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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2010.01.10 13:35:51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3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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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0.01.10 13:35:51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가 1974년이었다.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을 가기로 마음먹은 후 난 막연히 아 1980년에는 무엇인가 내 손에 잡을 수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기대도 하고 다짐도 했었다. 그런데 1980년에는 난 군대에 있었고 내 손에 잡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암울한 시기였다. 그리고 1990년을 기대했었다. 그 때는 교수가 되어 미국에 다시 안식년 나가 있던 때였고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좌충우돌한 시기였다. 사회적으로야 교수지만 내 마음속은 여전히 갈증이었다. 2000년은 어땠을까? 탄소나노튜브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난 희망으로 가득찬 시기였다. 소위 21세기를 맞이하여 나노시대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만큼 나의 소명도 높은 해였다. 겉으로 큰 변화는 없었지만 나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찬 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제까지 내가 잡았던 기점들에 비해 가장 행복했던 기점이 아니었던가 싶다.



2010년이다. 시간의 연속성 의미에서 보면 이런 구분이 별 의미가 없지만 우리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보니 이런 구분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2010년이 나에게 어떤 기점일까? 2009년이 시련의 한해였다면 적어도 2010년에는 희망의 한 해이였으면 하고 바라지만 시작부터가 그리 될 것 같지 않다. 마음 속의 부담은 여전히 천배 만배이다. 인간관계,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 연구를 떠나서 이런 문제가 첩첩산중이다. 내가 과연 이런 짐을 다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사람간의 관계가 어찌나 이리 어려운지... 전처럼 사람을 별로 만나지 않고 연구에 빠져 살고 싶은데 환경은 끊임없이 나로 하여금 사람을 만나도록 강요한다. 정말 인간사회다. 외국인과의 관계가 더 어려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거의 대부분 이제까지는 일로 만나고 일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 깊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논리적으로 해결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관계가 깊어지면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고 그러면 사람관계가 더 이상 단순한 논리관계가 아니고 더욱 복잡해지게 된다. 참으로 어렵다.



이번 주에는 교과부 신년인사로 대통령을 만났었다. 아마도 내가 가야할 자리는 아니었지만 외국인들과 같이 가는 자리라 내가 끼어든 것 같았다. 만찬장 옆으로 안내되어 갔는데 가 보니 내노라하는 전 현직 장관, 국회의원등의 사람들이 대통령이 오기를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 아는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기다리는 것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들어오자 모두 악수하고 환담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 모두 한마디도 대통령한테 잘못했다는 소리가 없었다. 아니 아마 신년인사라 그리 할 수는 없었겠지만 전직 대 언로교수 몇 분도 모두 그리하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웠다. 그 중 몇몇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도 자기를 어필하느라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사실 나도 WCU 프로그램에 대해 할 말을 준비하고 갔지만 도저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요구사항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찬장에서도 조금만 잘한 일이 언급되면 박수를 친다. 대단했다. 언론에서는 모두들 그의 마이동풍 스타일의 독주에 비난을 쏟아 놓는다. 그런데 그 분위기를 보니 어느 누구도 아마 그에게 그런 조언을 할 것 같지 않다. 독일의 히틀러가 왜 히틀러가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다. 그 자리에 있다 보면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게 해결할 일이 쌓이게 되고 부정적인 의견을 낼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능한 부정적인 의견보다는 긍정적인 의견 중심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그리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일하면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할 일은 쌓여있는데 뒤에서 일을 하지 않고 부정적인 의견만 내는 사람들이 있다. 얄밉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된다. 우리 사회가 히틀러라는 사람을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디가 평형점일까.



연구라는 것도 사실 그렇다. 연구는 실패를 가정하고 시작하는 것이 정상이다. 되는 연구보다 안 되는 연구가 더 정상인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사람은 연구하는 일이 맞지 않다. 열 번 안 되면 열 번 다시 더 생각하고 되는 방향으로 바꿔가는 것이 연구하는 사람들의 태도이기 때문에 부정적이면 그냥 포기하기 쉽다. 단 하나의 희망만 있어도 우린 가야한다. 그게 연구자의 태도이다. 연구에서 반대의견은 독약이자 희망이다. 기존의 개념을 부정해야 새로운 개념이 나온다. 물론 새로운 개념은 당연히 기존의 개념을 설명할 수 있어야 새로운 개념이 인정된다. 그러니 과학은 적절히 타협할 줄도 안다.



올해는 또 어려운 시련의 한 해가 되겠지만 난 긍정의 힘을 보고 싶다. 다 안 된다고 할 때 된다고 우기는 오기를 올해도 부리고 싶다. 모두 안 된다고 좌절할 때 단 하나의 희망을 찾고 그 희망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언젠가 우리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현인이 서쪽에서 나타날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