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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과 그리움 <2008.11.04 00:30:25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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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11.04 00:30:25


일본에 가기 전에는 날씨도 더웠고 교내의 은행나무와 낙우송이 푸르름을 자랑했는데 2주도 안되어서 돌아온 교정의 분위기는 180 도 달라져 있었다. 날씨는 쌀쌀해졌고 노랗게 은행잎이 변하고 낙우송의 절반은 그 화려한 붉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세월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월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지만 속절없이 나이들게 만드는 악동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을의 쓸쓸함은 불쑥 찾아온 것이다.



또 일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몇 년이 흐른 것처럼... 쓸쓸함 뒤에 숨어있는 이 단절감은 또 무엇일까. 내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보는 실험실 식구들의 반가움 웃음도 있지만 또 소외된 모습들이 있다. 늘 존재하는 이 단절감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과학자들에게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명석한 두뇌? 창의성? 기억력? 성실성? 인내력? 이 모든 것 물론 중요한 요소들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과학은 어찌보면 대화의 산물이다. 그 대화가 기록되고 기록된 것들이 보존되고 다음 세대들이 그 기록을 보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더하고 개선한 것을 더한다. 기록된 것을 통해 배우는 것은 정확하지만 속도가 느리다. 그래도 이것보다 다 확실한 것은 없다. 그래서 논문을 쓴다. 그러나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학회라는 것을 가진다. 학회를 통해 더 빠른 속도로 정보를 교환한다. 학회는 기록보다는 대화를 통해 서로 배운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은 더욱 대화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런데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과학도는 공부하는 내용에서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늘 인문학도에게 논리에서 뒤진다. 실험실내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 사람이 많다보니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갖는 것이 어렵다. 대화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시간을 내야하고 서로 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은 더욱 적응이 어렵다. 이것 역시 내가 안고 있는 모순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을 받지 말아야 하는데도 들어오려는 사람이 늘 있다. 다 막을 수도 없다.



내 마음의 단절감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열 손가락 중 어느 한 손가락 소중하지 않은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실험실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한데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서부터인가 언제부터인가 막힌 대화의 창을 어떻게 열어야할지 모르겠다. 고민하다가도 바쁜 일상에 쫓겨 일에 묻혀 버린다. 늘 사람들에 쌓여 있으면서도 답답한 마음, 외로운 마음들의 근원은 단순히 이 가을의 쓸쓸함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쓸쓸함 뒤에는 외로움이 자리 잡고 그 자리를 애써 그리움이라는 이름이 들어오려 한다. 내 삶의 뒤안 한 곁에서 나에게 위로가 된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친구들, 그들이 들어온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냇가에 흐르는 붉은 낙엽을 안주삼아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나의 그리운 사람들을 찾아가 볼거나. 그렇게 나의 이 빈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