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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2011.01.30 15:52:19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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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01.30 15:52:19

차가운 일요일 오후. 차갑다. 아직도 눈이 덮혀있다. 따가운 햇살... 어울리지 않는 겨울 날이다. 어딘가 무엇인가 부족한 날이다. 오후 사무실을에 앉아있는 나도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다. 트리볼리 라디오에서 나오는 클래식 음악도 오늘은 나한테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틀어놓은 TV에서 나오는 연속극도 그저 소음이다. 양쪽에서 울려나오는 소음 속에 난 그저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어제 추위 속에서 떨면서 쳤던 골프, 손이 시리다 못해 감각이 무디어진 손이 아직도 내 손이라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내 몸도 마음도 이 공간이 낫설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은 그저 영원히 이 사회 속에 동화될 수 없나 보다.



어제는 골프를 쳤다. 미국 대학원 시절 처음 쳐 본 골프이후 한국에서 처음 쳐 보는 골프다. 그 당시도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여겨졌지만 주위와 어울리다 보니 얼떨결에 쳤다. 날씨도 추운데 무슨 골프일까... 속초는 여기보다 따뜻하지만 막상 골프장에 나가보니 바람이 심하다. 동해 바다 때문인지 눈이 쌓여 있지 않았지만 바람이 세게 불어 느끼는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같이 간 친구들의 도움으로 모자도 사고 골프채도 미리 빌렸다. 골프는 친구들끼리 가지만 골프채는 서로 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희한한 생각들이다. 친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믿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목적인데 왜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장갑도 끼였다. 골프 옷도 전에 누가 선물해 준 것이 있어 쓰기로 했다. 처음치는 사람이 온갖 것을 다 준비한 셈이다. 미국에서 운동화 질질 끌고 골프장에 나갔던 것과 비교하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겉으로 보면 초보자인지 전문가인지 알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어딘가 먼저 보여주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골프... 시작은 그렇다쳐도 모든 것이 미숙하다. 생각대로 공은 나가지 않는다. 홀이 지나감에 따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추위가 피부속으로 스며든다. 얼굴은 몽땅 얼어 내 느낌이 아니다. 손도 점점 얼어가면서 내 느낌이 없다. 중간에 위치한 휴게실에 들러 몸을 녹여보지만 뒤에 밀려오는 팀 때문에 몸을 제대로 녹일 수가 없다. 정종 한잔에 몸을 녹이고 또 강행군이다.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공이 잘 맞는데 추위로 어깨와 손이 굳어지니 잘 맞추기란 불가능하다. 18홀을 끝내니 말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샤워장에 들어가니 손과 얼굴이 내 느낌이 없다. 따로 노는 느낌... 처음에는 물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몸이 녹으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언제까지나 이방인일까.. 교수로서 나는 적절한 사람일까. 한 집안의 가장으로 내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곳이건 내 마음 내 몸이 맞는 곳이 있는 것일까. 이 넓은 세상 내 작은 마음 둘 한 구석이 없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니면 우리 인간이란 그저 이렇게 생겨 먹은 존재일까. 아직도 남아있는 내 몸속의 피로는, 내 마음속의 갈증은 영원히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아마도 영원히 휴식은 없는 것이 우리 영혼의 정체성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