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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카레스트에서 <2010.03.04 10:03:14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9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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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03.04 10:03:14




부카레스트에서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여권이 잘못되어 공항에서 출국을 거절당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여백지 한 장 없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서류 위조인지 처음 알았다. 몇시간을 죄인(?) 취급당하며 조사 끝에 결국은 출국을 못하게 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참으로 황당했지만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것이 스스로 신기하기까지 했다. 절에서의 마음의 평정을 찾은 것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조사를 받으며 밖에서 기다릴 때도 단정히 앉아 복식호흡을 하니 초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앞으로도 이런 훈련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옥주한테 전화하여 월요일 비행기표를 다시 예약하도록 하고 집에서 일요일을 푹 쉬었다. 월요일 학교에 가서 기다리니 결국 비행기 표가 결정되고 9:30 공항 버스를 가까스로 탔다. 그 전에 비상여권을 만들기 위해 출입국사무소에 출장증명서 비행기표 예약하는 등 사무실 직원들이 정신이 없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일회용 비상여권을 만들고 결국은 파리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사실은 파리에서 부카레스트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다음 비행기까지 바꿔 타는데 55분 밖에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행기 좌석이 뒤쪽이라 내리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었고 출발도 약간 늦었다. 도착시간을 물어보니 바람이 좋지 않아 시간이 최대로 걸려 도착시간을 당길 수 없다고 했다. 5분 늦게 도착할 예정이지만 그것조차 마음에 걸렸다. 그러면 50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튜어스한테 부카레스트 가는 비행기를 잡아두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난감해하는 표정을 보고 결국은 사무장한테 부탁했다. 사무장은 나의 스케줄을 꼼꼼히 살피더니 최소 이동시간이 45분이 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도착시 다시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안심하고 쉬려고 했지만 좌석을 늦게 예약한 탓에 창문좌석이었고 온도가 높아 옷을 다 벗어도 더워 버티기기 힘들었다. 결국은 좌석을 빠져나와 뒤쪽에 가 5시간 가량 서서 갔다. 오랫동안 서 있는 나를 보고 스튜디어스가 걱정을 해 주었지만 그게 나한테는 더 편했다. 운동을 지속적으로 한 탓인지 다리가 피곤하지 않았다.



서 있다 보니 바지가 터진 것을 깨달았다. 속살이 보일 정도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야 보는 사람이 없겠지만 그렇게 일주일을 버틸 수는 없었다. 난감했다. 출발하기 전에 알았어야 하는데 요즈음 마누라는 이런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유럽호텔에서 실 바늘을 구하기란 힘든 일이다. 궁리 끝에 스튜디어스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밑져야 본전일 것이기 때문이다. 맨 뒤쪽의 스튜디어스는 제일 쫄짜들이다. 그래서 더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튜어디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잠시 후에 정말 실 바늘 세트를 가져왔다! 호텔에 머물면서 혹시나 하고 보관하고 있었단다. 너무나 고마웠다. 내리면서 감사의 편지를 주었다, 이것이 이들의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것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마움의 표시다. 이것 때문에 전에 칼 사장의 전화를 직접 받은 적도 있다. 내가 지적한 사항을 하나하나 어떻게 시정했는가를 사장이 직접 설명했다. 칭찬하면 그만큼 점수를 얻는 것이다.



파리에 도착하기 전 사무장이 나를 앞 좌석으로 인도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E에서 F로 이동하기 때문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버스로 이동해야했다. 부지런히 루미니아행 비행기 게이트를 찾아 가니 5분전이었고 사람들은 이미 탑승하는 중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올 시간은 있었다! 그렇게 다시 2시간을 달리니 부카레스트였다. 예상한데로 디디는 없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에 가 보니 디디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내가 오지 않을거라 예상하고 호텔예약도 취소해 놓았지만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둘이 만나 한참 수다를 떨었다. 방안에 들어와 오랜만에 자취시절 솜씨를 발휘하여 바지를 꿰메었다. 감쪽같다. 일주일은 버틸 것이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일어나 IMT에서 발표할 파일을 정리하고 아침을 먹고 밖에 나갔다. 연구소에 가는 도중 길거리 모습은 대략 중국의 도시를 연상케했다. 루마니아의 수도지만 소련에서 해방된 지 얼마되지 않은 탓인지 곳곳에 공사 중인 건물이 많고 덩그러니 공사가 중단된 골제기둥만 있는 건물 등이 많이 있다. 돈이 없어 진행하지 못한단다. 거리 건물은 먼지로 대개는 수북히 덮혀있고 도로는 차로 붐빈다. 매연이 가득하다. 건물들은 허름하다, 돈이 없어 보수가 힘든 탓이다. 국회의사당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단다. 유럽에 속하지만 아직도 유럽연맹에 가입을 하지 못할만큼 경제력이 뒷받힘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밖지 않다. 여자들은 모두 뚱뚱하다. 도로는 형편없이 곳곳이 파여있다. 곳곳에 보이는 공간은 쓰레기가 가득 차 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해석하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또 다른 좋은 본보기 나라다. 아니 아마도 그런 원칙의 차이라기보다는 구 소련의 착취가 그만큼 심했다는 이야기로도 해석된다. 구 소련이 물러난 모든 나라가 다 이렇다. 동독도 예외는 아니었다.



