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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6-01-23
  • 조회수6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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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대학에 온지가 언제일까. 아니 아마도 내가 25년전에 간 곳은 여기가 아니고 고체물리연구소이었을 것이다. 아니 15년전에 간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차를 타고 가서 그런지 기억이 별로 없다.
이번에는 하네다 공항으로 오고 또 대낮에 도착하고 시간 여유도 있어 모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공항에서 케이슈 라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티켓도 한국말을 하는 도우미가 도와주어 별 문제없었다. 중간에 미타역에서 한번 갈아타는데 방향이 약간 헷갈렸지만 그것도 문제없이 물어 해결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최종역 사스가에서 내려서였다. 준비한 지도를 보고 방향을 기억하려고 했지만 출구로 나오는 동안 꼬불꼬불 몇 번하면서 금새 방향을 잊어버렸다. 막상 역 밖에 나오니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다. 지나가는 젊은 사람한테 물어보았지만 그 역시 촌놈.. 나름대로 방향을 지도와 비교하면서 일단 옮기기로 했다. 한 5분쯤 가다 건물의 배치가 지도와 틀린 것 같아 지나가는 나이든 아저씨한테 지도를 보여주고 물어보니 계속 올라가라고 한다. 안심하고 또 5분쯤 더 갔지만 확신이 없었다. 마침 지나가는 중학교 여학생들한테 물어보니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손짓으로 방향이 전혀 반대라고 한다. 역 반대로 가야 맞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도와는 조금 달랐다.
이번에는 반대로 한참가다 오른쪽으로 꺾어야할 것 같아 다시 중학교 남자학생들한테 물어봤더니 내가 추측한 방향이 아니고 왼쪽이란다. 애들을 보내고 나서 난 내 감각을 포기하고 전화기 지도를 열 수 밖에 없었다. 그 애들이 맞았다. 결국 구글에 의존해 가야만 했다. 씁쓸하지만 아날로그 방식이 실패한 것이다. 막상 호텔 근처에 가도 호텔이라고 크게 간판이 걸려있을 줄 알았더니 이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또 물어서 해결... 학교 앞의 학교 전용 호텔인가보다. 그래도 내부시설은 일본답게 모든 것이 편리하게 최소로 갖추어져 있다. 군더더기가 없다.
그렇게 헤매다보니 벌써 어둑해졌다. 학회 내용 이리저리 살피고 컴퓨터 설치하니 6시가 지났다. 피곤해 자기 시작해 일어나보니 다음날 5시였다. 거의 11시간 이상을 잔 것이다. 중간에 몇 번 깨긴 했지만 그렇게 오래 자도 허리도 아프지 않고 그렇게 잘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머릿속이 개운해 밀린 논문 하나를 시작했다. 금새 7시가 되어 아침을 먹으로 내려갔다. 저녁을 굶은 터라 아침이 맛있다. 일본식, 서양식이 최소로 섞여있는 간촐한 아침이다. 그러나 낫또와 미소수프가 있어 더 불평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오전에 논문을 하나 해치우고 11시쯤 이와사 실험실에 갔다. 동경대 캠퍼스를 처음으로 돌아봤다. 국립대인데 건물 외벽을 서양식으로 가꾸었다. 그래도 동경대라 가능한 모양이다. 실험실은 예상한대로 공간도 협소하지만 역시 최소한으로 갖추어져 있다. PPMS가 3대나 된다. 우리도 2대가 있지만 많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다. 학생들은 늘 시료를 갖고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쯤 더 구입해야 할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오후에는 학회가 시작이었다. 일본 5년과제 행사로 열리는 학회라 작은 규모일 줄 알았는데 참석자가 400명이 넘었다. 놀라운 것은 발표자들의 연구 수준이었다. 세계적으로 잘하는 사람들만 모아 논 것 같았다. 그저 입이 딱 벌어진다. 우린 언제나 저렇게 잘 할 수 있을까... 다음날 내가 발표인데 괜히 긴장되었다. 자만할 일이 아닌 것이다. 더욱 분발할 일이다, 화학하는 사람들이지만 아이다 그룹에서 내가 흥미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CN 박막을 처음 보았다. 신기했다. 같이 연구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아이다가 일본에서 이렇게 거물인줄 몰랐다. 전부터 안 사이였지만 나이도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나보다 젊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은 확실히 우리보다 한 수 위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생들도 젊은 교수들도 영어도 잘한다, 다른 대학과 사뭇 다른 인상이다. 그래서 동경대인 것인가. 모두 우리가 한 일에 대 해 놀라고 있지만 내 마음속에도 어느새 교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코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다.
