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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2009.05.25 22:38:46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3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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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9.05.25 22:38:46

토요일 입학전형을 끝내고 피곤해 집에 들어가니 딸 아이가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다고 했다. 난 할 말을 잊었다. TV를 틀어보니 상황이 이해가 갔다. 그런 선택밖에 그에게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우리 현실의 비극이다. 슬픔보다는 그런 현실에 대한 분노가 먼저 떠올랐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각박함과 또 내가 부딪히는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한번 느껴본 순간이었다. 내가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모두가 나보고 표리가 다른 사람이라고 등을 돌리고, 근거도 없이 하루가 멀다하고 자기에게 돌아오는 모욕적인 언론의 횡포, 그 가운데 한겨레 신문이 있었으니 본인이 겪는 마음고생이 어떠했을까... 과거의 동지였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그로 인해 가족 모두에게 오는 심적인 피해를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을 정의 하나로 버티어 온 사람인데 자기를 죽여버린 이 사회를 바꾸고자, 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이란 것 해 보았는데, 자살이라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아마도 그것이 그에게 남아있는 무사의 기개이고, 그것이 과거 못살던 선비들의 하나 남은 자존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나라도 그런 길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아니 나라면 외국으로 도망가는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쥐뿔도 없는 이 모진 나라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이 나라를 지탱한 한쪽 구석의 양심이 사라져 간 것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에 어느 누가 그런 양심을 선택할까. 내가 애국자가 아닌데도 내 마음 한쪽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다.



오늘 출근을 했어도 도대체 일이 손에 안 잡힌다. 학생들을 하나씩 이야기 해봐도 모두가 정리된 것이 없다. 어디서부터인가 뭐가 비뚤어져 있는 느낌.. 내 안의 또 다른 하나는 나를 자꾸 무너뜨린다. 그래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넌 무엇을 했지? 아침회의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벌써 지키지 못한다. 그래 네가 아무리 애써도 그것이 그냥 메아리일 뿐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는 거야.. 논문을 아무리 고쳐와도 늘 그 자리이다. 여전히 논리의 모순, 오자 투성이..... 그래 모든 것이 늘 원점이지...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고칠 수 없는 것은 늘 그대로이지... 다람쥐 채바뀌처럼.... 늘 그렇게 한 자리에 있지... 그게 우리 인생 아닌가... 넌 절대로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을거야... 네가 예수가 아니잖아..... 그러한 노력은 헛수고야... 그래 그룹미팅도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래 그것은 너만 원하는 거지 아무도 신경 안 쓰잖아... 모두들 너에게 등을 돌리고 너만 피해 다니잖아. 아무도 너하고 이야기하는 것 원치 않잖아. 넌 늘 아이들보면 짜증부터 내고 그들도 이젠 그런 네가 싫은거지... 인상만 쓰고 화만 내고 잔소리만 해대는 널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니....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운동을 갔다. 러닝머신을 걸으며 밖을 보니 성대역에 기차가 무수히 지나간다. 전철, 화물차, 새마을호, 무궁화호, 끊임없이 지나간다. 그것도 아주 줄지다시피 달려간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주 전철이 지나는데도 끊임없이 오고 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중 만약 한 대라도 중간에 가지 못하고 멈추면? 혹은 앞차가 출발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가면? 그야말로 모든 이런 일들이 순간 저지될 것이다. 역의 기차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손발을 맞추어야 한다. 열차가 출발할 수 있도록 신호가 떨어져야 하고 그 신호에 맞추어 기관사는 운전을 해야 한다. 신호를 내기 위해서는 역 앞뒤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또 그러한 신호체계를 잘 갖추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기차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충분한 수리를 해 두어야한다. 이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일하고 있다. 한 사람이 이런 일을 다 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떤 한 사람에게 일이 너무 많이 부과되면 결국은 탈진하거나 결국에는 자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일이 정지된다. 어떤 일이 잘되도록 하려면 우리 사회 개개인이 모두 조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어야 한다.



우리 실험실은 어떨까? 모두가 좋은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자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 각자가 책임진 일들이 저마다 있다. 각 기계도 책임지고 운영하는 자가 있다. 실험실 짱이 있어 전체 실험실 일을 주관하고 있고 혼자 다하기 힘드니까 서로 일을 분담하여 도와주고 있다. 실험실 청결과 안전을 위해 각자가 맡은 부분이 있다. 어느 누구하나 소홀히 하면 전체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한 사람이 게을러지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다름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아무데나 비이커 팽개치고 치우지 않아 쌓이게 되면 실험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그런게 쌓이게 되면 안전사고까지 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주지 않으면 실험실이 원할히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실험실에서 이런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결코 사회에 나가서도 원할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실험실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어느 누구한테 너무 큰 과제가 주어져 있지 않은지? 따지고 보면 많은 사람들은 지금 각자의 문제에서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끝이 보이지 않으면 힘들다. 그 먼 길도 결국 데이터 하나씩 쌓아가야 하는데 너무 멀어 보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재촉하는 소리도 그래서 짜증이다. 재촉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모두 짜증이 늘게 마련이다. 목표로 하고 있는 주제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시간이 너무 짧다... 그래서 피하고도 싶다.... 쉬운 문제로 가고도 싶다... 내가 너무 학생들을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지.... 쉬운 주제도 많이 있는데... 또 샛길로 갈 수도 있는데...



그게 전부일까? 나 스스로 나태한 점은 없는 것일까? 나의 사소한 무신경이 전체 실험실에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해성처럼 네가 원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으면 되는 걸까? 나의 18번 송창식 노래가사가 참으로 절절히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 다 돌아 앉았네



그래 아마도 멀리 고래잡이나 가야할 것 같다

전처럼 모든 마음 다 버리고

훌쩍 이산 저산 이리저리 누비다 보면

내 마음 모두 비워질까

하늘은 여전히 푸른데

내 마음의 파도는 왜 이리 넘실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