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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2010.09.24 16:51:07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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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09.24 16:51:07


해마다 명절이면 시골가는 일이 골칫거리다. 이제는 꾀가 생겨 식구들은 먼저 보내고 난 하루 전날 도둑(?)기차를 타고 간다. 오해하지 마시라. 돈을 나중에 낸다. 철도고등학교를 나온 나로서는 기차 여행은 늘 향수다. 고등학교 때 공짜로 여행을 많이 다녔으니 말이다. 이번 추석은 억세게 운이 좋다. 아침에 수원역에 가니 줄 서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표는 매진이라고 전광판에 표시가 되어 있고 다행히 입석은 있어 그것도 다행이라 싶어 달라고 했더니 다음 열차가 좌석이 있다고 한다. 세상에 이렇게 반가울 수가. 누군가 표를 물렸음에 틀림없다. 이제까지 그 흔한 보물찾기, 빙고게임마저도 나를 외면했는데 정말 살다보니 별일 다 있다. 세상은 살고 볼일이다.^^



기차 안은 냉방 때문에 추웠지만 앉아서 졸면서 가는 행운의 느낌을 그대로 만끽했다. 전날 늦게까지 일했고 일찍 일어났으니 피곤할만 하다. 김제역에 내리니 여름 날씨처럼 후끈한 바람이 분다. 벌판은 예상대로 황금벌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도 논인데 올해는 그 논 색깔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비가 많이 온 탓일까 아니면 내가 늘 집에 늦게 오는 탓일까. 아침에는 볼 수 있을텐데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을 보면 내 삶에 여유가 없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왜 이렇게 바삐 살아야 할까. 전에는 일하는 것이 행복했지만 요즈음은 행복을 느끼기에는 너무 일이 많다. 일을 줄여야겠지만 그리 말대로 되지 않는다. 학생을 적게 받을 수 있을까....



시골집에 도착하니 누이는 벌써 와서 음식을 하느라 요란하다. 이제 나이들어 몸도 아프고 힘들다고 말하는 누이지만 타고난 부지런함은 어찌할 수 없다. 가장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가장 배우는 일에 열심이다. 그 나이에 영어, 악기를 배우는 것을 보면 아마 우리 형제 중에 가장 우수한 형질을 타고 났을 것이다. 그래도 가난한 집안의 맏딸이었으니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늘 마음에 걸리는 누이지만 엄마한테 그렇게 잘 하신다. 딸이 좋다고 하는 것이 이런 이유일 것이다. 아들은 셋이나 있어도 그리 섬세하게 엄마를 위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렇다. 올해는 엄마가 초기 중풍으로 쓰러지셨지만 극복하고 이제 말씀도 잘하시고 걷는 연습도 하신다. 서울에 계실 때보다 혈색도 좋아지셨다. 시골이 좋으신게다. 아직도 친구분들이 계시니 그래도 여기가 좋으신 것이다. 도우미를 쓰고 시골에 계시도록 한 것이 잘 한 일인 것 같다.



조금 있으니 동생 식구들이 모두 도착하니 집안이 떠들썩하다. 거기에다 조카가 결혼하여 새 식구까지 데려왔으니 모처럼 여동생 가족을 빼고는 다 모인 것 같다. 가끔씩 보는 식구들이지만 늘 정겹다. 초등학교 조카들은 아직도 우리 집안에서 귀염둥이다. 고등학교 조카들은 벌써 산 만하게 커서 힘으로 나를 이기려 한다. 엄마한테 늘 감사한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집안의 화목을 위해 보기 싫은 모습이 있어도 내색 안하시는 엄마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화목을 위해서 필요한 덕목이 인내인 것이다. 누구나 완벽한 사람이 없으니 기다려준다. 사람들이 잘못하면 남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깨닫는다. 그때까지 기다려주면 된다. 다섯 형제의 맏며느리로 온갖 어려움을 겪은 엄마의 지혜인 것이다. 세 며느리 모두 하늘에서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시는 속에 지혜가 있다. 우리 형제들의 우애는 오로지 엄마의 덕인 것이다. 비록 가난했더라도 이런 전통이 우리에게는 힘인 것이다. 이런 지혜가 나한테 필요하다. 학교에 있으면 학생들의 잘못이 눈에 보인다. 그럴 때마다 꾸중하면 아마 버티기 힘들 것이다. 인내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더워서 막내의 제안으로 모두 옥상에 올라서 돗자리를 펴고 누었다. 비가 오기 전이라서 그런지 후끈하게 불어오는 마파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누워서 구름사이로 비치는 달을 보고 있노라니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목월의 시가 떠오른다. 그렇게 달은 가고 있었다. 그 속에 별도 빠르게 지나간다. 이렇게 하늘을 본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어렸을 때는 여름에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하늘의 무수한 별을 보곤 했다. 그 쏟아지는 은하수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달빛도 그러려니와 동네 가로등이 이제는 그런 어둠을 제공하지 못한다. 문명이 주는 서글픔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가보다. 하지만 모처럼 가족끼리 옥상에 누워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누이는 그 시간 송편을 만들자고 해서 모두 송편을 만들고 있는 사이 해진은 또 즐거운 춤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어렸을 때부터 추워오던 춤이 초등학교 5학년인데도 아직도 우리한테 춤을 선사한다. 가로등이 비추니 마치 한 폭의 무대인양 그럴듯했다. 해진이는 우리 모두의 즐거움이다. 그렇게 즐거운 순간도 쏟아지는 비로 멈춰야만 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허락받은 느낌이어서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