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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0.10.03 19:09:51>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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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10.03 19:09:51


어제 오후는 에너지과학과 입학생 설명회가 있었다. 오전 lab meeting이 있었고 알레르기 때문에 목은 부을 대로 부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새로운 얼굴들을 보니 그래도 힘이 나 즐겁게 설명회를 가질 수 있었다. 토요일인데도 사무실에서 모두 나와 준비해 준 것이 무척 고맙다. 이제 든든하게 일을 해 준다. 아마도 내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들일 것이다. 학생들은 많이 오지 않았지만 질문들은 무척 진지하고 신랄하기까지 했다. 어찌보면 나 자신이 반성할 필요가 있는 질문들도 있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학생들을 처음 대할 때마다 늘 기대감이 있다. 이 학생들이 배우고 졸업하여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은 누구나 진지하다. 그래서 속으면서도 그 마음을 믿고 싶어한다. 그 속에는 진실이 있으니까. 하지만 누구나 다 그 처음처럼의 마음을 그대로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먹기는 쉽지만 그것을 실행하는데는 고통과 인내가 따른다. 어제도 대학원을 들어오기로 마음먹으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한다고 잔소리했지만 하지만 내 속뜻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학원을 들어올 때의 마음은 간절할 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는 감히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로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먹구름과 천둥소리를 여름내내 들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 사람마음이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의 간절함이 내내 유지되어야하겠지만 불행히도 우리 인간은 어려움이 지나면 곧바로 그때를 잊어버린다. 잊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이지만, 처음 마음처럼 간절함은 잊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것은 우리 욕심이다. 나도 내가 학위를 마치고 교수가 처음 되었을 때 내가 가졌던 학생들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지금도 갖고 있을까. 참으로 부끄럽다. 그때는 학생들이 잘못해도 꾸중 전에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려고 했다. 교수이기 이전에 형이나 선배로서 다가가려고 했다. 비록 내가 지금 나이 들었다는 핑계 이외에 과연 처음처럼 마음을 갖고 있을까. 참으로 부끄럽다. 나를 피하는 학생들을 보면 내가 과연 교수로서 자격이 있을까 의심해본다. 자식도 자식 특성이 달라 특별히 더 좋아하는 자식이 있는 것처럼 학생들도 다 달라서 특별히 더 좋아하는 학생도 생기지만 그렇다고 과연 처음 마음을 유지하고 있을까. 학생들이 처음 마음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탓하는 내 마음이 우습다.



그렇다. 백마디 말보다는 내가 먼저 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아마 한 인간으로서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연구를 먼저 시작한 한 연구자로서 내가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가능할 지 모른다. 연구는 잘될 때 보다는 잘 안될 때가 더 많다. 그럴 때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포기하지 않고 헤쳐 나가는 논리를 개발하고 그 길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처음 시작했던 그 마음처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자. 그 길이 내가 살길이다. 열 번 실망하면 열한번 더 사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