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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쪽에서 뜬다? <2009.06.06 14:51:29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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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9.06.06 14:51:29


The sun rises in the east and sunsets in the west.

이것은 중학교 책에 나왔던 구절로 지금도 기억한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 아마도 너무나 평범한 사실이기 때문에 영어책에 나왔을 것이다. 아무도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 초 유럽을 여행할 때 독일에서 프랑스로 가는 오후 비행기에서였다. 그날은 무척이나 구름이 끼여 비행기가 뜨기 힘들었지만 막상 하늘에 올라오니 아래로는 구름 침대가 깔려있고 눈이 부신 해가 그 위에 내리쬐고 있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구름은 너무 포근하게 보여 마치 그 위에서 구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오후 시간이라 해가 지고 있었다. 땅 위에서야 수평선 혹은 지평선 아래로 해가 진다고 말하지만 거기에서는 운평선 위였다. 새로운 단어가 필요한 셈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시간이 가면서 해가 지지 않고 오히려 해가 뜨고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비행기가 서쪽으로 가고 있고 해가 서쪽에 있었지만 해는 지는게 아니고 뜨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비행기의 속도가 지구의 자전속도와 비슷하면 그런 일도 일어날 듯 싶었다. 머릿속으로는 그런 논리가 세워지지만 해가 서쪽에서 뜰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사실 우린 살면서 여러 지식을 쌓게 되고 지식이 쌓이는 만큼 비례하여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이 구분되어진다. 따라서 선입관이라는 것이 쌓여간다. 사람관계도 그렇다. 어떤 사람을 몰랐을 때는 백지장에 아는 것을 쌓아가는 것처럼 순수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는 것이 많아지게 되고 백지가 채워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 장에는 선입관이라는 것이 들어간다. 아쉽지만 이것은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인 것 같다. 오늘 작성한 노트를 지우고 내일은 다시 처음 백지에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늘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될 것이지만 우린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또 그렇게 새로운 만남을 추구해도 상대방이 선입관을 쌓고 있으니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게 되지만 모두 결혼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학문을 추구하는 우리들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 힘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미 쌓아놓은 지식이 우리를 그렇게 창의적이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해는 늘 동쪽에서 뜬다고 배웠고 그것이 진리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득 차 있으니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우리처럼 기술에 관련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의 제한 때문에 상상의 나래를 펴기가 힘들다.



때로는 모든 것을 다시 지우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선입관을 키우기보다는 직관력을 키우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매일 열심히 배우되 다음날 모두 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을 키워낼 수 없다. 늘 버리는 훈련이 필요한 우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