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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 <2009.01.20 16:02:15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9
  • 조회수12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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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9.01.20 16:02:15


아파트에서 나오면 농협 앞에 신호등이 하나 있다. 전에는 노란불 깜박이로 모두 눈치보고 갔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신호등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신호등 시간이 짧아서 불편을 못 느꼈는데 얼마 전부터 신호등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아침에 출근 길에 대기하는 차량 중에 신호등을 무시하고 그냥 눈치보고 지나가는 차량들이 많아졌다. 출근 시간이 늦어서 일 것이다. 대기 시간의 최적화가 어려운 것이다. 규칙이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는데 중요하지만 규칙의 제약이 너무 심하면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규칙을 안 지키게 된다. 이런 경우 규칙을 안 지킨 사람이 잘못일까 아니면 그렇게 불편한 규칙을 만든 사람이 잘못일까...
이 대답은 쉽지 않다. 사람이 규칙을 안 지키는 이유가 더 중요할 것이다. 만약 규칙을 지키지 않은 이유가 개인의 게으름, 무능력에 있다면 아마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 더 클 것이다. 사실 규칙을 만들 때 이런 인간의 약점까지 고려해 만든다면 더 없이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규칙을 만드는 사람도 보통 사람인지라 때로는 불편한 규칙도 나온다.

삼국지에 보면 오나라 주유라는 장수가 있다. 주유는 싸우기보다는 평화와 안정을 원하지만 그 시대의 춘추전국시대에는 안 싸우고 살아남을 나라가 없다. 그래서 그는 군대를 아주 철저하게 훈련시킨다. 그러한 와중에도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는 현자이기도 했다. 한번은 촌 동네의 한 노인네가 와서 자기 집의 황소를 훈련 중인 병사가 잡아갔다고 그 병사를 찾아서 처벌하도록 호소했다. 평소에 백성들을 잘 보살피는 그로서는 규칙을 어겨 그런 일을 한 병사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훈련 중인 병사를 모이게 하고 그 범인을 색출하려고 했다. 모든 병사들이 이 일에 분개하여 범인을 색출하여 처벌하라고 소리쳤다. 촌노가 사는 동네는 진흙 밭으로 싸여 있으니 당연히 발에 진흙이 많이 묻은 자가 범인일 것이라고 추정하여 휘하 장수가 발이 더러운 자를 색출하려고 했다. 이 일을 저지른 범인들은 얼굴이 노래졌다. 걸리면 사형감이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본 주유는 곧 모든 명사들에게 진흙 밭을 한 바뀌 돌고 오도록 명령했다. 그러니 범인 색출이 어려워졌고 대신 주유는 노인네에게 크게 사과하고 새로운 소를 노인에게 주어 돌려보냈다.

이 사건에서 주유의 인물됨을 잘 알 수 있다. 분명히 소를 훔친 자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주유는 처벌하기에 앞서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더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사실 병사들이 배부르게 먹고 훈련하면 아마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훈련하는 병사들은 늘 배가 고프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벌을 받는 줄 알면서도 소를 훔쳤을 것이다. 주유는 아마 이러한 사실을 눈치채고 병사를 벌하기 보다는 그 병사를 살려주고 대신 병사 스스로 과오를 뉘우치도록 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의 처우는 촌노에게 손해 배상을 해 주는데에 그치지 않고 병사들에게는 자기 대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들을 위해 준다는 믿음을 심어주었고 그의 결과는 당연히 병사들 간의 신뢰와 상호믿음으로 이어지는 군대의 사기였다. 만약 단순히 범인을 색출하여 처벌했으면 결국 부하를 잃게 되고 사기를 이끌어내는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덕장의 기지가 발휘된 순간이었다.

이러한 주유의 결정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남겨준다. 마치 솔로몬의 지혜처럼. 요즈음은 규칙과 법의 홍수다. 어디를 가도 우리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들이 많다. 가끔은 왜 이런 규칙을 만들어야 할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 실험실도 이런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도 해 본다. 사람이 많으니 규칙도 많아지고 때로 불편함이 있다. 모두 서로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쓰면 이런 불필요한 규칙이 다 필요 없어지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포용하려는 우리의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모두 같지 않으니까...

내가 젊을 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일부 학생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학점 나쁜 것을 변명하고 학점을 올려 달라고 할 때 가끔은 아마도 주유의 심정으로 학점을 준 경우가 있었고 그런 경우 다음 학기 학점을 잘 얻어 가져오도록 약속하고 돌려보냈지만 아무도 다음 학기에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물론 열 명한테 속고 한 사람이라도 약속을 지키면 교육 효과가 있을거라고 자위하지만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오는 것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일을 가지고 속지 않으려고 단호히 대처하지만 과연 그것만이 능사일까.... 만의 하나 있을만한 그 가능성에 대해 나는 마음을 덮어두는 것은 아닌지... 세상을 구하는 데는 그 하나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실험실에서 적응 못하고 나간 많은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항상 마음이 아프다.... 그들도 잘할 가능성은 늘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