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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졌는가 <2010.04.05 21:14:05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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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04.05 21:14:05


나는 시골 촌놈이다.

여름이면 냇가에서 물놀이하느라 새카맣게 그을러 있었고 (그 덕에 지금도 까맣지만^^) 겨울에는 늘 밖에서 놀아 손발이 동상이 걸려 있었다. 엄마가 치료해준다고 소똥을 손에 쌓고 뜨거운 화로위에 올려놓고 있다가 화상을 입었다. 덕분에 동상은 없어졌지만 지울 수 없는 영광의 상처를 남겨 지금도 갖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학교에 도시락도 못 싸 가고 점심 시간에는 혼자서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난하다고 돈을 벌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방과 후의 과외도 없었던 나에게는 온 세상에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저 놀면 되었다.



살다보니 어느새 나도 가진 자가 되어 버렸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나도 모르게 가진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교수라는 울타리가 나를 학생들로부터 격리시켰고 교수라는 울타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보통 사람 이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주위의 그런 눈들이 가끔은 내가 그런 사람인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문득 생각해보면 우울하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이다. 교수라는 가면 속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를 교수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보아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내가 교수가 아니고 그냥 평범한 한 사람이어도 나를 존경해줄만한 사람 얼마나 있을까. 그냥 나를 이영희라고 보아주고 술 한잔 편하게 할 수 있을 사람은 과연 없는 것일까. 모든 사람이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정말 아부와 진실을 구분할 수 있을까. 어느 것이 진실일까. 아부하는 요령을 가르쳐주는 강희의 진실함(?)이 가슴을 적셔온다. 가끔은 울고 싶을 때가 있다. 함석헌의 그대를 가졌는가가 가슴에 절절히 느껴온다.



만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