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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진다는 것 <2008.10.29 14:10:23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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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10.29 14:10:23

금요일에는 마지막 날이라고 모두 모여서 이태리 식당에 갔다. 생각보다 음식이 맛있었다. 코스라고 하지만 일본식이다. 야채가 먼저 나오고 나중에는 스파게티다. 노리는 또 일이 있다고 사무실에 들어간단다. 내가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일이 있으면 한다..... 그동안 나를 돌보아준 친구들도 많이 있어 몇 명과 2차를 갔다. 바 스타일의 일본인 술집이다. 아줌마 한사람이 바텐더이고 음식요리까지 다 한다. 음식은 참 맛이 있고 정갈스럽다. 아줌마가 째즈를 즐긴다. 나중에는 정종 가장 비싼 가격을 보고 모두 놀라는데 갑자기 아줌마가 남아있는 술을 주면서 서비스라고 한다. 아마 내가 일본말을 못하니 봐 준 것 같다. 모두들 조금씩 맛을 봤는데 정말 개운한 맛, 단순한 맛, 시원한 등 일본의 맛이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한 병에 몇 십만원이니 보통은 먹어볼 수 없는 술이니 아줌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중에 나오는데 아줌마가 영어로 인사한다. 아마 다음에 가면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이다.


다음날은 토요일 오전에는 밀린 잠을 자고 오후에는 사카에라는 변화가에 갔다. 나고야 역을 가서 가는 길을 확인하고 사카에에 갔더니 규모가 동경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하긴 인구 250만이니 그럴만도 하다. 도요타 자동차 센터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대학이 많이 발전하는가 보다. 하기야 나고야는 내가 좋아하는 오다 노부나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여기 와서 안 이야기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스, 도꾸가와 이에야스 모두의 고향이기도 하다. 나고야성은 이에야스가 지은 성인데 전쟁 중 모두 불 타 자리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복원한 성이다. 노리가 바쁜 중에도 이 모든 곳에 같이 가 주었다. 신세를 많이 진 느낌이다. 한국에 오면 나도 같이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분위기는 우리와 많이 유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보다 훨씬 자유분망하면서 일에 대해서는 모두 진지하다. 실험실 학생들의 태도는 우리보다 훨씬 진지하다. 거리에 나가면 다양하다. 정신없이 보이는 놈, 화려한 여자들, 화려한 옷차림, 그런가하면 공원에 가보니 시내 봉사단체가 다 나와 바자회를 하고 있다. 다운타운 한 가운데 길가에서는 돌아가면서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가내야마 역에 가보니 역 앞에서 댄스경연대회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를 모두 그렇게 즐기고 있었다. 나고야 항에 가 보니 모든게 너무 잘 정돈되어있다. 우리나라 항구는 어디를 가도 지저분한데 여긴 그런 느낌이 없다. 모든 것이 돈이 많이 투자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것들이 자산이다.



