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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2008.08.02 18:39:59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8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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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8.02 18:39:59


정신없이 지나온 또 한 주다. 그룹미팅이 끝난 토요일 오후,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이런 날이면 빗소리 들으며 조용히 와인 한잔하며 쉬는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다. 어렸을 때 이런 날이면 콩을 보리와 섞어 볶아 먹곤 했다. 가끔씩 씹히는 고소한 콩 맛이 지금도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있다. 그 때 삼촌이 불러주던 구성 좋은 하모니카 소리와 빗소리는 나의 어린 시절 소중했던 추억들이다. 그 삼촌이 지금은 노인네가 되어있으니 나도 어련히 나이를 먹었나 보다.
오늘은 그룹미팅시간 또 학생들의 준비 부족을 많이 나무랬다. 항상 그런 날이면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꾸중한 것도 꾸중한 거려니와 발전이 없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그것이 일부 나의 책임이라는 나에 대한 질책이 같이 와서 그런 것 같다. 마치 가족 내의 아이들이 잘못하면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많이 발전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학생들은 발전 속도가 더디다. 오늘 그룹미팅은 또 많은 학생들이 결석했다.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실험실에서 일어난다. 왜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질까... 일부 연구원들이 자주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닮는 현상일까... 그렇지만 학생의 입장과 연구원의 입장은 많이 다르다. 같이 생각하면 오산일 것이다. 아침에 시간을 맞추어 나오기로 결정하고 시행을 한지 몇 년이 되었지만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학부를 아마추어에 비하면 대학원은 프로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니 마음 가짐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고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실현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기야 하루 아침에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몇 년이 지나도 아직도 고치지 못하는 학생이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이 녀석들이 프로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지 의심스럽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것은 습관이다.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나오는 것, 그룹미팅 시간에 반드시 참여하겠다는 의지, 전날 아무리 술을 마셨어도 다음 날 할 일은 하는 것, 그룹미팅에 발표할 자료는 미리 준비해 놓는 습관, 시험을 미리 대비해 두는 습관, 하루 계획을 치밀하게 짜는 습관, 모든 것들이 습관에서 비롯된다. 난 초등학교때 정말 말썽꾸러기였다. 그러나 다행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우리 집에서 공부하라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학교 갔다오면 숙제 먼저 하고 책 가방 싸놓고 그 다음부터 놀기 시작했다. 편하게 놀기 위해서.. 중학교 때는 난 8 km를 걸어 다니면서 영어 단어를 많이 외웠다. 지루한 그 시간을 정말 많은 단어를 외웠고 그 단어들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그대로 있다. 그 습관이 오늘 내가 영어를 잘하게 된 기초가 된 것이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아이가 공부를 아주 잘 했었다. 특히 사회 과목을 잘 했었다. 그 애 공부 습관 중 노트 정리를 아주 잘 하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로는 나도 노트 정리를 잘하는 습관을 읽혔고 대학교와 와서도 보충자료를 잘 정리해 책에 붙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연구노트를 잘 쓰는 습관도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을 논리적으로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고등학교 때부터는 부족한 과목을 방학 때마다 보충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어 대학교 때도 이것이 늘 반복되었다. 아마 이러한 좋은 습관이 나를 오늘처럼 만든 것 같다.

10년도 더 전에 삼성전자 상무 한 분을 모셔 세미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하면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삼성의 경우 쉬는 시간이 부족해 이 분은 틈나는 대로 사무실에서 윗몸 일으키기도 하고 계단도 일부러 오르내린다고 해 놀란 적이 있다. 전투에 나간 병사가 건강을 유지하게 위해 틈틈이 자기를 관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야구 선수 중 오리 궁중이 김성한 선수를 좋아한다. 아마 이 선수는 지금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왕년의 해태 선수 중 가장 고참 선수였다. 40이 넘도록 좋은 기록을 갖고 선수생활을 했고 투타에서 모두 활약한 사람이다. 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다. 이 사람은 선수 생활 중 슬럼프가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딱 한 가지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프로정신이라고 난 생각했다. 시합을 위해 자기 절제를 하고 다음 시합을 늘 준비하는 마음이 이 사람이 40이 넘도록 운동장을 뛰게 한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도 이 부분에서 늘 어려워한다. 학기 중에는 과 실험조교, 채점, 학과 보조 등으로 시달린다.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일도 full time 일인데 이런 일은 연구에 메달리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그 뿐인가. 집안일, 친척일, 친구 결혼, 아이 돌잔치, 사돈내 팔촌의 애경사 모두 다녀야 하니 참으로 집중하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이것이 유학생에 비해 또 하나의 단점이다. 학부 때 학생들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도대체 언제 책을 보는지 알 수 없다. 거기에다 웬 바람인지 모두 외국에는 갔다 와야 한다. 4년 졸업한 학생들의 머리에는 든 것이 없다. 늘 바삐 살았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4년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오면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대학원에 들어올 때 아무리 프로가 되는 것이라 다름없고 그래서 학부 때의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냥 들을 때 뿐인 것 같다. 한 학기 지나도 그 습관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 대학원 생활을 선택과 집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아들도 학부 생활 중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많은 것을 잃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누구든 대학원 진학은 사실 많은 고민을 통해 선택한 것이다. 그런 만큼 선택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집중해야 한다. 지금 집중하지 않으면 내 인생 중 집중할 것이 없어져 버리는 것과 같다. 인생에서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또 집중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난 가족일 중 많은 것을 포기했다. 친구들과도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난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 중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정리해야 한다. 안경을 새로 맞추어야 한다고 몇 달 전부터 벼르고 있지만 안경점 가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아니 학교에 들어오면 안경점을 잊어버린다. 그래도 별로 불편하지는 않다. 그런 불편은 내가 일을 제대로 못해 실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참기가 쉽다.

중요한 것은 지금 대학원 때 이런 습관을 고치지 못하면 평생 그렇게 간다. 내가 지금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이렇게 십년을 살면 내 모습이 어떻게 될까. 아마 누구나 이 모습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모습이 싫으면 그럼 십년 후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이 되면 될까를 상상해보라. 이 부분은 쉽지 않겠지만 전자가 싫으면 지금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 아마 여기까지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것은 그런 마음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이다. 적어도 이제까지의 습관 중 많은 부분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자기를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작은 부분부터 하나씩 좋은 습관을 들여 나가면 나의 십년 후의 변화된 모습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모두 힘내거라! 그래서 십년 후 내가 너희들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도록!