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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23번째 <2010.05.28 11:08:39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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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05.28 11:08:39



우울하다.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하릴없이 구름이 덩실 떠 평화롭게 보여 마음이 활짝 펴질 것 같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마음은 두엄자리가 된다. 처음 교수가 되어 좋은 교수가 되기를 꿈도 꾸었지만 좋은 교수보다는 좋은 연구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산지 오래 되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으면 이제쯤은 마음 풍성한 연구자가 되어 있으련만 여전히 학생들은 내 방 문 두들기는 것을 두려워한다. 밤늦게 TV를 보아 잠은 설치고 마음이 달래지지 않는다. 학교에 출근하는 발길이 천근만근이다. 내 나이 50 중반인데 아직도 학생들 때문에 마음이 철렁인다. 돌아가는 사회의 꼴도 모두 뒷걸음이다. 고등학교 유신 시절의 암울한 사회의 느낌이다. 어찌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린 모두 이렇게 바보들일까. 내 눈앞의 이득이 그렇게 중요할까.... 어디를 둘러보아도 내 마음 둘 데가 없다.



스승의 날이 되어 이제는 의례 행사처럼 아이들이 자신의 토막글을 담아 예쁘게 코팅하여 준다. 어느 선물보다 고마운 선물이다. 형식적으로 쓰는 인사문구도 있지만 하나씩 읽어보면 아이들 마음이 묻어난다. 대부분 시작할 때의 마음을 기억한다. 스스로한테 다짐한, 그리고 나한테 약속한 마음을 읽어내고 그렇게 하지 못한 마음을 미안해한다.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렇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쳐내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사람살이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내 마음속 나를 잡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일까. 학생들이 처음 실험실에 들어올 때 각자 꿈을 가지고 들어온다. 석사 박사를 하는 것이 프로가 되는 것과 같다고 되뇌는 내 말도 모두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연구가 잘되지 않을 때의 엄청난 스트레스를 버텨야 하고 친구와의 데이트 하나를 더 줄여야 하고 내 인생에서 놀고 싶은 유혹 하나를 더 버려야 하고 때로는 이성 친구를 잃어야 하는 아픔을 인내해야 하고 연구가 안 되어 나는 능력이 없다고 느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 그런 의미인 줄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흔들리는 모습들이 보인다. 힘겨워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 모습들이 내 가슴을 짓누른다. 나는 왜 모두가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놓아주지 못할까. 이 새장 밖을 나가면 모두 자유로울 텐데... 왜 나는 이런 역할을 하고 살까. 꿈이 없으면 어떨까. 아니 다른 꿈을 꾸면 되지 않은가. 왜 나는 같은 꿈을 강요할까. 같은 꿈을 먹고 내 실험실에 들어왔으니... 그래서 내 식구가 되었으니 강요해도 된다... 이런 내 모습이 싫다.



젊었을 때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성취감이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 꿈이 생겼다. 사회에 대한 나의 책임, 나 자신에 대한 책임, 하나님 앞에 선 겸손한 자로서의 자세, 이런 것들이 모여서 나에게 꿈을 주었다. 아니 생명을 갖고 사는 자로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일 것이다. 나한테 주어진 짧은 이 시간동안 대충 살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일에 찌들어서 욕심이 많아진 탓일까. 왜 이렇게 학생들의 부족한 점들이 많이 보일까. 더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있지 않을 말... He may be a fool but he is 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