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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와의 싸움 <2008.08.17 17:59:33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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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8.17 17:59:33


모처럼 일요일 오후는 그야말로 유럽의 전형적인 gloomy Sunday이다. 이런 날은 기분도 우중충하다. 지난 주는 홈컴잉으로 모두 바쁜 한 주였다. 홈컴잉 내내 물이 넘쳐 흐르고 비가 오는 소리는 모처럼 밤새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나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빗소리 들으며 밤새 이야기한 적이 언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바빠 오지는 못했지만 모처럼 보는 반가운 얼굴들은 몇 시간 교통체증 때문에 짜증난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삶에 지친 얼굴들... 그러나 그런 것이 있기에 이렇게 한번씩 만나 래프팅도 하고 운동도 하고 밤새 술 한잔하며 피곤한 마음 푸는 것이 홈컴잉의 또 다른 면일 것이다. 가족들이 많이 와서 이제는 장소가 좁아서는 모두가 즐길 수가 없다. 다음부터는 더 많은 가족이 올 수 있도록 신경써야겠다. 모두들 열심히 사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을 보며 내가 생활을 시작하던 20여년 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개성이 강한 꼬맹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의 세상은 우리와 많이 다를 것이다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나 희망이 보여 좋았다. 적어도 그런 세상은 지금의 획일적인 사회보다는 훨씬 다양한 사회가 될 테니까.. 피곤했던지 부풀어 오른 입술이 영 낫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하다. 내년에는 이 아이들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졸업생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을까 난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있을까... 그런 기대감이 우리를 살만하게 한다.
어제는 집에 돌아와 TV를 이리저리 틀다보니 마침 장미란 역도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역도는 나에게 그리 흥미가 있는 종목은 아니지만 기록 경기라서 흥미가 있었다. 이번 경기는 장미란의 경우 적수가 없었다. 기록을 보니 2위와는 격차가 너무 멀어져 아예 경쟁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주 심각했다. 세계 기록을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의 싸움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금메달 경쟁만을 생각했으면 그냥 그 정도에서 접을 일이었겠지만 본인이 심각한 것을 보니 그 선수가 다시 보였다. 이 선수의 싸움 대상은 단순히 상대 선수가 아니고 자기 자심임을 알 수 있었다.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상대가 있으면 목표가 보이고 따라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비교적 쉽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목표가 불분명하고 때로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 쉽다. 아 이 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 남들은 여기까지도 오지 못했는데 난 그동안 이미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또 끊임없이 오는 유혹은 우리 몸과 마음이다. 우리 몸이 피곤하면 마음을 유혹한다. 그만 쉬라고... 그래도 잘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유혹은 악마의 유혹임을 잘 안다. 장미란은 그런 유혹을 물리친 것이다. 그것이 그 선수의 위대함이다. 젊은 선수지만 정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사실 공부하는 우리도 이런 싸움과 다르지 않다. 공부하는 일은 어찌보면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것도 전력투구하는 에너지이다. 그냥 한눈 팔수가 없다. 공부하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동시에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난 전에 대학교 다닐 때 1학년 때는 직장과 함께 대학을 다녔지만 2학년이 되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사실 직장을 같이 다니게 해 달라고 교수한테 부탁을 했지만 교수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나는 그 다음날로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했다.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며... 그 교수님은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늘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다. 자연과학 공부는 그 만큼 전력투구를 요구한다. 공부량이 많고 또 새로운 것을 찾기에는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 후로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난 여전히 그 당시의 전력투구하는 자세를 기억하고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학생들한테 난 이 부분을 많이 요구한다. 연구에 목숨 걸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 힘들다고... 그러나 이런 일은 사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니까... 때로는 가족의 많은 부분조차도 희생해야 한다. 물론 연구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데 대한 소명의식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본인이 그러한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즐기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 힘들다. 언젠가는 포기해 버린다. 왜냐하면 이것은 죽을 때까지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유혹도 만만치 않다. 강남에 가보라. 수많은 젊은이들이 술집에서 술 마시며 인생을 즐긴다. 넘쳐나는 이 젊은이들을 보면 실험실에서 실험과 씨름하는 내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이런 유혹을 뿌리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런 면에서 보면 이미 실험실에 들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작이 다른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무엇을 남다르게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실험실 생활은 다른 연구자와의 경쟁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이 싸움이 힘들다. 그래서 자주 지친다. 생활에 지기 쉽다. 자기 주위를 늘 정리하여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똑 같이 24시간을 살고 그리고 능력도 비숫하니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생활에서의 효율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휴일을 지내다보면 어느 사이 내 몸이 관성에서 벗어나 쉬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래서 월요일이 무거운 하루가 된다. 이런 하루 하루의 싸움에서 지면 프로로서의 우리의 생명도 쉽게 무너진다. 미래의 나의 모습은 거창한 어떤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보다는 이런 하루하루의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터로 돌아온 내 몸은 쉽게 일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직도 피곤하지만 일요일 날 학교에 나와 내일을 준비하면서 또 마음을 다져 본다. 내일은 모두의 얼굴에서 생기가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게으른 마음을 이기고 이 gloomy sunday를 이기고, 밀려오는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채워 희망으로 가득 찬 또랑또랑한 눈망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