IMT연구소는 예상과는 달리 많은 측정장비를 구입하고 있었고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진지했다. 20여년전 중국에 가서 느낀 것처럼 여기도 젊은 사람들이 부족했다. 나이든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연구소라 학생들이 없는 탓이다. 주변 대학에서 일부 방문한 학생들이 있다. 우리 과를 소개하고 세미나를 했지만 질문은 많지 않다. 재료 자체는 별로 관심이 없고 측정에만 관심이 있는 전형적인 물리 연구소다. 내 입장에서 보면 나노인덴터등은 쓸만하다. 우리가 사고 싶은 장비도 있었다. 공동연구는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주변대학에서 온 사람들이 학생 보내는 것에 관심을 보여서 다행이었다. 일부 학생들을 데려올 수 있을 것 같다. 아침부터 시작하여 점심도 먹지 않고 오후 4시까지 실험실 방문과 토의를 계속하고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돼지 갈비를 신청하여 먹었지만 너무 기름기가 많아 절반도 끝내기가 어려웠다. 계속 나오는 후식등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갈비와 나오는 볶음 감자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 여기 사람들이 왜 그리 뚱뚱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돌아오는 동안 도로 막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심했다. 삼성과 엘지 광고는 모든 곳에 있었다. 점심을 먹으며 들린 몰 안에도 삼성관이 따로 있을만큼 모든 사람들이 삼성을 알고 있었다. 현대 기아 대우 차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확률적으로 5%도 안 되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간단히 마실 곳을 찾기 위해 길거리를 걸었지만 술 마실 곳이 없었다, 그 다음날 알았지만 우리가 머무는 곳은 술집이 없는 곳이었다. 저녁에는 돌아와 잠을 5시간 정도는 잘 수 있었다, 중간 중간 깨었지만 그래도 몸이 나아졌다.



아침은 든든히 먹었다. 호텔 내의 뷔페식인데 여느 유럽음식과 비슷하다. 오늘은 남쪽 레이져 연구소에 들려야 하기 때문에 아예 체크아웃하고 나왔다. 어제와는 반대로 남쪽으로 향했다. 이곳은 북쪽에 비해서 훨씬 개발이 덜 된 곳이다. 황량하다. 돈이 없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온 미카엘리스쿠 교수는 이 곳의 책임자인데 권위가 있는 사람같다. 우리 보는 것을 똑바로 보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실험하면서 레이져에 눈이 직접 닿아 실명했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불편한 몸에도 모든 것을 우리한테 직접 설명을 해 주었다. 온갖 종류의 레이져가 다 있었다. 연구소에서 직접 만든 장비도 있었다. 세미나에 대한 질문이 몇 개 있었다. 의외로 우리 학교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포스트닥에도 관심이 있었다. 여기서도 학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보다 좋은 수확인 것 같다. 어렵게 이 곳에 온 일이 잘한 일 같다.



여기는 파리 공항 에어프랑스 라운지다. 디디가 카드를 갖고 있어 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메일도 체크할 수가 없고 인터넷도 가능하지 않다. 여전히 후진국이다. 드골 공항은 너무 불편하다. A에서 G까지 있을만큼 너무 크다. 걷는 거리도 너무 멀고 공항을 바꾸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한다. 유럽의 허브 역할을 하고 교통량이 많은 탓도 있지만 곧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손님들이 불편함을 느끼면 결국은 경쟁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은 그런 면에서 아직도 세계 최고다. 동구유럽의 불편함을 보면 그동안 우리가 쌓아 온 문화와 시스템의 편리함에 저절로 자부심이 느껴진다.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시스템의 편리함으로 결정된다. 시스템의 편리함이 곧 그 사회의 효율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 갖추기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산수가 얼마나 좋은지 기후가 얼마나 좋은지 해외에 나오면 늘 느껴진다. 이 곳의 하늘은 늘 우중충하다. 여기서 오래 살면 마음도 우중충해질 것이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우리의 젊은이들이 여러 곳을 다니면서 경험을 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 우리의 약점인지 우리의 강점인지를 안다. 젊었을 때 돈이 있으면 아니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아니 저축을 해서라도 여행을 권하고 싶다. 젊었을 때의 고생을 사서도 한다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고생하기를 싫어한다. 이 말은 내 아들이 제일 싫어한다. 그러나 여행을 해보라.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테니 시작하기도 쉬울 것이다. 그래서 느껴보라. 친구도 사귀어보고 무엇이 차이인지 느껴보라.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 어떻게 자원도 하나도 없는 우리가 부를 유지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