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
Search

템플스테이2 <2010.03.01 13:21:57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2062
  • 파일
내용보기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03.01 13:21:57


절에서의 시간은 밖의 세상과 다르다. 저녁 5시에 밥을 먹고 9시30분에 취침하여 새벽 2시면 일어나 예불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아침 6시에 아침을 먹는다. 수민의 아빠의 부탁으로 송현스님께서는 나에게 특별히 자유시간을 많이 허락했다. 아침 예불도 일어나기 힘들면 안해도 된다고 했다. 어제 저녁 일찍 잠을 자 2시쯤 뒤척였다. 절 영혼들의 속삭임이었을까. 그러나 나의 게으름을 이기지는 못했다. 새벽에 얼람을 쓰지 않았는데도 5시에 기상했다. 신기하다. 이 곳의 모든 영령들이 그 시간에 활동하는가보다.



절 음식은 정말 담백하다. 밥, 콩나물, 김치, 산나물, 시래기 그리고 오랫만에 먹어보는 순대 된장국... 맛은 없다. 그러나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밖에서는 늘 배불러 있으니 여기 있는 동안이라도 허기짐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침은 정말 조용했다. 새벽은 새들도 깨어나지 않는다. 정적 이외에는 아무소리도 없다. 오랜만에 느끼는 정적이다. 어렸을 때는 늘 쐐하는 정적을 느끼며 살았다. 아침 후 해돋이 맞으러 해변가 근처의 의상대로 갔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수면위로 끼어 있는 안개구름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동해의 해돋이는 아름답다. 그래서 그렇게 동해로 해구경하러 오나보다. 날씨는 여전히 차다. 얼굴이 온통 얼었다. 해가 뜨자 드디어 새들이 지저귀었다. 정적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밤은 정령들의 몫이라면 낮은 살아 숨 쉬는 자들의 몫이다.



오늘은 종일 자유시간이다. 가르쳐 준 대로 방안에서 면벽 명상을 해 보았다. 가부좌를 틀어 한쪽 다리를 올려 놓았지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러고 30분을 있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아픈 다리의 통증을 음미하며 복식호흡을 하니 점점 통증이 잊혀졌다. 그러나 고작 10분... 다리가 저려 방안을 도는 것이 힘들었다. 그렇게 다시 가부좌를 하고 앉으니 이번에는 20분을 해도 버텼다. 발목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복식호흡하자 금새 잊혀졌다. 다시 일어나 걷고... 다음은 30분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면벽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의 심정은 무엇일까. 나는 나를 비워내기도 이렇게 버겁다. 명상동안 온갖 잡념이 나를 사로잡는다. 호흡에 집중하여 생각을 흐트러트리고 그러기를 반복하다보니 시간이 간다. 어제의 108배가 효과일까. 허리가 많이 아프다. 젊었을 때부터 아픈 허리를 지금까지 버텨왔다. 고맙다고 한마디 없이.... 그래 버텨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많이 가야 할텐데 또 고생할 일이 안쓰럽다. 내 몸의 호소를 내가 들어주어야지.... 이제까지는 무시만 했는데....



11:30 점심은 국수였다. 간이 천막실에서 일반인들과 같이 먹는 국수였다. 여전히 맛은 없었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게 되니 그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33만평 되는 산사를 돌기로 마음먹었다. 날씨가 풀린 탓인지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나 내 눈에 사람들이 들어오질 않았다. 그저 무심해지려 노력했다. 산자락에 토끼 한 마리가 배가 고픈지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나를 보아도 도망가려하지 않는다. 몹시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다람쥐도 부지런히 이리 저리 움직인다. 눈 덮힌 산에 먹을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눈이 오면 고생하는 것은 동물들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 눈이 오면 꿩몰이를 했다. 인간은 잔인하다. 하기야 서로의 생존경쟁일까...



산사로 돌아와 맷돌위에 앉아 있으니 녹아 떨어지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작고 큰 소리를 구분하여 본다. 눈 속에 물이 스미어 드는 것이 보인다. 불연속적이다. 임계무게 이상이 쌓여야 다음 칸으로 이동한다. 연속적인 거처럼 보여도 미시 세계에서는 그렇게 늘 불연속이다. 미시세계의 양자효과처럼. 처마 끝의 고드름도 다 녹아 떨어진다. 가끔씩 바람에 흔들거리는 풍경소리, 그리고 바람이 부는 소리, 나뭇잎들의 속삭임이 쉬이 하고 지나간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다. 따스한 햇살이 마치 봄날의 햇살 같다. 난 어느새 시골의 한 소년으로 돌아와 버린 것 같다. 어릴 때 비가 오면 처마 밑에서 한없이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있던 생각이 난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월이 지나 아주 먼 곳 이곳 동해까지 와서 나는 소년으로 돌아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또 면벽 가부좌... 이제는 쉽다. 30분이 가볍다. 방안을 걸으며 내 몸의 통증을 느낀다. 허리, 다리, 모두 아우성 친다. 내 몸의 내장들은 성할까... 손이 붓는 것을 보니 내장들의 외침도 심상치 않다. 내가 맛있다고 먹어치우는 음식들을 소화시키느라 너무들 지쳐있지는 않을까... 시시 때때로 마시는 커피, 녹차, 술 모두가 신장을 고생시키고 있다. 저녁 예불은 내가 제일 먼저 가서 기다렸다. 108배를 다시 도전하고자 했지만 무릎 때문에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니 무릎과 적당히 타협하니 버틸 수 있었다. 오늘은 코 끝에 땀이 베었다. 무릎을 봐주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낮에 잠깐 잔 낮잠 탓일까... 저녁에는 잠이 오질 않는다. 저녁바람에 움직이는 풍경소리 이외에는 다시 정적이다. 이제 내일이면 떠난다. 퇴실이 1시이니 다시 차담시간이 남아 있다. 전화기도 꺼놓고 하루에 한번정도 체크하니 이만하면 딴 세상에서 하루를 보낸 셈이다. 사실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잘 돌아간다. 가끔은 이렇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조바심 때문에 화를 자주 내고 일을 즐기지 못하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없다. 전처럼 좀 더 웃고 좀 더 가볍게 세상을 살았으면... 천방지축의 철없는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으면^^ 그러면 세상을 더 즐길 수 있을텐데... 그 많은 훈련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