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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2008.11.15 12:13:32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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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11.15 12:13:32

이번 주는 정말 뻐근한 스케줄이었다. 토요일부터 물리학과 히로시마 대학과의 미팅, 일요일부터 부산에서의 한일 심포지움, 갑작스런 작은 아버지의 운명, 전주에서의 탄소페스티벌, 목,금요일의 디디 방문... 몸이 여러 개 있어도 못 버틸 한주였다. 덕분에 감기까지 얻어 내일 출장이 걱정이다. 그래도 두통이 심하지 않아 잘 버틴 한주였다. 갑작스런 작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모처럼 아버지 오형제 사촌들이 다 모였다. 평소에 모두 바빠 만나지 못한 동생들이다. 그래서 장례식이 필요한가보다.



죽음은 정말 무자비한 이별이다. 사정이 없다. 예고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보지 못하는 이별이다. 육체적인 이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고 듣고 말하고 그러면서 오감으로 서로를 느끼는 우리 인간은 이런 이별에 그렇지 자유롭지 못하다. 아버지를 떠나 보낼 때 입관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차디찬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그리워서도 아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말씀이 없으셔서 아버지와 그리 따스한 정이 쌓였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차가운 손조차도 그 무뚝뚝한 얼굴조차 다시는 느끼지도, 볼 수도 없다는 현실이 나를 너무 가슴 아프게 했다. 죽음이란 것이 그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렇게 보내고 평소에 왜 아버지한테 따스한 말 한마디, 따스한 눈길 한번 못 주었을까 하고 후회했지만 그것은 소용없는 것이었다. 특별히 불편한 것은 없었지만 건강했던 아버지가 걷기가 힘들어 나가기도 싫어하시고 내가 가면 방에 앉아 멍하게 쳐다보시던 아버지한테 왜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을까 지금도 후회된다. 살면서 후회되는 것이 많겠지만 아마 부모에게는 평생 빚일 것이다. 작은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지난 구정 찾아가 식사도 같이하고 홍삼도 드리고 해서 그나마 아쉬움이 쪼끔은 덜하다. 이제는 둘 밖에 남지 않는 두 작은 아버지한테 그런 마음이 남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몇 년전 선배 교수님 정년퇴임식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분은 활동을 많이 하시던 분이셨지만 정직하시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사시던 분이었다. 아끼는 후배 교수를 키워주시려 무던 애를 쓰셨지만 결국은 그 교수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해하고 서로 서먹하게 지내오셨는데 퇴임식 하시기 전에 그 젊은 교수에게 사과하셨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 젊은 교수가 사과를 하는 것이 오히려 도리였지만 세상이 그렇게 거꾸로 가고 있다. 모두 마음의 빚이 있으면 그것이 늘 마음에 쓰인다. 작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내가 지금 죽으면 무엇이 제일 마음에 쓰일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지금 죽으면 내 마음에 후회로 남을 부분들일 것이다. 의외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많다. 평소에 살면서 내 마음이 모진 탓일 것이다. 이는 곧바로 내가 잘 살고 있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가끔은 여행하면서 내가 지금 죽더라도 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농담을 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참으로 후회할 것이 많다. 내 삶의 대부분이 실험실에서 이루어졌으니 사실 실험실에서 잘못한 것이 제일 많은 것이다...

후~ 그런 것들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 죽음이 아니던가.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한 순간순간 정직하게 후회스럽지 않게 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윤동주가 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는지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