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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하늘 <2010.06.02 17:55:32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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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06.02 17:55:32


모처럼 선거 때문에 억지로 만들어진 휴일이다. 그렇지만 학교에 나오는 마음은 훨씬 가볍다. 오전에 늦잠자고 투표하고 학교에 나왔다. 새로 산 자전거를 처음으로 탔다. 작은 자전거라 얕보았지만 더 잘 나가고 핸들링하기도 더 쉽다.



천천히 학교 길을 오다 보니 주위가 보인다. 햇살이 따가웠지만 기분은 좋다. 황구천 물이 더럽다. 이 물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개선이 되지 않는다. 선거철 정치가들도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환경이 오염되어도 모두 신경이 무디어진 탓이다. 전주의 좋은 환경에 길들여진 나는 10년이 다 되어도 이런 것이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것 같다. 길가의 작은 꽃들이 아주 예쁘다. 시에서 환경 미화 차원에도 심은 꽃도 예쁘지만 언덕 아무 곳에서나 피는 꽃도 참 예쁘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추위가 심해 언제 꽃이 피나 했는데 어느새 장미가 만발했다. 덩굴 장미는 언제 보아도 주위를 화사하게 만든다. 삼성아파트 언덕위에도 화사하게 피었으리라. 5월의 여왕은 그렇게 어김없이 찾아온다.



양쪽 논에는 내가 느낄 사이도 없이 벼가 다 심어졌다. 아직은 초기라 힘이 없어 보인다. 하기야 자리 잡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도 조절해 줘야 한다. 풀도 뽑아 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병충해도 생겨 농약도 줘야 한다. 한 포기의 벼가 쌀로 변해 식탁에 오르는데는 그런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농부였던 아버지는 그래서 쌀 한 톨이라도 흘리고 먹으면 나무라셨다. 그러고 보면 난 인내심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잡초를 뽑아줘도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왜 기다려주지 못할까. 못하는 학생들을 나무라는 나의 말들이 학생들을 더욱 지치게 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까지 기다려야 할지, 언제 강하게 밀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입 다물고 하고 싶은 말 다 참고 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그러나 내가 침묵해도, 꾸중을 해도 학생들이 불편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나이가 되어도 아직도 중용의 선이 어디인지 잘 모른다.



지난 번 여행 이후로 몸이 회복되지 않는다. 이렇게 머리가 아픈 것이 오래가기는 처음이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운동을 해도 마사지를 받아도 찜질방을 가도 해결되지 않는다. 어제 들어 조금 나아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기간이 지나면 다시 악화되는 느낌이 든다. 마음이 쳐지면 몸이 일어서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파아란 하늘이 외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내 마음 때문일까 내 몸 때문일까... 사람이 몸이 아프면 쉬어야 되느냐고 묻는 제자한테 공자는 몸이 아프면 먹지 않냐고 되물었다.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살라는 공자의 이야기가 실감난다. 그래도 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아무리 험하고 외로운 길이라도 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