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
Search

호치민에서 <2010.03.17 23:15:30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5975
  • 파일
내용보기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03.17 23:15:30


호치민까지 5시간 반이 걸려서 왔다. 베트남 항공을 처음 타 봤는데 대한항공 서비스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여러 가지 불편하다. 음식이 다르고 서비스가 다르다. 승무원은 이착륙을 제외하고는 비상구 창문을 닫아야 하는데 비행내내 열어놓았다. 음식을 서빙하는데 음식 위치와 컵의 위치가 바뀐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 중국항공을 탔을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 모든 것이 성숙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우수한 베트남 학생을 에너지과학과에 유치하는 일이다. 실험실 랍이 전체 일정을 짰다. 같이 가니 마음에 부담이 없다.



호치민은 34 oC 완전 여름이었다. 비행장에 마중 나온 호치민 대학 탁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맞아 주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에 들어갔는데 에어콘이 작동하지 않는 택시다. 입고 간 옷이 춘추복이지만 이 날씨를 버티기는 어려웠다. 땀으로 베어 있는 옷을 갈아입고 저녁 5시에 탁교수를 다시 만나 시내 음식점에 갔다. 딘키라는 음식점인데 같이 간 랍이 내 취향을 알아서 음식을 시켰다. 또 탁 교수가 한국에서 포스트닥을 지낸 적이 있어 전체적으로 음식이 입맛에 맞았다. 전에 미국에서 경험한 쌀국수의 민트냄새는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담백했다.



시간차가 두 시간이어서 그런지 자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사성급 호텔이지만 시설은 중국을 연상케 할 만큼 아직 세련되지 못했다. 방은 엄청 넓다. 우리로 말하면 두 개 방을 만들 수 있는 너비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호텔 음식은 세계 다른 곳과 별반 차이 없다. 슬픈 일이다. 지역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으니... 다행히 김치도 있었지만 맛이 없다. 아침에 방문한 호치민 과학대학은 겉으로 봐서는 몇 개의 연립주택을 가운데 두고 둘러싼 느낌이 드는 곳이다. 가운데 위치가 학생들이 활동하는 곳이다. 곳곳 길에 퍼져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건물의 복도 복도에서 옹기종기 모여 토론한다. 어수선하다. 교수 연구실이라고 해야 시설이 형편없다. 교수도 여럿이 함께 쓴다. 중고등학교 교무실 축소판인 셈이다. 옆에 장기판도 있다. 70년대의 향수가 묻어나는 곳이다. 내 학교 다닐 때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교실내의 시설도 형편없다. 이곳이 베트남 최고의 대학인데도 말이다. 내가 세미나 하는 곳은 방의 크기가 아주 작아 학생들이 많이 안올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자리가 부족하여 서 있을 정도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학과를 소개하고 에너지 연구를 소개한 후 인터뷰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영어는 모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공부를 해야겠다는 열의는 대단했다. 하기야 이 학생들은 모두 유학을 가기 위해 학교에서 기르는 일종의 영재들이다. 베트남 최고의 대학에서도 그 중 고른 애들이니 질로 말하면 뒤질 일이 없는 아이들이다. 다만 나라가 가난하니 더 나은 교육을 외국에서 받으려 하는 것 뿐이다. 10명 이상의 애들을 오전 2시간 이내에 인터뷰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아이들이 더러 눈에 띄인다. 그 전공에서 top에 있는 아이도 있다.



점심은 랍의 누이가 매부와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랍의 고향이 중부지방인 훼이인데 이 곳 음식이 유명하다 해서 랍의 누이가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나온 것이었다. 랍이 나의 식성에 대해 이야기한 결과인지 베트남 전통음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어쨌든 조그마한 음식점이었지만 음식은 정말 맛이 있었다. 쌀 속에 여러 가지 음식을 넣어 삶은 것인데 모두 쫄깃하고 맛이 담백했다. 민물 생선국은 약간 특이하기 했지만 그런대로 맛있었다. 너무 많이 먹어 오후 호치만 공과대학 인터뷰가 걱정되었다. 근처의 공과대학을 택시로 이동하여 약속 장소에 갔지만 교수는 출장가고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랍 출신학교라 별 염려가 없었다. 국제협력실에 들려 안내 받은 장소는 에어콘도 작동되는 훌륭한 곳이었다. 가방을 들고 많이 걸어서 그런지 온 몸이 땀에 젖었다. 초기에는 학생이 없었지만 이내 모두 자리가 찼다. 끝난 후 자연스럽게 자유 토론을 했는데 재미있는 질문들이 많았다. 자기내 나라는 나노과학에 관심이 없는데 그런 연구를 하고 오면 어떻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는가 하고 회의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기야 그 나이에 10년 후의 일이 보일리 만무하다. 하지만 에너지 과학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는 눈치였다. 세 명의 아이들만 관심이 있어 인터뷰를 했는데 모두 그 자리에서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성격들이 급하다. 이곳은 연구시설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연구하기에는 시기가 이른 걸까... 이런 곳이 베트남 최고학부라는데... 하기야 75년도에 전쟁이 끝났으니 우리보다 최소 20년 뒤졌을 것이다. 거기에다 중국에 1000년 지배를 받고 프랑스에 100년을 지배받고 전쟁으로 초토화되었으니 따라오기 힘들 것이다. 이런 나라를 개방하라고 전 세계가 국제화를 외친다. 마치 마라톤 대회를 하는데 이미 선진국은 절반을 통과하면서 후진국보고 정당한 게임이라고 늦게 출발하여 따라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눈 뜨고 발가벗기려고 작정하는 것이다. 국제화의 허구다. 내가 이 나라의 지도자라면 절대 동의하지 못할 일이다.



서둘러 간 호치민 국내공항은 에어콘도 되지 않는 시설이 초라한 공항이다. 화장실을 가보니 가관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좋지 않은 속이 여전히 좋지 않다. 수세식 화장실이지만 들어가 볼일 볼 수 있을만한 곳이 없었다. 땀은 줄줄 나고.... 어디를 가나 줄을 길게 기다려야 한다. 도무지 일을 빨리 하는 법이 없다. 프랑스한테 배운 유산이 이것일까.... 아니면 사회주의국가에서 배운 것일까... 게으름이 몸에 베어 있다. 이것을 바꾸지 않는 한 경쟁력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