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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5-12-27
  • 조회수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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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ifichem학회는 3년에 한번씩 하와이에서 열리는 학회로 이번에는 15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학회도 학회지만 아마도 연구자들이 휴가차 오는 곳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잘 이용한다. 보기가 좋다. 그만큼 살만한 것이다. 적어도 우리 세대에 비해 나은 점이다. 비행기 안도 온통 학회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못 보던 얼굴들을 여기에서는 다 본다. 그래서 학회가 좋다.

호노룰루 공항에 내리니 강렬한 햇살이 기분 좋다. 덥지도 않다. 몇 년전에 왔지만 반쯤은 여전히 낯선 느낌이다. 해변가 호텔에 묵어 기분은 좋지만 요즈음 좋지 않던 건강이 더욱 악화된 느낌이다. 피곤해 잠시 자고 일어나 저녁에 에디터 미팅에 갔지만 모두 낯선 사람들이다. 한국 사람들도 몇 분 있어 이야기를 나누고 몇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친구가 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들이었다. Elsevier의 reception 주선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웠다. 해변 모래 가를 걸어 돌아오는 것이 그나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자고나도 가슴이 빨리 뛰는 일이 여전히 계속되었다. 호흡이 힘들기도 했다. 전에도 가끔있는 일이었지만 이번은 반복주기가 빨라졌다. 이번은 토요일 일요일 모두 3번의 좌장에 3번의 발표가 있었다. 그 중 한번은 까먹기도 했다.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부터 세션좌장이 있고 발표까지 겹쳐있었다. 끝나고 호텔에 돌아오는데 20분 남짓 거리가 정말 먼거리처럼 느껴졌다. 호흡하기가 힘들었고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이 가라앉지 않았다. 호텔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오자마자 타이레놀을 먹고 잤더니 나아졌다.

깨어나서 생각해보니 이제 내 몸이 예전같지 않음을 느꼈다. 아니 다양한 원인이 겹쳐있어 진단이 힘들다. 돌아가서는 원인을 하나씩 점검해야한다고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아직도 여느때처럼 일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몸이 따라 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연말에는 힘들었다. 그때는 두통이 심했다. 그런데 이제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 스트레스 때문일까. 스트레스는 언제나 있는데 이제는 내가 버티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해소시키지 못한 탓일까. 운동을 소홀히 한 탓일까.

그동안 정말 일을 겁 없이 했는데 이번 일이 나에게는 좋은 반성의 기회가 된 것 같다. 스트레스 버터가 줄어든 것이다. 나이탓일 것이다. 하기야 전에는 밤늦게 일해도 문제없었는데 요즈음은 저녁때가 되면 머리가 멍하다. 집중도는 분명 올라갔는데 몸이 못 따라가는 것이다. 기억력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일의 해결능력도 분명히 좋아졌다. 논리적 능력, 사고 능력, 분별력 모두 여전히 좋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체력은 분명 떨어졌다. 이럴수록 체력 훈련을 더 해야하는데 실제로 훈련시간은 줄어들었으니 몸이 당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늙어서 몸이 약해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다. 내가 관리를 못한 탓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관리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충격적이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데... 아직도 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날 여기까지 허락했으면 분명 앞으로 내게 더 할 일이 남아있을 것이다. 아니 과연 내가 그 뜻을 이해나 하고 눈을 감을까. 모를 일이다. 아직도 모순 투성이인 내가 하나님한테 무슨 의미나 있을까. 여기서 그냥 간다면 과연 난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나 있을까.

하기야 이런 나의 생각은 부질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몫이 아니니까. 난 그저 주어진대로 살 뿐. 아직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도 가라고 내 생명이 주어진 것이다. 내 삶에 후회는 없다, 지금 죽는다 해도.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나한테 주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내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좀 더 나한테 책임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가 게을러 내 몸을 관리하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떳떳한 일이 아닐 것이다. 배장로님 말씀이 생각난다. 스스로 암이 걸린 것이 하나님 앞에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고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