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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2008.08.28 21:29:44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6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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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8.28 21:29:44

난 왜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아플까. 오페라 유령의 음악을 늘 들으면서도 들을 때마다 슬퍼진다. 유령의 가슴 아픈 사랑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일생을 숨어서 살면서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 음악을 만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것일까. 그런 두려운 사랑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그 마음이 안타까워서 일까.

요즘 학교 돌아가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WCU라는 프로그램은 어찌보면 모두가 부담스러운 프로그램이다. 정부에서 강제로 외국사람을 교수로 뽑으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많은 돈을 할당해놓았으니 학교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안할 수 없는 처지이다. 그러나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부담이 많은 프로그램이다. 내부에서 잘하는 교수들을 제껴놓고 외국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월급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이 제시하고 내부 교수중에서도 그 중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교수들만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그렇다고 내부 참여교수의 혜택은 거의 없다. 교수의 자존심을 모두 깔아뭉갠 정도를 넘어섰다. 또 참여교수 모두 기존의 학과에서 빠져 나와서 독립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부담 또한 크다. 남아있는 교수들 역시 실력있는 학과 교수들을 모두 이 프로그램에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인 박탈감, 자존심 모두 허락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과의 다른 교수들을 앞세워 이 프로그램을 한사코 반대한다. 난 성대에 온지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사는 동안 어느새 적도 많이 생겼는가 보다, 날 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왜 내가 이런 프로그램을 유치하려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이 프로그램을 유치하려고 한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교수들은 또 아주 미묘한 세력 다툼도 한다. 소속, 공로, 자신의 역할 등... 정작 이 프로그램을 유치하게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사실 우리학교의 능력으로는 이 프로그램을 유치하기가 쉽지 않다. 각 대학교수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우리는 상위 경쟁대학에 비해 너무 많이 쳐진다. 대학의 양적 팽창에 따른 후유증이기도 하다. 질적인 팽창을 가져오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더 세심한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마치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가져오기라도 한 듯 서로 이익다툼을 한다. 어이가 없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유치하기로 스스로 결정하는데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많은 손해가 있다. 당장 외국인중 디디가 참여해야하기 때문에 지금 신청한 grnl 프로그램이 날아 갈 위기에 쳐해 있다. cnrs 현지랩 유치도 불투명해진다. 또 옥주가 걱정하는 것처럼 이런 큰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다른 연구비를 받기가 어려워지고 따라서 그룹의 크기를 축소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이 부분은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우린 지금부터 무엇인가를 연구측면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난 십년이상의 노력이 이제 결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룹 크기를 축소시킬 이유가 하나도 없다. 참으로 어렵다. 이런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 프로그램을 학교를 위해서 유치해야 할까.

사실 대학교가 경쟁위주로만 가는데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 그렇다고 경쟁에서 늘 뒤지게 정책을 펼 수도 없는 것이 대학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난 이런 대학의 입장을 이해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다분히 이런 경쟁을 유발하는 정책이다. 사실 유능한 외국인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전에도 있었으나 대학 재원의 한계로 그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지금은 어느 면에서 보면 외국 교수를 채용할 절호의 기회다. 정부에서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는 것만 빼고는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나쁠 것이 없다. 매년 들어오는 장비비, 오버해드 만으로도 정말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능력있는 외국인 유치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연구네트워크 부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들어난 이유이고 사실 개인적으로 난 총장님이 계시는 한 이 학교를 떠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비록 술자리이기는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난 체질적으로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내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새로운 것은 힘들지만 나를 게으르게 만들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열심히 싸워야 하니까. 아직도 난 건강하고 그렇게 살 자신이 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매너리즘 벽과 싸우면 아 이제는 떠나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총장과의 약속, 대유와의 관계가 나를 망설이게 한다. 더 늦기전에 한번 더 모험하고 싶다. 이제 외국으로 나가 다시 시작하면서 칼을 갈고 싶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유치하면 난 나가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실패하면 아마도 나가는 또 다른 구실을 만드는 것이리라.

그렇게 결정했지만 지난 일주일간 벌어지는 학교 내부 일을 보면 끔찍하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 saint가 무엇이고 자연대 공대가 왜 중요한가. 과 소속이 무엇이 그리 대수일까... 나이든 교수들은 왜 그렇게 젊은 교수들을 압박할까. 그럴만한 권리가 있을까. 그런 행위들이 학교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할까... 내가 왜 이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어야 할까 알 수 없다. 어느 경우는 전에 내가 있던 전북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의욕이 떨어진다.

실험실 보람이가 논문을 쓰다가 몸이 아파 전주에 내려가 수술 받아야 된다고 했을 때 보람이의 슬픈 얼굴이 가슴이 아팠다.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애쓰는 보람이가 안 쓰럽다. 갑상선 때문에 갑자기 병원에 가야되고 또 건강보험이 적절치 않아 합당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야오페이를 보면 가슴이 막힌다. 실험실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은 내쫓긴 윤표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가끔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기 보는 적절한 사람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승미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왜 이리 아픈 사람들이 많을까... 이 많은 아픔이 있는데 생일 챙겨주지 않는다고 속으로 꽁하는 내 마음이 얼마나 창피한지...

그래 이런 것들이 모두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렇다고 기죽고 있을 수만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을... 아픔에도 불구하고 꼿꼿이 일어서는 용기있는 사람들도 많다. 아이 셋 데리고도 용감히 사는 정 박사도 있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당차게 일어서는 허박사도 있다. 요즘 내가 처한 이런 상황은 그들의 어려운 상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치스러운 것들이다. 불평보다는 긍적적인 면을, 아픔 속에서도 한 가닥의 희망을 찾는 하루하루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내 왜 모를까. 요즈음은 마음이 여려져 슬픈 음악만 들어도 가슴이 밀려오고 비오는 소리만 들어도 우울해진다. 내 마음이 약해져 있다. 그렇지만 난 프로인 것을. 나를 채근하는 법을 알고 있다. 주말에는 한번쯤 담금질을 실행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