문 앞에 있다. 호텔은 아담한 전형적인 유럽호텔이다. 샤워실은 너무 작아 몸을 틀기가 어려울 정도다. 샤를공항은 여전히 불편하다. 입국심사 보는 것도 없으면서 평일인데도 줄이 길게 서 있다. 내국인 줄은 아예 사람이 없다. 내국인 여행객이 적은 탓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외국인이 많은 탓이다. 그럼 더 관리요원을 배치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경험한 프랑스는 절대 그런 짓하지 않는다. 단순히 게으름이 몸에 베어 있다. 그렇게 입국하고 전철을 타는 표를 카드로 쉽게 샀다. 이곳이 익숙한 탓이다.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8시가 넘었다. 저녁에 창석이와 약속한 시간이라 창석은 이미 와 있었다. 샤워를 하고 바로 나와 한국식당에 갔다. 전에는 이곳 음식을 바로 먹었지만 창석이가 있는 탓도 있지만 이제 가능하면 한국음식을 먹으려 한다. 내가 늙은 탓이다.

창석이는 이곳 한국 유학생이다. 야오페이가 여기에 와 공동연구하면서 같이 일하는 팀이 된 것이다. 참새와 방앗간 음식은 여전히 맛있다.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기억하면 맞아주었다. 먼 이국에 와서 옛사람처럼 맞아주는 느낌도 아주 좋다. 친구는 그래서 오랠수록 좋은 것인가 보다. 아마 모든 사람관계가 그럴 것이다. 특히 주인이 담은 김장 김치는 정말 한국김치보다 맛있다. 참으로 신기할 정도다. 음식을 서빙하면서 그간 일어나 일들에 대해 정담을 나누는 것도 이 주인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전에 한국에서 프로골프였다. 그래서 그런지 또 골프이야기다. 아니 아마 내가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말해서 그랬을 것이다. 또 한가지 배웠다. 공을 놓는 위치가 골프 클럽번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린 위에서 접근할 때 홀 뒤를 목표로 한다는 것도 스스로 기억해냈다. 전에 누군가한테 들은 것인데 대화하면서 깨달았다. 어느새 나도 골프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니 아마도 무엇이든 하면 잘해야 한다는 나의 본능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동안 야오페이와 같이 일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의 사정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코스텔이 처한 상황이 쉽지 않다. 주위 상황 탓도 있지만 본인이 논문 쓰는데 게으름을 부린 탓도 많다. 연구자는 좋은 논문을 쓰지 않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것이다. 같은 곳에 있는 페레는 열심히 논문을 쓰기 때문에 인정을 받는다. 사람좋은 코스텔의 단점이다. 일은 열심히 하지만 그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전 은사교수님도 그렇게 일을 열심히 했지만 논문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의 후진적인 그 때는 그게 인정이 되었다. 논문이 아니고 학력으로 인정받은 때의 이야기다. 더구나 지금의 프랑스에서... 같이 일하는 조건이 쉽지 않다. 외국에서 먹는 김치찌개는 너무 행복한 느낌이다. 새콤한 김치맛이 입 안에서 혀끝을 자극한다. 같이 소주 한병을 나누어 먹으니 몸은 피곤한 상태지만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돌아오면서 다시 옛날을 기억하면서 룩셈부르크까지 걸었다. 중간에 길을 잘못 접어들어 이번에는 전에 보지 못한 길로 접어들었는데 뜻밖에 거리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활기가 있었다.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의 얼굴에 생기가 넘쳐 곧 돌아올 봄이 느껴졌다. 주말이 아닌데도 기온이 올라간 탓이리라. 창석이도 뜻밖에 많은 사람들로 기분이 올라간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을 때 즐거운 것이다. 찼다. 그렇게 호텔에 들어와 쓸어져 아침까지 잤다.

아침에 머리가 아파 잠에서 몇 번 깨었지만 일어나니 8시가 넘었다. 다행히 머리는 개었다. 전날 샤워 후 바로 찬바람을 쐬어서인지 몸이 약간 개운치 않다. 감기 기운이다. 걱정되어 비타민도 먹고 늦었지만 호텔에서 식사도 했다. 역에 가보니 기차표를 얻기가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공짜로 타기로 했다. Lozere 역에서 검사를 안하니 별 문제 없을 것으로 보였다. 아니다 다를까 그렇게 공짜 기차를 탔다. 공짜타는 요령도 있는 것이다^^ 역에서 내려 에콜폴리텍까지 가는데는 제법 난관이 있다. 대학이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고 거기까지는 상당히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중간역이 메시 팔리조에 내리면 버스를 타고 가지만 난 이 길이 좋다. 숨이 가쁘다. 그러나 올라가는 동안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소리가 너무 낭랑하다. 그렇다. 여기는 여름에 숲이 울창했던 곳이다. 피곤함이 줄어든다. 계단이 너무 긴 곳도 있다. 난 두발에 가는데 한 친구는 한발에 간다. 신체구조가 다른 것이다라고 자위해본다. 힘들다 할 때쯤 입구가 보인다.

대학에 들어가 보니 전에 있던 가 건물대신 조그만 건물이 들어섰다. 그래도 모든 것이 낯설지 않다. 그렇게 코스텔을 만나고 연구, 기타 그동안 있었던 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니 모두 반갑다. 모두들 고생하고 있지만 내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학원시절이 행복했던 시기다. 아무 생각없이 공부만 하면 되니 말이다. 지금의 내 삶이 복잡한 것을 생각하면 그 때가 그립다. 그렇게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어쨌든 내 학생들을 위해 빨리 dual Ph. D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대학원 기간동안 두 곳에서 학위한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을 쌓는 일이니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대학원에서 1년 더 연구하는 일이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게으름 부리지 않는 한... 이번 주가 휴가기간이라 모두 휴가가고 없었다. 그래도 같이 일하던 친구는 다 보았다. 저녁에는 한국학생들 5명과 다시 한국식당에 같이 갔다. 그동안 새 식구들이 더 와 있었다. 모두 아이같은 얼굴들이다. 지금은 다시 호텔.. 내일은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한다.

아침 10시 비행기로 베를린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났다. 얼람을 해 놓기는 했지만 잠을 설쳤다. 그래도 몸은 가뿐하다. 술을 마신 탓으로 그나마 조금씩 자고 있어 시차 적응에 도움이 된다. 새벽의 파리 모습은 느낌이 다르다. 청소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고 가게 빵집들이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길가에 수도관이 터진 줄 알았더니 청소부가 소방수로 청소하는 중이었다. 이 곳은 물로 청소를 한다. 그래서 아침 인도가 그렇게 젖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아침에 그런 기억이 없다. 도시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 노력해야 한다.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당연히 얻어지는 것은 없다. 여기도 공항에서 자동 기계로 체크인을 한다. 한국어로 서비스도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올라간 것이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선배들이 열심히 산 덕분이다. 이곳 파리는 관광객 수가 이 나라 인구수를 넘는다. 관광수입으로 사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도 따져보면 이 나라 조상들이 노력하여 도시를 가꾸어 놓은 탓이다. 어느 하나 그저 얻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