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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준비의 차이 <2008.12.02 09:32:08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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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12.02 09:32:08


이제는 여기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는 것 같다. 어제는 한달 체육관 회원권을 끊어 처음으로 운동했다. 모처럼 내 몸이 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잠자는 것이 휠씬 편해졌다. 아침에 먹는 음식도 이제 익숙해졌다. 짠 김치도 그런대로 괜찮은 느낌이 든다. 라면도 하나 끓여 먹었다. 혼자 있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은 좋은 일 나쁜 일이 많이 교차된다. WCU가 되어서 좋고(?) 대유과제가 되어서 좋다. 연구비 걱정이 당분간 줄었다. 당분간 일에 집중하여 좋은 결과를 낼 때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많았다. 감사할 일이다. 나쁜 것은 현기 논문이 안 되어 속상하다. 세상 일에는 반드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겹쳐진다. 이제는 좋다고 마냥 즐겁지 않고 나쁜 일이 일어나는 일에 경계하고 대비하는 습성이 붙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 상하는 일에도 포기하는 습관이 붙었다. 좋은 일이다. 전에는 쉽지 않았던 일이다. 내 한계를 아는 것이다. 요즘 여기서의 생활은 무척 규칙적이다. 아침에 6시 40분에 일어나 학교는 8시 전에 간다. 오전 오후 한번씩 여기 학생들과 면담이 있다. 각자의 연구주제를 설명하고 자문을 구한다. 나도 배우는 기회이기도 해서 좋은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책 쓰는 진도가 늦어진다. 밤의 시간 활용이 중요하다. 한국과 마찬가지 상황이지만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 조금은 나은 편이다.
거의 매일 두 그룹과 만나다보니 만나는 사람마다의 특성이 모두 다른 것을 느낀다. 어떤 학생들은 정말 똑똑하다. 자기가 말해야 할 것을 정확히 준비해와 말을 한다. 자기가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 자기의 한계가 어디인지 정확히 말한다. 똑똑하다는 표현보다는 준비성이 많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자기가 이 일에 대해 논문을 준비하는 것처럼 실험을 준비하고 이제까지 진행되어 온 일의 장단점을 아는 것 자기 일의 방향을 정하는데 중요하고 또 논문을 준비하는데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는 모두 영어를 잘 못하지만 각자 ppt file을 만들어 와 발표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별 문제가 없었다. 아주 작은 영어만으로도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학생들은 그런 훈련이 되지 않았고 대신 그룹으로 와서 토의를 했다. 그러다보니 각양각색이다.
학생들한테 몇 가지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첫째는 영어를 못하지만 프린트 물을 잘 준비해 와 자기 표현을 명료히 하는 사람이다. 이 방법은 ppt와 같이 영어를 잘하는 것 못하는 것과 별로 관련이 없다. 영어를 못해도 준비물로 거의 모든 말을 대신하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을 잘하고 나한테서 많은 충고를 얻어간 사람들이다. 이 경우는 모두 정중히 고맙다고 말하며 돌아간다. 두 번째는 영어를 잘 안다고 준비를 잘 안 해 온 사람들이다. 이런 경우 자기 문제를 설명하는데 시간을 다 소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토의할 기회가 줄어든다. 결국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사람들이다. 그러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기회는 준비되어 있는자만 얻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세 번째의 경우는 영어도 못하고 자료도 준비해 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경우는 오자마자 자기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고 말에 두서가 없다. 결국은 무슨 말인지 알기 위해 질문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결국 힘만 빼고 나간다. 서로 피곤하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과학자로서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자기가 영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또 논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준비를 해서 이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네 번째는 영어를 할 줄 알더라도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 오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충분히 대화하고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모두 얻어서 간다. 가장 나쁜 경우는 두 번째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머리가 좋다고 자기를 믿고 열심히 안하는 사람들이어서 결과가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머리가 좋다 천재다 논리적이다 능력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자기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 결국 그것이 위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적어도 내 경험으로 이들은 상관관계가 있다. 단순히 생각은 누구든지 한다. 준비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이 든다. 그런 투자없이 인생에서 얻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내 학생들이 이런 사람이 되도록 나도 더욱 조심해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모두 나의 좋은 교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