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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옥잠화 <2008.08.21 19:06:17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6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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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8.21 19:06:17


어제 저녁 평창 휘닉스는 정말 추웠다. 회의가 끝난 후 모두 모여 술을 마셨지만 도저히 마실 기분이 나질 않아 결국 돌아오기로 결정하고 밤늦게 운전하고 수원에 오니 여전히 춥다. 어느새 가을이 찾아온 걸까. 오늘도 마음이 흩어져 일을 할 수가 없다. 마음이 심란하여 자전거를 타고 일월호수를 돌다보니 가을이 왔음을 새삼 느낀다. 비가 많이 오서 그런지 호수에 물이 그득찼다. 잡초는 무성하고 잠자리가 낮게 날고, 잘 익은 포도송이... 호수에 비치는 눈부신 햇살... 모두가 가을이었다. 그렇게 가을은 찾아온 것 같다. 그 가을이 내 마음을 스산하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 사람이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 어느날 내가 스스로 내 속에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끼는 수치심이란... 도망갈 곳도, 도망갈 수도 없다. 그저 시커멓게 타버린 그 가슴속을 망연히 보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때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도망가버리고 싶은데 마치 발가벗고 눈 가리는 식이 될지라도... 그렇다고 시커멓게 타버린 내 가슴이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늘 도망치며 살았다..

살아온 날이 많은 나이지만 지나온 세월을 보면 난 누구하나 제대로 사랑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조차 정말 어떻게 사랑해야 제대로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사랑한다는 말 뒤에는 그저 이기심뿐.... 덕현이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정작 과학은 이해하면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인생인가... 난 사람 사이에서 사는 법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어린애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이 나이에 무엇을 배웠는지... 왜 이리 난 살면서 다른 사람한테 짐 밖에 되지 않는지... 내가 과연 누구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지.. 사랑한다 말하면서 얼마나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지... 사람이란 과연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지 조차 모든 것이 혼돈으로 되어온다. 이기심으로 시커멓게 멍든 내 자신을 보며 도무지 이 마음이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난 세상 밖으로 나와 버린 외톨이가 된 기분이다. 삶의 의욕이 모두 온 몸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눈꺼풀이 무거워 힘들다. 어떻게 나를 일으켜 세울지 모르겠다.

일월호수 한 곁에는 옥잠화 무더기가 자라고 있었다. 옥잠화가 퍼지지 않도록 나무틀을 해놓은 것을 보니 누군가 설치한 것 같다. 옥잠화는 물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아무리 큰 호수라도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비가 많이 와서 호수에 물이 가득 채워졌어도 정화가 필요한 모양이다. 내 마음속에도 그런 옥잠화 한무리를 키울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냄새나는 이 이기심을 조금은 정화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