오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남쪽 끝인 큐슈에 왔다. 신간선으로 3시간 반이나 걸리니 그리고 요금도 40만원이나 되니 장난이 아니다. 그냥 나고야에서 하루 더 쉴 수도 있었지만 일본의 촌을 느끼고 싶어서 힘들지만 움직이기로 했다. 가방이 3개라 쉽지 않았다. 하카타에 도착하니 비서가 가르쳐 준대로 호텔을 찾으려 했지만 3개의 가방으로 쉽지 않아 택시를 탔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역의 반대 방향으로 가서 못 찾은 것이었다. 비서가 다른 것은 모두 잘 가르쳐주었는데 역 방향은 모른 것이었다. 하긴 가보지 않으면 느낌이 없을 것이다. 짐을 풀고 바로 호텔 프론트에 물어봐 온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타는 곳이 아주 조직적으로 잘 되어 있었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명절이라도 붐빌 염려가 없을 것이다. 목적지는 남수관이고 시간은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왕복에 탕 값까지 미리 구입하면 2000엔으로 500엔 정도 싸다. 우리하고 비슷한 패키지 개념이다. 남수관은 지역 이름이다.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아주 조용한 곳이다. 찾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길은 차가 두 대 겨우 다닐 정도로 좁다. 그런데 이런 촌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아주 잘 정돈되어 있다. 일본이 왜 잘 사는지 증명해주는 부분이다. 신간선을 타고 오면서 줄곳 느꼈지만 어느 한 곳 정돈이 안 된 곳이 없다. 우린 모두 농촌을 떠나는데 여긴 그런 것 같지 않다. 온천은 생각보다 작은 곳이었다. 우리나라 탕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타이 모두 바깥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틀리다. 온도계를 보니 15 C인데 전혀 춥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에도 이런 탕을 즐기는 것을 보면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가족 3대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꼬맹이와 아버지 할아버지, 보기에 좋았다. 아래는 따뜻하고 위는 시원한 느낌이 너무 좋다. 탕 안에 앉아있으니 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일본인들은 이런 느낌을 즐길 것이다. 전장에서 돌아온 전사가 탕안에 앉아서 쉬며 갖는 느낌은 어느 것일까...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안도감은 아래의 따뜻함 일 것이고 아직도 전쟁에서의 긴장감은 여전히 머리의 서늘함일 것이다. 아마 언젠가 전장에서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비장한 느낌도 같이 든다. 그 옛날 전사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할복이 가능한 일본인들의 마음... 그 할복의 마음이 이런 느낌이라면 즐겁게 할 것이다... 비굴함보다는 나은 선택일 것이니까... 몸무게를 재어보니 최근 몇 년동안의 최소기록이다! 일본음식에 적응한 결과일 것이다! 나오는 길에 음식점에 들러 음식을 시켰다. 그 음식점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을 시켰는데 그림으로 보면 우리나라 돌솥밥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냥 단순한 밥에 강가에서 잡은 간장게장 하나 넣고 끊인 밥이었다. 찬이라고는 다깡, 그리고 이름모를 야채... 그야말로 밥 맛의 순수한 맛을 즐기라는 것과 같았다. 밥은 맛있었다. 점심을 건너 뛴 탓도 있으리라. 나오는 길에 길가에서 찹쌀떡 하나를 샀다. 오려는데 아저씨가 잡아 세우더니 뭐라고 하시는데 프레센토라는 말이 들려 고개를 끄덖였더니 빈대떡 하나를 주신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씨다. 시골이라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내려오면서 먹는데 단순한 맛이 맛있다.



내일이면 이제 돌아간다. 그 사이 나는 어느새 일본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아침이면 나또가 기다려지고 입안에 감치는 그 맛이 느껴진다. 나고야 지방의 강한 미소국은 우리 된장국과 비슷하다. 아무리 먹어도 그리 배부르게 먹지 않는다. 양이 우리에 비해 현저히 다르다. 여기 사람들이 뚱뚱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는가 보다. 93년 처음에 일본에 왔을 때 이렇게 맛없는 음식을 어떻게 먹을까하고 생각했었다. 이제는이 음식이 맛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곧 변화를 의미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또 나이가 들면서 마음으로 오는 느낌이 더욱 많아진다. 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다.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도 우리나라 산새가 눈에 들어오지 않더니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산새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다른 나라 어느 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다보니 우리나라 여자들이 어느 나라 여자보다 아름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연구에서도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가가 눈에 들어오고 어떻게 해야 발전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선택하고 올바르게 선택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한 변화에 적응하면서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전에 나의 할머니는 라디오를 들으시면서 어떻게 사람이 그 작은 곳에 들어갈 수 있냐고 나한테 물어 온 적이 있었다. 세상에 사는 것이 기적이고 적응하는 것이 기적이다. 우리의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인류는 생명이 존속되는 한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살고 있다. 일본에 있으면서 이제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졌다. 혼자 식사도 할 수 있고 혼자 이곳 저곳 다닌다. 그리 외롭지도 않다. 아마 중국 생활도 잘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난 너무나 혼자있는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돌아가면 혼자 식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나이에 내게 건강이 허락된 것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신이 주는 선물일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두통은 자만하지 말라는 신의 경고이기도 하고 나에게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아 게으름 부리지 말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바꾸는 한 이미 모든 것이 가능하다.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가 넘어야 할 산인 것이다. 지금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언젠가는 모두 가능해진다는 것을 인류는 역사를 통해서 진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늘 신이 나와 함께 하기를 빈다.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도 내 마음의 불가능을 늘 없애려고 노력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