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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나이 <2010.09.19 23:32:22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4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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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09.19 23:32:22


한국의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사람이 소개될 경우 반드시 이름 옆 괄호 안에 나이가 붙는다. 정치가는 물론 스포츠맨, 연예인 예외가 없다. 연예인의 경우 나이를 밝히려 하지 않는 점을 보면 이는 개인 인권 침해다. 물론 신문기자들은 독자들의 알 권리가 우선이라고 말할 것이다. 외국신문에서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언젠가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인터뷰할 때도 나이를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런 기자들의 태도는 우리 문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우리 의식의 깊은 곳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늘 나이를 의식한다. 물론 나이든 분들에 대한 공경심이 있는 것은 우리의 큰 장점이다. 지금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노약자석이 있지만 그런 것이 없었던 전에도 나이 드신 분이 오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양보하는 것이 우리들이었다.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대학에서 가장 익숙치 않은 것은 학생이건 교수건 아무나 이름을 마구 불러대는 것이었다. 나는 이 부분이 지금도 익숙치 않아 외국사람일지라도 선임자의 경우에는 prof. 누구라고 이름을 부른다. 그렇다고 대화에 있어서 불편한 것은 없다. 아마도 내가 서양에서 교육을 받은 탓이라 이 부분은 극복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내가 이런 부분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를 들라면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산 것도 있을 것이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지만 대신 그 분들의 사랑을 받은 것도 내 몫이어서 사회생활하면서도 어른들을 대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나이에 대한 의식이 결코 우리에게 득만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대학에서 근무한지 벌써 25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바로 학생과 교수와의 관계다. 학생들은 교수대하기가 어렵다. 이런 결과는 단순히 학생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들한테 오히려 더욱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난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학생들과 술도 같이 마시고 늘 대화하려고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다. 연구실 문을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열어놓는다. 물론 주위가 산만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을 닫아 놓았을 때 학생들이 방문시 느끼는 중압감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안다. 문을 열어놓아도 일부 학생들은 쭈삣쭈삣 기웃거린다. 이런 관계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런 벽을 어디에서 나올까.



난 이것이 우리 문화의 또 다른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에서 나이를 언급하는 것이 사실 우리 사회의 seniority를 간접적으로 조장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어린 나이에 무엇인가를 성취했으면 마치 대단한 일처럼 취급하고 나이들어 성취했으면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나이와 연관지어서 생각하려 든다. 그러나 이런 seniority 뒤에는 함정이 있다.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질 때는 나이를 따지기 전에 일의 진위를 먼저 따져야 한다. 연구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논리에 대한 타당성, 이에 대한 열린 토의가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교수라는 중압감 때문에 학생들은 교수와 자유스러운 대화를 하지 못한다. 전에 우리가 학생일때는 학생이 질문하면 건방지다고 호통치는 교수님들이 계셨다. 불행히도 이런 관계에서는 연구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 진리 그 자체에 대해 열린 대화를 하지 못하면 우리 연구에서는 희망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연구의 경험이 축적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더욱 커지지만 그럴수록 학생들과의 벽이 더욱 생기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상이다.



어떻게 이런 seniority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우리 모두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기술사회에 대한 희망이 없다. WCU를 통해 이를 조금이나마 극복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 본다. 외국인들이 우리 사회에 녹아들어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도 거기에 적을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신문에서 나이를 기재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 아닐까. 모든 일을 판단할 때 나이가 없이 오로지 옳고 그른 것 하나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