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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2009.03.09 09:08:06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5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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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9.03.09 09:08:06


저녁 9시인 것을 보니 벌써 8시간 정도를 달렸다. 아직도 3시간은 더 가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고 거기에서도 다른 비행기를 타야 핼싱키에 도착한다. 출발할 때의 배 아픔도, 두통도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어제 저녁 라면 먹은 것이 탈 난 것 같다. 이제 내 몸도 정말 옛날 몸이 아닌 것 같다. 라면 먹고 탈이 날 정도이니... 아마도 같이 먹었던 생굴이 문제였나 보다. 2주일동안 일정이 빠듯하다. 핼싱키에 강의하러 가는 것은 핼싱키 대학교수가 wcu에 참여 가능한 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아마 그 쪽에서도 큰 그룹을 갖고 있으니 힘들겠지만 공동연구라는 이득과 유럽에서의 여유가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 파리에서도 이번에는 결론을 내야한다. 아마도 둘 다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스위스 두 사람은 더욱 어렵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이번 일을 통해 나도 대범해지는 연습을 한 것 같다. 아직도 작은 일에 마음이 급해지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만 오히려 큰일에 더 침착해지는 것은 나이가 든 탓이리라.
이번 여행은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wcu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야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확신이 없다. 그룹의 크기를 줄이는 것은 아마 맞는 생각인 것 같다. 학교에서는 내가 wcu에 대해 고민하고 시간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지원도 응원도 없다. 나의 이러한 노력이 학교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어려운 것은 내가 이렇게 학교에 기여하는 것이 나 개인으로 이익이 되는 것인지 구체적인 확신이 없다. 과연 나의 연구를 희생하면서까지 목숨 걸고 추진해야 하는 일인지 확신이 없다. 나의 명예가 올라가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나의 학자로서의 자존심은 뭉개질 때로 뭉개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할까... 학생들에게도 좋은 일이 될까... 잘못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크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때로는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희망도 있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 중의 하나는 폐쇄성이다. 우리 사회는 외국 사람들에게 친절하기도 하지만 심할 정도로 배타적인 이중성도 갖고 있다. 농촌에 와서 사는 외국 여성들이 받는 피해는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대학 사회가 갖는 폐쇄성도 대학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정부가 노벨상을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대학 연구 분야에서의 개방성을 주장하지 못한다. 우리 생각을 열지 못하고 학문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글로벌화가 갖는 경제적인 문제는 이미 잘 들어나고 있지만 학문에서의 글로벌화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외국인들이 섞여 들어와서 자유롭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 미국이 학문적으로 강한 이유는 전 세계에서 미국에 유능한 인재가 모이기 때문이다. 아니 실제로 유능한 인재가 모여서라기 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창의성에 그 강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wcu가 추진 경위나 절차에 있어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기회가 또 다시 없다. 언제 우리가 대학에서 외국인을 채용하려 고민한번 제대로 했을까. 이런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아직도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갖는 절망의 한계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절차를 불평하고 지원이 부족하다고 탓만 하고 있는 것이 맞는 태도일까. 잘못된 정부의 제도가 있으면 과감히 부딪혀 고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아직 우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운영에 있어서 제도가 문제가 있으면 합리적인 제도가 갖추어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드는 노력은 이제까지 내가 연구에서 해 온 노력보다 더 많아야 할 지 모른다. 따라서 개인적인 연구 측면에서 보면 손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면은 우리 과학사회를 국제 과학사회에 알리고 거꾸로 국제과학사회를 우리 과학사회로 끌어들이는 좋은 기회가 된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기회로 삼아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연구에서도 서로를 열고 토의할 공간과 기회를 제공한다면.... 늘 외국에 가서 무엇인가를 얻어왔던 우리에게 이것은 또 다른 기회 아닌가. 여기서 이루어지는 교육, 연구, 열린 분위기, 전통은 이제 모두 그대로 우리 것이 되고 우리 학생들에게 전수된다. 늘 열린 교육을 꿈꿔왔던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노벨상 수상자가 언제 한국의 교육과 연구를 위해 생각해 봤을까. 그들 또한 우리의 role model이 되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학생들이 과학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떠들어 댈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한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가 문제가 아니고 어쩌면 우리사회 발전에 하나의 전기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이 과거 도꾸가와 이에야스 때부터 외국 문물을 받아들인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앞서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에야스는 그 때 자기의 그러한 노력이 일본을 지금까지 부강하게 만들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어떤 일이든 동전의 양면이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고 부정적으로 보면 한없이 부정적으로 변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태도에서 희망은 없다. 학생들에게 아무리 열심히 살라고 말해도, 그러기 위해서 습관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나오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해도, 학생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 긍정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난 희망을 본다. 이 프로그램이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냐 작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한테 달려있는 것이다. 연구적인 측면에서도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는 희망을 선택할 것이다. 비록 지금 힘들지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시도인 것이다. 내가 과연 얼마나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나의 건강이 얼마나 허락될 수 있을지 난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시간이 허락될 때까지 열심히 뛰지 않으면 안 된다. 히데요시가 그렇게 죽을 때까지 달렸던 것처럼...., 그래서 이번 여행을 좀 더 가볍게 생각하자. 막히면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 결국은 이런 노력을 언제가 정부당국도 알아줄 것이다. 임한조 교수님 말씀처럼 길이 있을 것이다. 나의 노력을 누군가는 인정해 줄 것이다. 북극의 오로라를 보고 나의 소망을 기원해보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지개를 통해 희망을 보여준 것처럼 난 오로라를 보며 희망을 꿈꾸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