타카오 소미야가 집으로 초청한 것은 의외였다. 일본사람들이 보통 하지 않는 것이다. 초청은 받았지만 집으로 가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선물 하나도 준비하지 못해 미안하다. 학교 앞에 단촐한 집이었다. 귀여운 초등학교 딸과 부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결혼을 늦게 하니 아이가 아직 어리다. 부인은 영어도 알고 성격도 활발해 보기가 좋았다. 좋은 부부다. 제난 바오와 그 전 포닥, 이와사도 같이 왔다. 젊은 친구들이 부럽게 잘하고 있다. 제난바오도 거의 십년전에 만나고 처음보니 그 사이에 많이 변했다. 그 때는 스탠포드 처음 부임해 고운 처자였는데 이제는 중년의 모습의 보인다. 모두 성실한 친구들이다. 나는 그 나이때 그렇게 잘하지 못했는데 이들은 나보다 앞서가고 있다. 음식이 맛있었다. 일본은 집에서도 사시미를 먹는 것이 신기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딸이 사시미를 잘 먹는 것도 신기했다. 알고보니 소미야는 동경 전통 토배기다.
아침 8시40분 비행기인데 일본에 올 때 깜박하고 엔을 챙겨오지 못했다. 서랍을 열었다가 다른 삶이 들어가 까먹고 도로 닫은 것이다. 공항에서 5000엔을 임시로 바꾸어 돈이 충분치 않아 다시 일찍 일어나 기차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5시에 눈을 떠 나오니 아침공기가 상쾌했다. 15분 정도 걸으니 다시 사스가역이다. 거꾸로 가는 것은 쉬울 것 같았다. 미토 라인을 타고 미토까지 가서 다시 하네다 공항가는 기타를 타니 이제 그만이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눈을 감고 한참 있다보니 옆에 탄 여행가방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 숫자도 점점 줄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다를까 방송이 종점이란다. 내려서 학생에게 물어보니 고개를 흔들어댄다, 하네다 공항 방향이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다시 돌아가 중간 역에서 바꿔 타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7 정거장이나 다른 곳으로 왔다. 다행히 일찍 출발해 아직은 시간이 넉넉했다. 그 역에서 내리니 하네다공항 나리타 공항 비행장으로 가는 두 개의 열차가 있었다. 그렇게 헤매고 공항에 도착하니 그래도 1시간 반 전이어서 문제가 없었다. 분명히 갈 때는 급행으로 갔었는데 올때는 뭐가 잘못되어 완행처럼 모든 정거장에서 정차했다. 차장한테 급행이라고 확인했는데도... 어쨌든 비행기를 탔으니 문제는 없는 셈이다.
3일간의 여행이지만 많은 생각을 한 시간들이다. 가져간 3편의 논문중 하나만 끝냈지만 나머지는 무주에서 써야 할 것 같다. 12시간을 자고 나서 머릿속이 맑아진 것으로 보고 내가 지쳐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향감각도 많이 무뎌졌다. 두 번을 착각한 것이다. 내 아날로그 방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좋은 연구는 단순히 내 머릿속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것, 서로 대화를 통해 배워 새롭게 더해간다는 것... 연구는 절대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 배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