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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2009.05.17 15:41:02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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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9.05.17 15:41:02

아침에 중국어 공부가 끝나니 야오 페이가 스승의 날이라고 축하해 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승미한테 공포의 외인구단 만화가 온 것을 보니 스승의 날이 가까이 온 것 같다. 덕분에 명작 만화 소장분이 늘어나고 있다^^ 불의검, 식객, 레드문등... 늘 고맙다. 아이들 키우느라 연구하느라 힘들텐데 늘 잊지 않고 무언가 보내준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살면서 모두들 잊지 않고 산다 해도 바쁜 생활에 다른 사람 챙길 여유가 없으니 안 챙겨도 이해할텐데 잊지 않고 보내주니 아마도 나보고 열심히 살라고 채찍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 일년 중 이날만은 잊고 싶은 날이다. 학생들이 꽃 달아준다고 하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내 나이 50이 지났어도 아직도 이런 것이 껄끄럽다. 아마도 살아온 내 삶이 맘에 들지 않은 탓이리라. 적어도 교육자로서의 내 모습에 성이 차지 않은 것이다. 내가 살아온 최소 절반 이상의 삶은 연구에 매달려 왔다. 그래서 교육자로서의 내 모습은 늘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앞선다. 자랑스러움보다는 부끄럼이 앞선다. 내가 강단에 섰을 때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순간들.... 선생으로서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못질했던 수많은 순간들... 그렇게 내 앞을 떠났던 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아직도 난 학생 대하는 마음이 다 열려있지 않다. 칭찬보다는 채찍이 먼저이다. 그렇게 마음이 넓은 선생이 아닌 것이다.



생각해보면 난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보다 배운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젊은 시절 유학에서 돌아와 강단에 섰을 때 한국의 만화가 그 몇 년 사이 완전히 바뀐 것을 학생들이 추천한 만화를 보고 알았다. 그 때 읽었던 주옥같은 만화 중 불의 검이 최고다. 그것을 추천했던 사람이 허박사였던가. 몇 번을 읽어도 마음이 저려온다. 헝그리 베스트 파이브 역시 마음에 오래 남는 작품이다. 슬램덩크 역시 순수한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만화이다.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게으름을 피우려는 내 마음을 반성하게 한다. 만화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내가 언제든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술을 마시지 못했을 때 레미 마틴 스카치 위스키의 향기를 느끼게 해 준 것도 또한 승미일 것이다. 어느 스탠드 바에 처음가서 마신 그 맛은 그보다 더 좋은 술을 마시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처음의 경험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날 교수회의를 하고 나온 후 화를 참을 수 없어 애꿎은 정박사의 어깨만 두들겨 팼던 기억은 정박사에게도 나에게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나온 나의 삶을 보면 나의 생활은 실험실이 전부라 해도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자상하지 못한 마음 때문에 여학생들은 가끔은 눈물로 나한테 대들었다. 그렇게 부딪히는 사람은 그렇게라도 풀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결국 실험실을 떠났다. 남학생들은 그렇게라도 풀지 못하면 결국 떠나버린다. 나의 삶의 방식이 그들과는 맞지 않은 것이리라... 아마도 나의 위선을 본 것일수도 있고... 때로는 모질게 마음먹지만 이들 역시 모두 내 인생에서 늘 선배들이다. 그들은 나를 반성하게 한다. 내가 아직도 주례를 서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내 생활은 허점 투성이다.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생활도 빵점이다. 성격도 원만하지 못하다. 그래서 늘 학생들과 부딪히는 것 같다. 성격이 강하지 못한 학생들은 이런 나의 성격을 버티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난 투쟁한다. 포기하기 힘들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미움과 사랑이 동시에 있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뜨거움이 있다. 아직도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랑스러워 보이고 또 부족한 것이 보여 채근하게 된다. 내 이런 격정 속에서 상처받은 학생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그래도 난 포기 못 할 것이다. 비록 내가 상처 주고 상처받는 한이 있어도 나는 이들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게 부딪히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내 삶의 가치는 내가 판단하지 못한다. 비록 내가 지금 사람들 앞에서 자신있게 나를 내 놓을 수 없지만 죽는 순간까지 열심히 사는 것이 나한테 주어진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그저께 회의가 끝나고 술집에 간 이유는 스승의 날 학생들을 피하고 싶기도 했었다. 술집에까지 찾아온 학생들을 보고 그렇게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나의 위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도 학생들과 열심히 부딪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까지 머리가 아파 고생이지만 사람은 그리 어리석은 것이다. 몸으로 겪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