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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램프 지니 <2008.10.03 17:43:33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5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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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10.03 17:43:33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이야기에 재미있는 설정이 있다. 즉 요술램프 속에 지니라는 마술사가 있어 요술 램프만 문지르면 바깥세상으로 나와 주인의 소원을 세 가지 들어준다. 지니는 원래 뛰어난 마술사였지만 세상 모든 것을 갖기를 원하는 바람에 요술램프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지니의 캐랙터는 그런 지니의 본성과는 달리 쾌활하고 주인을 잘 이해하고 남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다정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데 그 만능의 지니가 못하는 것이 딱 한가지 있다. 주인이 그 소원으로 사랑을 원하면 그 소원은 들어줄 수가 없다. 즉 사람의 마음은 못 사 준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물질만능주의 사회다. 그래서 주인이 부를 원하면 얼마든지 들어준다. 이는 사실 제로섬 경제법칙에 위배된다. 지니가 소원을 들어주어 주인이 부자되면 누군가 마이너스일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도 사랑하는 마음만은 못 산다는 이야기는 우리 인간 세상의 진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된다. 지니의 캐랙터는 특이하다. 본인은 엄청남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그 능력을 쓸 수 없다. 자신은 램프 속에 갇혀 있는 가상적인 존재이니 필요한 것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 오로지 주인을 위해서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니는 늘 주인이 자신을 불러주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주인을 위해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그것 때문에 행복해한다. 나쁜 주인을 만나면 지니의 인생은 더 난감해진다. 그래도 갇혀있는 것보다 나으니 지니는 열심히 주인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그 때만 현실세게에 나와 주인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요술램프가 나쁜 마술사에게 넘어간 뒤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이 게임 뒤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지니의 입장에서는 주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주인은 늘 바뀔 수 있으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바꿔 주는 요구는 들어주지 않아야 한다. 사람사회에 사는 규칙이 있는 것처럼 가상세계에 살고 있는 지니도 규칙이 있는 것이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이들에게 게임의 규칙이 없는 것 같다. 약속이라는 것은 사람살이에 굉장히 중요하다.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도 한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법이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우리 사회는 믿음과 정직이 무너지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또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 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조차도... 이런 것들이 우리가 서로 말하지 않지만 지켜야 할 의무인 것이다. 둘째 소원이 세 가지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물질만능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마음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견제, 절제의 의미가 담겨 있다. 또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은 주인의 입장에서 지니처럼 강력한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신과 우리 인간의 한계를 설정해 놓은 것 같다. 나쁜 마술사가 지니보다도 더 강한, 세상에서 제일 강한 자가 되기를 소원했을 때 그것이 이루어졌지만 지니 대신 램프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마치 내가 신이 되기를 원하면 안 되는 것처럼...
난 지니나 나쁜 마술사 두 사람의 캐랙터가 흥미있다. 두 사람은 아마 그 분야에서 세상의 최고가 되기를 원했던 자들이다. 말하자면 프로들이다. 동기야 어쨌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같은 것 같다. 그들은 최고의 경지에까지 갔고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창조자의 선까지 가고 싶었고 거기에서 제동이 걸린 자들이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하는 우리 과학자들도 아마 지니와 같은 입장일 것이다. 늘 최고가 되고 싶고 자기가 이룬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발전하고 싶어한다. 원자폭탄을 처음 만든 과학자들이 이 폭탄을 만들어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자기들이 이론으로만 혹은 실험실에서만 만들어 낸 작품에 대한 시험결과를 눈으로 더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클 것이다. 왜 지니가 그 선을 몰랐겠는가. 지니는 선한 캐랙터가 잇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런 한계를 아는 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 속에 최고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해 결국 선을 넘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빠져나오는 롯과 롯의 아내 중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돌아보는 바람에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 롯은 하나님과의 계약에 충실한 사람이라 그냥 나와 탈출할 수 있었지만 롯의 아내는 (성서에서는 믿음이 부족하거나 혹은 과거의 대한 미련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만 뒤돌아본 것이다. 아마 그녀도 자신이 뒤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될 것을 경고 받았을 것이다. 난 그 마음이 우리 인간 본연의 호기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르는 것에 대한 알고자 하는 호기심.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에 대한 호기심. 이 마음이 아마 지니의 넘어야하는 그 마음과 일맥 상통하지 않을까. 이것은 과학자가 원자폭탄을 만드는 마음이었을 것이고 난 이 마음이 비록 신을 상하게 하는 마음일지라도 우리 인간을 발전시키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보고 선택하라면 적어도 난 롯이 아니라 롯의 아내가 되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것이 과학하는 우리를 늘 발전시키는 힘일 것이고 앞으로 인류가 살아남는데 큰 역할을 할 마음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지니도 자비심이 많은 주인을 만나면 해방될 수 있다. 알라딘이 그런 지니의 상황을 이해하고 마지막 소원으로 지니를 해방시켜준다. 주인으로서 일방적으로 부리는 관계를 깨고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인간관계를 설정하여 우리 스스로 갇혀 있는 물질만능주의 사회를 무너트린 것이다. 그런 마음이 지니를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다시 컴백시킨 것이다. 이런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한 그리고 그런 마음이 우리 가슴에 공감으로 남아있는 한 아직도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