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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 건 <2010.10.07 21:50:00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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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10.07 21:50:00


사람에게는 아킬레스 건이라는 것이 있다. 발뒤꿈치뼈에 붙어 있는 힘줄로 우리 몸을 떠 받쳐 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 힘줄이 가끔 잘라지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운동선수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사람에게 이런 약점이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주말은 지옥이었다. 날씨가 더워 이번 환절기에는 알러지가 안 찾아오는가했더니 급기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겉잡을 수 없게 다가왔다. 약을 지어 먹었지만 신통치 않다. 코고는 소리가 심해 평소에 아무렇지 않던 마누라도 결국은 못 버티고 다른 방으로 가서 잤다. 목에 통증도 동시에 와 말하기도 힘들었다. 일요일 오후 조금 나아지는가 싶어 학교에 나와 일했지만 얼마지 않아 콧물이 나기 시작해 도로 집에 들어갔다. 저녁에는 잠자기가 두려워 늦게 버티다가 다음날을 위해 잠을 청했는데 의외로 아침에 목이 편해졌다. 목소리도 다시 나왔다.



매년 가을 초 한 달 정도 시달려야 하는 이 알러지 현상은 늘 당하지만 지독히 싫다. 일이 짜증나기도 하려니와 목소리가 변하고 얼굴이 부어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싫다. 나는 보통의 경우에는 건강한 편이다. 특별히 잔병치레도 없고 체력도 좋아 이 나이에도 밤늦게까지 일할 수 있다.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어머니로부터 내가 받은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89년도 미국에 다시 갔을 때 생긴 이 알러지는 한 해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아킬레스건처럼 역할을 한다. 때로는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고민도 해보지만 아마도 이것은 나에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비록 건강하게 태어났어도 건강에 자만할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생활하면서 얻은 폐결핵이 자만감의 좋은 예이다. 아무리 탱크라도 몸을 함부로 다루면 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이후로 건강을 조심해 왔지만 요즈음처럼 일이 많으면 몸도 무너지기 십상이다. 매년 찾아오는 이 시련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이러다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 자만하면 무엇이든지 무너진다는 신중함, 아무리 자신있어도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 늘 앞만 보고 가는 나에게는 알러지가 좋은 선생인 셈이다. 이렇게 알러지가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면 이것으로 족한 셈이다. 살면서 우리는 환경에 영향을 받고 때로는 주위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아 가끔은 오만에 빠질 수 있다. 일년에 한달이면 교회에서 십일조 내는 것과 같은 내념이다. 한달동안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셈이다. 실제로 이 기간은 몸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목욕탕에도 자주 가서 몸을 푼다.



성서에서 유명한 바울도 결정적인 지병이 있었다. 그래서 전도를 위해 먼 거리 여행을 할 때면 늘 의사를 옆에 데리고 살았다. 예수를 때려 죽이려든 그의 정열로 보아 그는 보통 힘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내버려두면 너무 일을 정열적으로 한 나머지 일찍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기에는 너무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 아마도 예수님께서 몸에 지병을 그대로 두어 그를 겸손히 만들고 더욱 오래 그 사람을 써 먹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바울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그래도 인간은 사악하여 내버려두면 자만해지기 쉬우니 나에게 이런 알러지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구실이 되는 것 같다. 나를 반성하고 내 주위를 돌아보는 기간이다. 이 고난의 한 달이 나에게는 큰 걸음을 나아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